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 마라톤
작년 이맘 때 롱비치 마라톤에서 해프 마라톤을 뛰었던 남편이 올해도 똑같은 마라톤에 출전하였다. 지난 주 일요일, 교회도 빼먹고 13.1 마일 코스를 2시간20분에 완주하고 들어온 남편은 표정부터 어찌나 자랑스럽고 기세가 등등하던지, 평소 저런 각오와 자신감으로 돈을 벌어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교차하였다.
이 마라톤을 앞두고 몇 달동안 얼마나 사람을 볶았는지, 사실 그 정도도 못 했으면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자신도 기대가 대단했던 것이 작년에는 덜 준비된 상태에서 멋도 모르고 참가해 고생을 많이 했으나 지난 1년간 꾸준히 뛴 결과 살도 많이 빠졌고 체력이 훨씬 보강된 것이다.
작년 초부터 목요일 저녁마다 달리기를 시작한 남편은 몇 달만에 도중하차한 나를 비웃으며 지금까지 그 멤버들과 꾸준히 뛰어왔다. ‘오랫동안 꾸준히 한다는 것’의 저력을 나는 남편의 달리기를 보면서 새삼 느끼는 중이다.
남편은 몸은 뚱뚱하지만 얼굴이 작아서 날씬해 보이는 이중적인 타입의 사람으로서 부럽기도 하고, 얄밉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런 부류다. 그런데 달리기를 계속했더니 어느 시점부터 살이 쭉쭉 빠지면서 내가 15년동안 기껏 찌워놓은 살을 20여파운드나 빼버린 것은 물론 몸도 튼튼, 다리도 튼튼해진 것이다.
대회를 몇 달 앞두고 목요일 정기훈련 외에도 가끔씩 로즈보울로 전지훈련을 나가기도 하면서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그는 대회 일주일전, 식이요법을 해야한다고 나의 협조를 요청해왔다. 사흘동안 고기를 먹어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 이어 마지막 사흘은 탄수화물만 집중 섭취해 근력을 길러야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이 스케줄을 슬쩍 늘여 나흘간 단백질, 나흘간 탄수화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나와 아들도 더불어 나흘동안 로스구이다, 스테이크다 하여 계속 고기를 먹어야 했고, 그 다음 나흘은 밥, 라면, 스파게티, 짬뽕 등을 집중적으로 먹으면서 한밤중에 우동도 끓여먹고, 빵이며 고구마도 구워먹는 호기를 부렸다.(과연 탄수화물의 힘은 대단하여서 그 사나흘동안 남편의 체중은 5파운드가 훌쩍 올라갔다)
떠나는 날 아침도 ‘먹어야 뛴다’며 주먹밥을 해달라고 해서 싸주었더니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함께 뛰는 사람들과 무슨 비밀결사대라도 조직한 듯이 수없이 전화를 주고받고, 서로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설쳐대었다. 심지어 무슨 운동복을 입고 뛰느냐 하는 패션에까지 신경 쓰면서 이것저것 입어보고 대보고 하였으니, 이래서 남자들은 아이 같다는 것이지.
아무튼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남편은 함께 뛴 7명의 동료들중 가장 먼저 결승점에 들어왔다고 한다. 전체로는 4,132명이 출전한 가운데 2,070 등을 하였으니 딱 중간을 한 셈이다.
작년에는 2시간45분에 들어와서도 다리를 절뚝거리며 얼음찜질을 해대고, 며칠동안 제대로 걷지 못하는 등의 후유증을 겪었으나 이번에는 기록을 25분이나 단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정말 멀쩡했다.
“당신이 해준 식이요법 덕분에 뛰는 도중 배가 하나도 안 고팠고 힘도 안 들었다”며 남편은 인사치레를 했지만, 더불어 이 모든 것이 좋은 동료들, 맘이 맞는 달리기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러닝머신 위에서 5분만 뛰어도 도저히 더는 못 뛰겠던데, 2시간50분을 달려 결승점에 들어온 아줌마 부대, 용기를 내어 도전하고 성취한 앤젤라, 다이앤, 줄리, 그레이스 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마라톤을 뛰고 결승라인에 들어오면 아마 주최측에서 먹을 것을 주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시간을 뛰고 나면 배가 몹시 고파 다들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예상외로 음식이 너무나 엉성했다고 남편은 불만이 보통이 아니었다. 작년만 해도 아이스크림에 부리토까지 나왔는데 올해는 달랑 오렌지 몇조각에 바나나, 그리고 아무것도 안 바른 베이글 한쪽을 주더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더구나 풀 마라톤과 해프 마라톤의 대우가 차별이 너무 심하다며 자격지심까지 노출시킨 그는 내년 LA마라톤에서는 풀코스를 완주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으니, 그때까지 남은 날들이 또 얼마나 피곤해질 것인지,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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