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gap)이란 단어가 동원된다. 스웜프(swamp)로 비교되기도 한다. 무엇이 미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가. 그 실체 규명을 새로이 하면서 나오고 있는 말들이다. 종래의 개념으로 보면 소련 같은 강력한 라이벌 국가가 최대 안보위협 세력이다. 그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미국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가장 약한 국가들이다. 엉뚱하게 들린다. 그러나 9.11사태 이후 주목받고 있는 이론이다. 세계지도를 놓고 보자. 미국의 아래, 그러니까 라틴 아메리카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아프리카가 그렇다. 그리고 중동 지역이다.
한 마디로 ‘실패한 국가’들이다. 북한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중앙 아시아의 일부 국가도 그렇다. 이런 지역을 한 이론가는 불결한 소택지(swamp)에 비유했다. 모기와 파리가 들끓는 지역으로 온갖 전염병의 진원지란 말이다.
압제와 부패, 그리고 빈곤이 만연한 가운데 분노만 높아간다. 분노가 쌓이면서 증오로 변하고 결국은 폭발한다. 실패한 국가들에서 흔히 목격되는 상황이다. 그 증오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 세계는 9.11사태를 통해 경험했다.
이런 불결한 소택지를 그대로 방치할 때 미국의 안보는 크게 위협받는다. 그러므로 그 ‘갭’을 메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새로운 안보논리의 한 축이다.
‘실패한 국가’의 바로 전 단계는 ‘허약한 나라’(fragile state)다. 국내 위기가 고조돼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면서 국제적 부담, 다시 말해 미국의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큰 나라들이다.
중국이 이 ‘허약한 나라’ 범주에 들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의 국제개발처가 내린 진단이다. 경제통계에서 소수민족 분규, 종교적 박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75개에 이르는 변수들을 체크해 사회 안정성을 진단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다.
가장 큰 불안요인은 경제·사회적 불평등이다. 지역간 소득 차가 10배가 넘는다. 빈부 격차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1940년대 말 공산당의 내전승리 때보다 소득격차는 더 심화돼 있다. 거기다가 정치적 자유의 부재, 날로 심화되고 있는 민족분규, 종교탄압 그리고 만연한 부패로 중국은 심각한 긴장상태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다.
갑작스레 나온 전망은 아니다. 중국을 부정적 측면에서 주로 보는 일부의 일관된 시각이었다. 그 전망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중국 대륙을 휩쓴 반일시위, 다른 말로 하면 중화민족주의 격랑이 넘실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대두된 현상이다.
민족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이다. 미 의회의 평가다. 최근의 중-일 갈등을 중도적 입장에서 보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제 4세대 지도층에 대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 해에 5만8,000여건에 이른다고 했나. 중국 전역에서 일어온 주요 사회분규가. 하루에 160여건의 온갖 분규가 일어나고 현실이다.
실망의 이유는 이 관제 반일시위는 위험수위에 찬 국내 위기를 호도하기 위한 측면이 농후하다는 점에서다. 또 시위를 외교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새로운 중화민족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이 부문에서 뭔가 위험신호도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흥기(興起)는 미국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다.” 새로운 중화 민족주의 슬로건이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은 결국은 중국의 적이라는 저항적 민족주의다. 후진타오로 대표되는 제 4세대 지도층의 멘탈리티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한국의 386’의 의식세계를 방불케 한다.
이 점에 미국은 새삼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을 위험시하고 있는 것이다. 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중화민족주의에나 호소해 겨우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중국이다.
그러면서도 ‘대(大)중국’이라는 제국에의 꿈에 젖어 있다. 터무니없이 야심적이다. 그 언밸런스가 미국의 안보에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 이야기가 길어진 건 다름이 아니다. 북핵 6월 위기설과 뭔가 연관되는 게 있어 보여서다.
북핵 문제해결을 사실상 중국에 위임하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결국 생각이 달라졌다. 허약한 중국, 다시 말해 믿을 수 없는 중국이란 판단에서다. 그러면서 뭔가 결단을 굳혔다.
동시에 상황이 급박해졌다. 6월 한-미 정상회담이 발표된다. 한국 측이 특히 서두르는 분위기에서. 그리고 뒤따른 게 김정일을 ‘폭군’으로 직접 거명한 부시의 강경 발언이다.
북핵 문제가, 동시에 한미관계가 결정적인 분기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시그널 같다. 어쩌면 60년을 경험해온 동맹관계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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