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손이 쑥 나와 빨간 손 줄까, 파란 손 줄까!”
어릴 적 이 이야기를 안 들어본 이들은 드물 것이다. 아이들끼리 모여서 무서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왔던 단골메뉴 아닌가? 사실, 무서운 이야기를 할 때는 제법 터프한 척하며, 전혀 무섭지 않은 것처럼 히히거리곤 했지만, 막상 밤늦은 시간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을 갈 때, 가로등 없는 골목길을 돌아설 때, 뒷골이 확 당겨오며 무서운 이야기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누가 알까봐 더욱 생 폼을 잡곤 하였다.
그런 어느 날 여드름투성이 안경잽이 누나를 온종일 놀려대며, 낄낄거리며 신났었는데, 늦은 밤 화장실문 옆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자귀신이 서있는 것이었다. 난 그날 기절하여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낮에 동생에게 당한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두고 보자는 비장한 각오를 한 누나가 긴 머리를 풀어헤쳐 얼굴을 가리고, 그 위에 안경을 쓰고는 밑에 프레시를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간이 떨어져 나가고, 심장이 화장실 문 앞까지 벌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무지무지 끙끙거리며 진땀에 헛소리까지, 악몽에 시달렸고, 그 이후로 얼마동안은 누나의 얼굴을 볼 때마다 ‘혹시 누나가 진짜 귀신인데, 사람처럼 우리와 함께 살면서 내가 잘 때마다 나의 피를 조금씩 빨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섬뜩한 상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었다. 난 귀신이 정말 싫었다. 그래서 누나도 싫었다. 그러나 누나는 가끔씩 나에게 이런 식으로 복수를 했고, 그때마다 나의 놀라는 강도가 조금씩 줄어들어 어느새 익숙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누구를 골려주기 위하여도 아닌데, 더욱이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에서 핼로윈이라는 귀신들의 축제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를 즐기고 떠들고 신나 하는 놀이문화가 무척이나 개인적으로는 불만이다. 뿐인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갖 괴기로운 복장을 하고 혐오스럽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그 모습에는 옛날 우리 누나가 흉내 내었던 낭만이 쪼끔 섞여있는 귀신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문제는 그러한 것들이 점점 우리 모두에게 익숙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인에게 조차도 말이다.
선교회 아이들은 “핼로윈 때 우린 무엇을 하냐고? 특별한 이벤트가 없냐고?” 물어온다. 꼬마도 아닌 아이들이 말이다. 선교회에 들어오기 전, 언제나 핼로윈 때는 교회에서나 아니면 친구들끼리 특별한 파티를 즐겼기에 그 날이 오면 꼭 특별한 행사를 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도 좋고, 초록색 옷을 입지 않으면 꼬집는 패트릭스 데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것도 좋다. 비교적 낭만적이고, 정적이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킬 수 있기도 하고 재미있고 코믹하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혐오스럽고 잔인한 피 흘리는 모습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파괴적인 문화가 우리들의 삶 속으로 파고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너무 익숙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되고, 그러다 보면 따라하게 된다. 따라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잔인해져 있고 포악해져 있다. 모든 것이 점점 악해져 가고, 그 강도는 더해져 간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것을 실감하는 이는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느끼고 있다 하여도 워낙 거대한 문화에 밀려서 한탄만 하다가 그냥 그렇게 떠밀려 가는 시대를 우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선 발버둥이라도 쳐보아야 되지 않을까? 내 어릴 적 악몽에 시달리면서 느꼈던 아픔이 어른들이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니었겠지만, 나에게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름다운 것만, 좋은 것만, 기쁜 것만, 자꾸자꾸 보여주어도 부족하기만 하다. 소중하고 새롭게라도 만들어서 알려야 할 문화행사나 이벤트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핼로윈이 나처럼 싫은 사람 중에 좋은 대안 문화행사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이들끼리 연락하여 한번 역사적인 날을 만들어 봄직도 좋지 않을까?
한영호 목사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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