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요람에서 놀고 있다. 강아지를 넣어준다. 껴안으려 든다. 뱀을 넣어 준다. 놀라서 운다. 적대적 감정이란 걸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아기다. 그런데 왜 이 같은 이중반응을 보일까.
뱀, 다시 말해 파충류와 인간은 천적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 인류학자의 설명이다. 그 원시적 공포감이 인간의 기억 소자 속에 자리잡고 있어 아기도 뱀을 보면 본능적으로 진저리를 친다는 것이다.
아득한 시절 형성된 이 천적관계의 흔적은 신화와 전설 속에 숨겨져 있다. 용과 관련된 숱한 전설이 그것으로, 용은 대부분 경우 인간의 대적의 모습을 띤다. 결국은 영웅이 나타나 이 거대한 파충류를 죽이는 것으로 돼 있다. 인류를 타락시킨 사탄의 모습이 성경에는 뱀으로 그려져 있다. 이 역시 천적관계와 무관치 않다는 주장이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김정일 체제를 파충류와 비교했다. 작은 공룡으로 표현하면서 이 체제가 포유동물의 세계에서 과연 제대로 적용해갈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비유가 상당히 시사적이다. 인류의 천적, 다시 말해 악(惡)의 메타포가 은연중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냉혈동물에게는 온정 같은 건 생래적으로 결여돼 있다. 그러므로 공격본능에, 압제본능만 지배하는 게 파충류의 세계다. 극도의 비인간적인, 아니 가장 반(反)인간적 속성의 세계다.
내 딸들에게 간첩교육을 시켰다. 월북해 39년간 북한에서 지내다 일본 정부 주선으로 되돌아온 미군 병사 찰스 젠킨스의 일성이다. 추운 곳, 그 곳에서의 삶은 공포, 배고픔, 끊임없는 압제의 연속이었다.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내용이다.
피랍된 일본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두 딸에게 북한 당국은 간첩교육을 시켰다고 했다. 북한에 있는 혼혈아 대부분이 그런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 의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인간의 존엄성 같은 건 아예 무시된다. 수령을 위한 특정 목적으로 ‘사육’(飼育)되는 존재가 인간이고, 특히 혼혈아다. 김정일 체제의 섬뜩한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북한이 식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번에는 아시아 타임스의 보도다. 수백만 북한 주민이 굶주리고 있다. 그런데 식품을 수출하다니. 사실이다. 북한산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남한의 한 회사가 수입하기로 했다는 보도다. 북한의 기아는 그러면 무슨 말인가.
북한 주민의 3분의1은 흰 쌀밥에 고기 국을 먹을 수 있다. 3분의1은 옥수수 죽으로 살아간다. 나머지 3분의1은 기아에 직면해 있다. 뉴스위크의 분석이다. 올해는 풍년이 들었다. 식량사정이 좋아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들이 굶게 됐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도입의 결과다. 식량배급제가 철폐됐다. 모두 사 먹으라는 거다. 그 결과 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달러시세도 10배 이상 올랐다. 군과 당의 핵심 간부의 급료는 그 만큼 올랐다. 거기다가 그들은 달러를 가지고 있다. 시장경제 정책의 특혜도 모두 그들에게만 돌아갔다. 남한에 닭고기, 오리고기를 수출하는 것도 그렇다. 특혜를 받은 간부의 외화벌이다. 그렇게 번 돈은 굶주리는 북한의 민중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수백만이 아사직전이다. 경애하는 수령은 그러나 관심 밖이다. 그들을 먹여 살리는 건 국제사회의 몫이다. 인민의 생명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연한 자세로 핵에만 매달린다. 김정일 체제의 본 얼굴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국제사회가 북한에 원조한 식량은 15억달러어치로 추산된다. 이 기간 북한의 수입은 20배 이상 늘어 2002년에만 9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무엇을 말하나. 돈이 있다. 그 돈을 그런데 수령과 군과 당을 위해서만 쓸 뿐, 인민 대중을 위해서는 쌀 한 톨 사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체제가 결국 삐걱거리고 있다. 심각한 균열이 생긴 것이다. 뭐랄까. 심장 중심의 혈관은 돌아간다. 실핏줄 조직은 그러나 이미 죽었다. 심장과 먼 곳의 신체부위에서부터 마비증세를 보이고 있다. 경(硬)착륙 조짐이 농후하다는 의미로, 거짓과 기만을 기반으로 한 체제의 숙명이다.
동시에 들리는 말이 체제변화다. 일본에서, 또 미국에서 들리는 소리다. ‘체제변형’이라고도 한다. 그 말이 그 말이다. 그리고 개방이든, 고립이든 어느 방향으로 가든 결국은 붕괴다. 해서 나온 결론이다. 또 그 때를 대비하라는 경고다.
이 말에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발끈해 나섰다. LA 발언을 시작으로 유럽 순방에서도 계속됐다. ‘북한의 붕괴 가능성은 없다’ ‘미국이 그렇지, 한국과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
소신의 발언인가. 착각의 발언인가. 둘 다 같다. ‘소신성 착각에 의한 발언’이라고 해야 하나. 국제사회의 흐름과 정반대의 행동만 골라 해서 하는 말이다. 착각은, 대통령의 경우, 결코 자유가 아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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