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 본국지 1면에 나오는 인기 칼럼,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며칠 전 ‘사랑하는 아들에게’ 라는 글이 소개되었다. 어느 수필가의 책에서 발췌된 내용이었다.
“네가 갖고 싶어하는 걸 사주지 못하니, 이 엄마는 가슴이 아프다.
요즈음 어떻게 하면 네가 갖고 싶은 걸 사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는데,
엄마가 두세 시간만 더 일하면 될 것 같구나.
엄마한테 화난 얼굴을 하고 있어도 괜찮고, 퉁명스럽게 말해도 괜찮다.
하지만 …”<문윤정의 ‘당신의 아침을 위하여’중에서>
‘아침편지’에 소개되는 글들은 주로 희망, 지혜, 사랑을 담은 내용들이어서 읽으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런데 이날 글은 좀 달랐다. 자녀에게 뭐 한가지라도 못해주면 큰 죄를 지은 듯 자책하는 부모의 맹목적 사랑이 보여서 씁쓸했다.
이 글만 봐서는 아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갖고 싶은 것 많고, 일단 갖고 싶으면 기어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요즘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참고하면 어떤 비싼 장난감 정도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 물건을 못 사준다고 엄마가 가슴까지 아프고, 그래서 필경 지금도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을 엄마가 두세 시간 더 일할 궁리를 하고, 그 옆에서 아이는 잔뜩 화가 나있는 사태는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 더 문제는 그런 사태가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까울 게 없는 것이 기본적으로 부모의 마음이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미국사회에서도 일고 있다. 이번 주 뉴스위크는 ‘자녀에게 ‘노우’라고 말하는 법’을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잡지가 예로 든 케이스들 중 ‘사랑하는 아들에게’의 엄마를 그대로 대입해도 좋을 케이스가 있다.
애틀랜타에서 대학 청소부로 일하는 30대 흑인 편모의 케이스이다. 5남매를 키우느라 쉴새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엄마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6시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시간당 9달러의 임금으로는 도저히 생활비를 대지 못해 오버타임 근무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생활 형편이 그러한데도 아이들은 빅 스크린 TV에, 플레이 스테이션 2 게임기에, 50~60달러씩 하는 게임에, 유명 브랜드 옷에 … 갖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아이의 게임 한 개 값을 치르느라 엄마가 대여섯 시간의 노동을 해야 한다면 분명 정상이 아니지만, 아이들의 요구에 웬만하면 ‘노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그의 심정이다. TV에서 수도 없이 광고를 하고, 다른 친구들은 다 갖고 있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갖고 싶을 지 이해가 되고, 그 자신 궁핍한 환경에서 성장해 ‘못 갖는 서러움’을 알기 때문이다.
뉴스위크는 풍요의 90년대가 예상치 못한 유산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거절을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세태이다. 자녀의 나이에 맞게 규칙을 정하고 행동의 선을 그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데 그 기능이 퇴화 위기에 처했다.
부모들이 매사에 ‘오냐, 오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자녀는 한 두명에 불과하니 그만큼 여유가 있다. 둘째는 가족의 오붓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부모가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기껏해야 저녁시간 잠깐과 주말인데 그 시간을 ‘된다, 안된다’하며 싸우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모들을 약하게 만드는 ‘주문’은 “다른 아이들은 다 가졌는데…”라는 말. 한인 부모들의 경우는 “그러잖아도 소수계인데 물건 때문에 아이들 기죽일 수 없다”는 소수계 멘탈리티가 더해진다.
이렇게 부모가 주고 또 주면 아이들은 행복한 성인으로 성장할까. 전문가들은 그 반대라고 경고한다. 원하는 것을 너무 쉽게, 너무 금방 얻는 일에 익숙하다 보니 조금만 힘든 일이 닥쳐도 헤쳐나가지를 못한다. 역경이나 실패에 대한 예방접종이 전무한 결과이다.
과식으로 인한 육체적 비만은 이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과 소유로 인한 정신적 비만도 이제는 문제로 인식되어야 하겠다. 절제와 근면, 노력과 성실 같은 인생의 가치들을 가르치려면 ‘노우’가 필요하다. ‘오냐, 오냐’와 사랑은 다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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