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치과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병원 중에서도 유독 치과가 싫은 이유-그곳에 있는 그 무서운 의자. 거기 누워야하기 때문이다.
내과 같은 곳엘 가면 그냥 말로 하면서 혈압과 체온만 재어도 되고, 심해봤자 의사가 배를 누르거나 등을 두드리는 일로 대충 해결되지만 치과는 그게 안 되는 곳이다. 아니 안 되는걸 넘어서 일단 그 의자에 눕고 나면 엔간해서 ‘전기 고문’을 받지 않고는 일어나기 힘든 곳이 바로 치과인 것이다.
게다가 의사선생님은 안 아픈 이빨도 툭툭 치면서 충치가 생겼다, 잇몸이 상했다, 신경치료를 해야된다 하니, 치과에 들어설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 뿐인가. 치료가 시작되면 늘 억울한 것이 선생님은 내 입을 들여다보며 ‘플로스를 자주 하지 않았네’ ‘이를 제대로 닦지 않았네’ 하고 여러 사항을 지적하지만 입을 아~ 벌리고 있는 나는 단 한마디 항변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당한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주 나는 그 무서운 치과에 가기 위해 이틀간의 휴가를 내었다. 작정하고 치과에 간 이유는 아들의 자유분방한 치아를 가지런히 교정하기 위해 여름방학중 날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교정하는 일은 이틀로 해결되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도 어릴 때 덧니가 많아 이빨을 몇 개 뺀 적이 있고, 한국에서 언니, 오빠, 동생이 교정하는 것을 옆에서 본 적이 있지만 미국에서의 치아교정은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되었다.
먼저 우리는 일반치과 주치의에게 가서 치아상태를 체크업하였다. 의사선생님은 충치가 7개나 생겼다고(왜 아니겠나!) 야단을 치고, 스케일링을 해준 다음 우리를 교정치과로 보냈다.
교정치과에 가니 아들의 치열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장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치아 본을 뜨고 하더니 다음날 결과를 보러오라고 하였다. 이 때, 교정하는 아이들은 대개 다시 일반치과에 보내져 이빨을 몇 개 뽑게된다는 정보를 알아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다음날 교정치과와 일반치과를 각각 1시간의 여유를 두고 예약하였다.
다음날, 교정치과에 가서 결과를 보니 과연 아들의 이를 위의 것 2개, 아래 것 2개, 총 4개를 뽑고 다 아문 뒤 일주일 후에 오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를 뽑으러 다시 일반치과에 갔다. 이 대목에서 내가 아들을 보는 눈빛은 비장하였지만 뭘 모르는 아들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너 한꺼번에 네개 뽑을래? 두개 뽑고 며칠 후에 또 두개 뽑을래?” 물었더니 “그냥 다 뽑을래” 한다. 의사선생님은 “충치치료도 일곱개나 해야하는데 한꺼번에 너무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였지만 나는 ‘한번에 끝내자’는 다소 무정한 결정을 내렸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된 차에 기다리는 동안 나도 스케일링을 받음으로써 그 고통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아들과 나란히 전기의자에 누워 함께 고문을 당하게된 것이다.
치이이익~ 들들들들~ 크아아악~ 쓰각쓰각~ 나는 치과의자에 누울 때마다 전기고문을 발명한 사람이 분명 ‘치떨리는’ 치과 치료를 받아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내 손에는 립스틱을 닦아낸 휴지조각이 쥐어져 있었는데 어찌나 꽁꽁 말고 쥐어짰는지 그 휴지조각이 없었던들 나의 손톱은 살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강도 높은 고문에 한시간동안 시달린 아들은 제정신이 아닌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한시간 내내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다 충치 치료만도 힘든데 이를 네 개나 빼고 입 안팍이 마취로 모두 얼얼하니 자기가 무슨 일을 당하였는지, 졸지간에 이빨 빠진 곰탱이가 되어 가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 아이를 걱정케 하는 것은 이빨이 없다거나, 아프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 이제 나 뭐 먹을 수 있어?”가 아들의 첫 소감이었다.
돈도 억수로 들지만 이거 뭐 보통 고생이 아닌 일이다. 주위에서 치아교정하는 아이들을 적잖이 본 것 같은데, 그 모든 애들이 이러한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브레이스를 달게 된 것인지, 그 쇠덩어리들이 마치 훈장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2년이나 걸린다는 교정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앞으로 또 어떤 일을 겪게될 지, 아이가 이빨이 고르게 나와주는 것도 대단한 효도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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