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우동집으로서는 일년 중 가장 바쁠 때이다. 북해정도 이날만은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해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아름다운 이야기 ‘우동 한그릇’의 서두이다. 일본 북해도 출신의 구리 료헤이가 쓴 이 동화는 10여 년전 일본 국회 예산심의 위원회 대 정부 질문 중 한 의원이 낭독, 이념과 파벌로 날카롭게 대립돼 있던 장관과 의원들을 눈물로 하나가 되게 했다는 또 다른 ‘동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야기는 섣달 그믐날, 우동집이 문닫을 시각에 남루한 차림의 세 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사람은 셋인데 시키는 것은 “저 … 우동 …… 일인분입니다만 …… 괜찮을까요?”이다.
주인은 그해의 마지막 손님들에게 일인분 짜리 국수 한 덩어리에 절반을 더 얹어 삶아 내놓고, 6살과 10살 정도의 두 아들과 엄마는 맛있게 우동 한그릇을 나눠 먹는다.
그렇게 시작된 섣달 그믐날 세 모자의 우동집 나들이는 매해 반복되고, 주인은 국수를 넉넉히, 하지만 모자의 자존심이 상할 세라 너무 많지는 않게 삶아내며, 인상된 가격표를 감추고 이전 가격표를 내놓으며, 매번 앉는 테이블에 ‘예약석’팻말을 놓고 기다리며, 가난한 가족의 연례 ‘호사’를 정성껏 챙긴다.
페이지를 넘겨 가다 보면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족의 모습, 셋이 와서 1인분을 시키는 손님에 대한 주인의 따스한 인정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마지막 장을 넘길 즈음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난다.
이런 아름다운 일이 현실의 세계에서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 늘 아쉬워 했는 데 2주전 비슷한 이야기를 발견했다. 한국에서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한 여대생이 어느 신문 독자란에 올린 이야기였다. 서울 강남의 한 자장면 집에서 친구와 저녁을 먹다가 목격한 일이라고 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누추한 차림의 아주머니가 가게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들어와서 “자장면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3,000원 밖에 없다”며 종업원에게 자장면 한 그릇을 부탁했다. 종업원은 당황하며 “죄송하다”고 거절을 했는데, 모자라는 돈보다도 아주머니의 누추한 행색 때문인 것 같았다. ‘자장면 3,000원 어치’를 놓고 아주머니와 종업원이 ‘해달라, 안 된다’ 하고 있는데 주방장이 밖으로 나왔다. 주방장은 종업원에게 손님을 정중히 모시라고 지시한 뒤 즉시 자장면을 만들어 내왔다. 아주머니는 자장면을 아주 맛있게 먹은 후 꼬깃꼬깃한 1,000원 짜리 석장을 계산대 위에 내놓았다. 그러자 주방장은 “손님께서 맛있게 드셨으니 음식값은 주신 거나 다름없다”며 돈을 받지 않았다.>
자장면 집의 따뜻한 정경에 취업문제로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다 훈훈해졌다고 그 여대생은 썼다.
평범한 우동집, 자장면 집을 갑자기 ‘감동의 장’으로 승격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손님을 보는 주인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저급한 수준은 손님을 돈으로 보는 시각이다. 우리는 누구나 7달러 짜리, 10달러 짜리의 음식 한 그릇 값으로 취급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내 돈 내고 구박받고 나온 듯한 불쾌한 업소이다.
중간 수준은 손님을 고객으로 보는 시각이다. 비즈니스의 생명은 고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친절하려 애쓰는 그런 업소에 가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감동은 아니다.
감동의 단계는 손님을 구체적인 한 사람으로 볼 때만 가능하다. 돈 없고 배고픈 사람을 돈 안내는 재수 없는 손님이 아니라 허기지고 고달픈 한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 사람의 배고픔이 내 배고픔으로 느껴지는데 어떻게 먹을 것을 내놓지 않을 수 있을까.
눈앞의 존재가 내 몸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보살피게 되는 “사려 깊음이야말로 거룩의 시작”이라고 마더 테레사는 말했다.
기독교는 ‘내어주는 종교’이다. 성탄절은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분,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 몸을 내어주신 분을 기념하는 계절이다. 내어줌은 이웃을 나와 똑같은 한 사람으로 보는 시각에서 시작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