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에타 김씨는 ‘엑스텟’의 ‘와인드업’ 초연이후 미 공연 예술계의 새로운 스포트 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신효섭 기자>
제작 호평받은 데이지에타 김씨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 새로운 작품을 창작”
소프라노며 피아노·바이얼린 연주자, 안무가로 명성
19년전 현대 뮤직 앙상블‘엑스탯’창단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 무대 올려 주류언론들 극찬
어린 시절 유난히도 수줍음이 많았던 데이지에타 김(54)씨.
그가 80년대 초반 미국에서 미성의 소프라노로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한인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사람들은 그가 노래만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바이얼린 연주자, 빼어난 안무가로지금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더욱 놀라기 마련이다.
“데이지에타 김씨는 분명히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난 음악가다. 예리한 육감으로 사려 깊게 감정을 발산하고 있다.”(LA타임스 77년 4월19일)
“데이지에타 김씨는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독창자다. 그의 목소리는 신선하고 맑으며 모습은 언제나 밝다. 음악을 해석하는데 있어 지적이고 진지하다.”(뉴욕타임스 78년 3월26일)
“데이지에타 김은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운 톤으로 노래를 한다.”(LA헤럴드 이그재미너 87년 5월28일)
현대 뮤직 앙상블 ‘엑스텟’(Xtet)은 지난달 3일 LA카운티 박물관 내 레오 빙 디어터에서 혼합 미디어 작품인 ‘와인드업’을 초연했다. 공연이 성공리에 막을 내림에 따라 김씨는 다시 음악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엑스텟’은 19년전 김씨가 창단한 앙상블이며 ‘와인드업’은 김씨의 창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엑스텟’은 공연 날의 밤을 무한한 기쁨의 밤으로 만들었다. 매우 조용한 권위를 갖고 있는 데이지에타 김씨는 자신이 부른 노래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방법을 알고 있다.”(LA타임스 2005년 4월6일)
얼마전 LA카운티 박물관에서 김씨를 만났다.
▲‘엑스텟’을 창단한 이유는?
-저와 동료들은 함께 재미있는 실내 음악을 연주하기를 원했다. 작은 앙상블을 위해 쓰여진 많은 음악들이 있는데 ‘엑스텟’은 요즘 20세기와 21세기 음악 연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와인드업’을 간단히 설명하면?
-개인 스토리, 과거에 대한 향수, 현대 연극의 기묘한 기쁨이 융화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공연하는 특권을 누려왔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됐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건축가 김경한씨, 줄리아드 음대서 바이얼린을 전공했던 김영옥씨의 무남 독녀로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중가주 리들리에서 성장했다.
그는 “어렸을 때 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부끄러워 어머니 뒤로 몸을 숨겼다”며 “부모님은 초창기 한인 이민자로서는 매우 성공한 인물”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어머니는 나의 부끄럼 많이 타는 성격을 고쳐 주기 위해 처음에는 춤과 연극을 배우게 했고 조금 후에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다. 그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아버지는 내가 학자, 특히 철학 교수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음악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나의 희망임을 알고 허락했다”고 덧붙였다.
▲음악이 삶서 차지하는 의미는?
-음악을 통해, 특히 공연을 통해 내 자신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 보다 무대에서 쉽게 완전한 감정을 표현해 왔다.
▲가장 인상에 남는 무대는?
-지난 77년 네덜란드서 열린 국제 성악 콩쿠르대회서 슈베르트의 노래로 2등을 차지했는데 노래를 통해 유일한 코리안-아메리칸이었던 나와 유럽인 일색의 관람객들이 하나가 됨을 느꼈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음악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음악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진정 원하는 것인가를 자신에게 정직하게 질문해 봐라. 어느 길이든 자신이 선택한 길이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적으로 다재다능했는데 성악을 택한 이유는?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음악을 깊이 사랑하면서 자발적인 의지로 예술인의 길을 걸어왔다.
스미스 칼리지 출신인 김씨는 대학시절 실내 교향악단을 만들기도 했다. 졸업 후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프란츠 슈베르트 인스티튜트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단아한 모습의 그녀는 미주 한인사회가 낳은 숨겨진 보배로 여겨졌다.
<황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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