불길한 예언이었다. ‘2005년은 한반도의 명운이 결정되는 해가 될 것이다’-. 그 내용이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무책임한 점괘 이야기가 아니다. 한반도 전문가들이 던진 전망이었다.
그것도 미국의 대선이 케리 승리로 굳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서 나온 예측이었다. 부시가 재선 될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다. 북한에 유화적인 케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2005년은 미국이 양단간에 중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해가 된다는 전망이었다.
전쟁으로 가는가, 아닌가. 결단의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대선 결과는 그 방향 설정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케리 행정부가 출범해도 전쟁 쪽으로의 선택 가능성이 더 크다는 예측이었다.
전제조건이 있었다. 극단적 상상이지만 북한이 핵무장을 기정사실화 하기 위해 핵실험을 감행할 때라는 조건이었다. 이 경우 미국으로서 남은 옵션은 그 길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2005년은 왜 기로의 해가 되는가. 다른 이유들도 제시됐었다. 인계철선이라고 했나. 북한의 무력 도발 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전방배치 미지상군 말이다. 이 미군부대의 철수가 완료되는 해가 2005년이라는 것이 또 다른 이유다.
미군의 철수나, 후방배치는 북한군 포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는 걸 의미한다. 이 미군 철수를 북한 당국은 미국의 선제공격의 의도로 파악하고 내심 떨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게다가 2005년은 핵 시대 60년에, 한반도 분단 60년이 되는 상징적인 해로, 한 갑자(甲子)의 세월이 지나면서 하여튼 뭔가 중대 변화가 한반도에서 예상된다는 거였다.
불길한 예언이 결국 적중하고 마는 것인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매우 격렬하고 파괴적이 될 것이고 이 전쟁은 사전 경고도 없이 날 수도 있다.” 미 정보 고위당국자의 의회 증언이다. 이 보도가 전해지는 순간 스친 게 그 불길한 예언이었다. 뒤따르는 보도들도 흉흉하기만 하다. 미국은 북한의 함경북도 길주에서 지하 핵실험 징후를 포착하고 이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보도다. 북한의 핵실험은 필연의 수순으로 본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칼럼은 북한의 핵실험 사실이 알려진 후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서울과 도쿄의 금융시장이 크게 동요한다. 외국 회사들은 심각한 딜레마를 맞는다. 아예 철수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규모를 줄여 지사를 운영해야 하는지…”
전하는 행간의 의미는 미국 기업들은 이런 상황을 벌써부터 상정하고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김정일은 ‘바그다드(이라크 수도)냐, 이슬라마바드(파키스탄 수도)냐, 양자택일에서 이슬라마바드로 방향을 굳힌 것으로 미국의 기업계는 판단하고 있다는 것.
이런 진단이 우세하면서 관심은 북한 군부에 쏠리고 있다. 핵무장 선언, 6자 회담 보이콧, 영변 원자로 가동중단, 미사일 발사, 그리고 핵실험 준비. 이 일련의 초강경 드라이브는 북한 내 역학구도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와서다.
해석이 구구했다. 6자 회담 참석은 시간 벌기로 당초 협상의사가 없었다.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벼랑 끝 전술이다. 국내 정치적 요인에 쫓긴 결과다 등등.
분석의 초점은 그렇지만 점차 국내적 요인이 김정일을 강경으로 내몰고 있다는 쪽으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이는 북한 군부의 심상치 않은 동태와 관련해 나오는 관측이기도 하다.
그 단초의 하나가 북한군 소장 오세욱의 망명설이다. 오세욱의 할아버지는 북한에서 전설이 된 항일 유격대원이다. 아버지는 김정일의 최측근 오극렬. 북한판 진골(眞骨)이라면 진골이다.
그가 미국에 망명해 있다는 비공식 보도다. 무엇을 의미하나. 북한군 내 소장세력의 불만이 크다는 반증일 수 있다. 오세욱의 탈출을 전후해 북한군 핵심급 장성들을 대상으로 배포된 ‘학습제강’ 내용도 그렇다. 북한의 위기의식이 그대로 배어 있다고 할까.
극히 이례적으로 김정일에 대한 테러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또 군 지휘관들이 미국의 모략선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신무장을 새삼 외친다. 뒤집어 보면 이는 북한군 내부가 동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번 정리해 보자. 정황이 어지럽다. 결국은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군부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면서 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강경 대응론이 거세어지고 있는 것이다.
군부가 강한 목소리를 낸다는 건 김정일이 확실한 권력체계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동시에 그 체제가 말기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징후다.
북한 핵 위기 해결의 열쇠는 다름 아닌 북한 군부가 쥐고 있다. 누가 한 예언이더라. 북한 군부의 동태를 주시해야겠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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