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주방장이 헬퍼 폴 전군에게 샐러드를 맛깔스럽게 담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매일 식사준비에 ‘숙련된 조교’ 폴 전, 홍정아, 잔 윤 등 3명의 헬퍼가 돕고 있다.
‘나눔선교회’주방장 샘 틸씨
20달러로 1시간 반이면 40명분‘뚝딱’
서양요리 레서피만도 200여가지나
셰프 자신도 입양아로 불우하게 성장
선교회 입소 오랜 쿡 경험 부엌일 맡아
요즘 ‘나눔선교회’ 식구들은 먹는 재미에 산다.
40여명이 먹을 치즈와 버섯을 올려 오븐에 구운 마늘치즈빵.
그러잖아도 세끼 식사가 하루 일과중 가장 중요한 선교회, 몇달전 주방장 샘 아저씨가 입소한 후 식탁 수준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앞치마 두르고 뚝딱뚝딱, 1시간반이면 40여명분의 고급 서양요리를 근사하게 만들어내는 셰프 샘 틸(Samuel Paul Teal·한국 이름 박성근)씨는 일류식당 주방장 출신. 선교회 식구들이 생전 보도 듣도 못한 멋진 퓨전음식들,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는 요리들을 티도 안내고 척척 만들어냄으로써 갱생의 삶을 사는 한인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미각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이 때문에 늘 전쟁터 같던 선교회 주방이 평정되고 메뉴가 격상된 것은 물론 더 놀라운 것은 식재료비가 왕창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선교회 살림을 맡고 있는 김성신 전도사에 따르면 셰프 샘이 등장한 이후 식비가 전보다 절반이하, 아니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유는 버리는 재료가 하나도 없기 때문으로,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절대로 다시 써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야채 쪼가리들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훌륭한 요리가 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아다시피 음식할 줄 모르는 사람일수록 재료만 많이 쓰고 버리기도 엄청 많이 버리는 법. 셰프 샘은 쓰고 남은 야채, 버섯은 갈아서 천연조미료로 쓰고, 고기 생선 찌꺼기는 국물 내는데 쓰며, 먹고 남은 빵은 말려서 부숴 빵가루를 만들고, 배추 코다리나 시든 야채잎은 뒷마당에서 키우는 개, 닭, 토끼들에게 준다니 도무지 쓰레기통이 필요 없다는 불평마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전에는 선교회에서 식사만 준비해주는 멕시칸 가정부를 파트타임으로 한달에 700~800달러를 주고 고용하기도 했었다니, 도대체 셰프 샘은 선교회 재정에 얼마나 빛나는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 만드는 일곱가지 메뉴의 총 재료비가 40달러도 안 들었답니다. 그것도 특별 메뉴니까 그 정도지요, 보통은 한끼에 20~25달러도 안 써요. 재료를 가장 싼 것만 골라서 사거든요. 캔톤 중국도매마켓이나 푸드 포 레스, 또는 한국마켓 중에서도 세일하는 곳만 찾아서 아주 헐값에 구입해 옵니다. 빵이나 베이글, 쌀 같은 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을 도네이션 받기도 하지요”
40여명이 푸짐하게 먹는 음식의 한 끼 재료비가 보통 20달러밖에 안 된다니 이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이런 자린고비 장보기 전략 때문에 셰프 샘은 음식 맛을 기량껏 발휘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재료가 조금만 더 좋아도 기막힌 맛을 낼텐데…” 그는 취재하는 중간에 이 말을 열번도 더 했다.
나눔선교회의 식사는 아침은 주로 베이글이나 전날 남은 음식으로 만든 죽 등으로 간단하게 먹고, 점심은 샘 주방장의 역량이 발휘되는 다양한 서양요리들(200여가지 레서피를 갖고 있다고 한다)이 나오며, 저녁은 주로 한식을 먹는다. 셰프 샘은 한식을 잘 모르는 탓에 정통한식보다는 퓨전한식을 만들곤 하지만 일단 뭐든지 한번만 먹어보면 그 맛과 똑같이 만들어내어 선교회 식구들의 탄성을 자아내곤 한다고.
