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일 한국일보 오피니언 란에 ‘한국 역사교육 시급하다’라는 글이 실렸다. 그 글 중에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통절한 반성, 운운”하는 사과의 기사를 읽고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는 구절이 있다. 너무 순진한 판단이라는 생각이다.
새로운 일본 총리가 취임을 하고 한일 정상이 만나게 될 즈음해서는 한결같이 ‘깊은 반성’ ‘통렬한 반성’ ‘진심으로의 반성’ 등의 말을 습관적으로 되풀이해 온 것을 우리는 왜 그리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일까?
문제는 이러한 입에 발린 사과를 되풀이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계속해 온 그들의 행동이다.
독도 영유권 주장, 평화헌법 개정운동, 벌써 수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역사 교과서 개정 시도 등은 그들이 일본의 20세기 전반 제국주의적 침략을 범죄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 정도가 하도 지나쳐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면서도 그들 자신은 그 모순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극명하게 그들의 언행 불일치를 보여주는 것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이다.
좀 힘든 일이지만 독일에 히틀러, 궤벨스, 아이히만 등 세계 제2차 대전의 대표적인 원흉들을 기리는 기념소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더 나아가서 독일의 총리가 그 곳에 매년 순례를 가서 경의를 표한다고 상상해 보자. 과연 세계인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야스쿠니 신사에는 세계 제2차 대전의 A급 전범 14명이 모셔져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 전에 이미 그 곳에 매년 참배할 것을 공언하였고, 취임 후 계속 그 말을 지켜오고 있다.
실제로, 그가 자카르타에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의 뜻”을 밝힌다는 소위 사과를 하고 있던 바로 그 날 그의 내각 각료 8명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고 있었다.
한가지 덧붙여야 할 것은 일본은 이제까지 그들이 20세기 초반에 범한 일들이 불법이라고 인정한 일이 없다. 예를 들어, 한국 강점을 그들은 국가간의 조약에 의한 합법행위로 규정한다. 일본의 점령이 불법이었음을 문서화하려는 한국 정부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의 고집이 전쟁이 끝난 후 20여년 간이나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였다.
돈이 무엇보다도 급했던 박정희 정권이 양보한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일간의 그 이전 조약들이 ‘이미 무효’라는 애매한 구절을 1965년 한일협정의 조약문으로 수락함으로써 한국 정부는 일본으로 하여금 자기들이 편한 식으로 해석할 것을(즉 한일 합방조약은 1910년부터 1948년까지 유효하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순간 무효화했다는 해석을) 용인하였다.
입으로 하는 사과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실제로 야스쿠니 신사에서 전범들의 위패가 제거될 때, 일본 역사교과서에 위안부와 징용자들의 처참했던 상황이 담담히 소개될 때, 일본이 그들의 불법 강점을 인정할 때,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일본을 선한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김철회
법정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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