하루중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곳, 나눔선교회의 하루 스케줄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아침 7시기상부터 하이킹에 청소, 성경쓰기, 큐티, 점심식사, 운동, 바이블 스터디, 저녁식사, 예배, 기도회, 일기 쓰기, 밤 10시30분 취침, 이렇게 짜여져 있으니 보통 사람도 이 스케줄대로 생활하라면 일주일도 못할 텐데 덩치가 산 만하고 힘이 넘치는 한창 때의 청소년들, 그것도 밖에서 온갖 말썽 부리며 맘대로 살던 아이들을 모두 한 공간에 몰아넣고 매일 이렇게 살라니 어떻겠는가. 그래서 오로지 먹는 것이 낙이고, 먹는 일에 목숨건다는 것이다.
먹는 양도 엄청 나서 전에 70여명이 기거할 때는 한끼에 쌀 한포대씩 밥을 하곤 했는데 이 때문에 밥보다 라면을 훨씬 더 비싼 음식으로 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쌀은 도네이션 받기도 하고 한 포대가 싼 것은 3~4달러인데 비해 라면은 24개들이 한 박스에 8~10불이고 한끼에 세 박스는 끓여야 하니 밥보다 라면이 고급음식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큰 아픔을 겪은 나눔선교회는 시정부의 시행규정에 따라 현재 18세이상 성인 40여명이 기거하고 있으며 건물보수공사 후 새로운 재활기관으로 거듭날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밥보다 라면이 더 비싸 ‘알뜰살뜰’자린고비 장보기
나눔선교회 주방은…
식사를 앞두고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는 나눔선교회 스태프들. 왼쪽부터 박웅대 간사, 제인씨, 김성신 전도사, 한영호 목사, 김영일 목사, 마이클 장목사.
■ 런치 메뉴 레서피
식사 준비를 돕는 잔 윤(왼쪽), 폴 전 군이 마늘빵을 굽고 있다.
나눔선교회를 방문했던 지난 19일의 런치 메뉴는 세가지 핑거푸드 애피타이저와 샐러드, 마늘빵과 파스타, 새우튀김이었다.
▲스터퍼드 머시룸(Stuffed Mushrooms)-속을 채워 구운 양송이버섯 두종류를 만들었다. 하나는 간 소고기에 피망, 마늘, 양파, 셀러리 다진 것과 빵가루, 달걀, 체다 치즈를 섞어 간장, 후추로 양념한 것, 또 하나는 게맛살, 양파, 잔 새우 다진 것과 크림치즈, 마저린, 모자렐라 치즈 섞은 것으로 둘다 350도 예열한 오븐에서 10분 정도 굽는다. 이 외에 크림치즈, 사워크림, 버터, 게맛살 다진 것을 잘 섞어 오븐에 구운 다음 리츠 크래커 2개 사이에 발라넣은 크래커 샌드위치도 만들었다.
▲샐러드-로메인상추, 오이, 당근과 잘게 썬 토마토, 피망을 이탈리언 드레싱에 섞는다. 드레싱은 올리브 오일과 레드와인 비니거, 오레가노, 베이즐, 치즈, 마늘을 블렌더에 넣고 갈았다.
▲마늘빵(Garlic Bread with Cheese and Mushroom)-빵에 마가린 믹스(마가린, 올리브오일, 간 마늘, 베이즐, 파슬리 섞은 것)를 발라 널찍한 팬에 구운 다음 그 위에 치즈와 볶은 양송이버섯을 얹어 오븐에서 살짝 구워낸다.
▲파스타(Pasta with Chicken Mushroom Garlic Sauce)-닭을 뼈 째 양파, 셀러리, 마늘을 넣고 푹 고은 다음 야채와 껍질, 뼈는 걸러내고 계속 끓이면서 버섯과 우유와 콘 스타치를 넣어 걸죽한 소스를 만든다. 원래는 버터와 밀가루로 만드는 루(roux)를 넣어야 하지만 대신 녹말가루를 넣는다. 스파게티 국수를 삶아 올리브 오일로 살짝 코팅한 후 소스를 얹어 서브한다.
▲새우튀김(Devil Shrimp with Cocktail Sauce)-새우 등을 갈라서 편 다음 시푸드 믹스(게맛살, 셀러리, 당근, 양파, 마늘, 피망, 파슬리를 갈아 물기를 뺀 다음 마요네즈로 무친 것)을 얹어 달걀물과 빵가루를 입혀 튀겨낸다. 칵테일 소스는 호스 래디시, 핫소스, 케첩, 레몬주스에 약간의 흰 후추와 이퀄(equal)을 섞어 만든다.
(자신이 당뇨병 환자인 샘 주방장은 나눔 식구들의 건강을 위하여 버터와 설탕은 사용하지 않는다)
생모와 양부에 학대 받고
가슴의 분노 못이겨 자학
신앙으로 인내·겸손 배워
샘 틸씨 인생유전 스토리
샘 주방장이 이탈리언을 샐러드에 붓고 있다.
샘 틸(42·박성근)씨는 아홉 살이던 73년 미국으로 입양돼 버지니아주 시골에서 자랐다.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 생모에게서, 또 자신을 입양한 양부에게도 학대(abuse)를 당했다는 그는 가슴 깊이 분노의 칼을 품고 성장하면서 사춘기 때부터 법정을 들락날락했던 문제 청소년이었다.
마음속 ‘분노’(anger)를 조절할 수 없었던 그는 16세에 집을 나와 닥치는 대로 식당 일을 하고, 밤에는 록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했으며, 그래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권투로 풀면서 자학적인 젊은 시절을 보냈다. 백인 여성과 결혼도 한번 했고 딸도 하나 두었으며 유명식당 주방장이 되어 한때는 돈도 많이 벌었지만 구멍 뚫린 마음을 메우지 못한 그는 20대 중반부터 음주벽에 빠졌다.
1987년 거의 죽음에 이른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것은 거의 자살기도였다고 박씨는 말한다. 2년동안 온 몸 여기저기에 기브스를 하고 걷지도 못했을 정도로 크게 부상을 입어 지금도 몸 속에 수많은 쇠붙이가 들어있다는 그는 게다가 심한 당뇨병에 천식까지 앓고 있어 도대체 성한 데가 없다고 나눔 식구들은 안타까워한다.
그의 주방경력은 14세때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잡일을 배우면서부터 시작된다. 그후 할러데이 인 식당과 이탈리아 식당을 거치면서 헤드 쿡이 되었고 19세 때 고급 식당 ‘다이아몬드 힐’에서 매니저겸 수석 웨이터로 경영수업도 쌓았다.
이후 미동부 지역의 여러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방장으로 일해온 그는 교통사고를 계기로 91년 LA로 이주했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치료비가 동부지역은 너무 비싼데다, 날씨가 궂으면 몸이 더 아프기 때문에 화창한 캘리포니아를 찾아온 것. 이곳에 와서는 ‘보더 그릴’이란 유명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1년여 일했으며 96년 LA 다운타운에 파트너십으로 자신의 식당을 내기도 했으나 위치를 잘못 택한 탓에 얼마 안돼 문을 닫고 말았다.
사고후 고통을 잊기 위해 술과 진통제와 코케인에 중독된 그는 약물중독운전(DUI) 혐의로 수차례 체포됐으며 이 전력으로 인해 나눔선교회에 오게됐다. “처음 나눔에 왔을 때는 분노가 남아있었다”고 고백하는 박씨는 “그러나 이제는 신앙을 갖게돼 인내와 겸손을 배우고 있으며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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