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정하고 나면 내내 묶인다. 싫으나 좋으나 같이 지내야 한다. 마음에 안 든다고 그만 두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결혼과 셀폰의 공통점’이라는 조크이다.
결혼을 하면 평생을, 셀폰을 구매하고 나면 1~2년의 계약기간 동안 꼼짝없이 묶인다는 점이 같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상대방의 좋은 점만 보이다가 결혼하고 나면 왜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이 많이 눈에 띄는지, 속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대부분 부부들의 경험이다.
셀폰도 처음 장만하면 도깨비 방망이라도 얻은 듯 뿌듯하지만 쓰다보면 불통 구역도 많고, 소리가 선명치 않을 때도 있고… 단점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무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이혼을 하려면 경제적 심리적 대가가 엄청나고, 셀폰을 해약하려면 벌금이 얼마나 비싼지, 웬만하면 맞춰 가며 참고 사는 게 이득이라는 말이다.
7월은 미국에서 ‘전국 핫도그의 달’이다. ‘전국 삶은 콩의 달’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전국 셀폰 예절의 달’이다.
‘셀폰의 달’이 생겼다는 것은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이제 ‘핫도그’나 ‘삶은 콩’처럼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기기의 특성 상 자주 공해가 되기 때문에 2년 전 ‘셀폰 예절의 달’이 제정되었다.
셀폰 예절은 다름이 아니다. 소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는 마음가짐이다.
집집마다, 식구마다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기본적 생활용품이 되면서 셀폰 문화가 이제는 많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극장, 음악회, 도서관, 교회, 교실, 하다못해 장례식장에서까지 한두번 전화벨 소리가 터지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는 적은 거의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너도나도 셀폰을 갖고 있다보니 벨 소리에 대한 반응이 전처럼 히스테리컬하지는 않다. 벨 꺼두기를 잊어버린 경험이 누구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보편적 실수에 대해서는 험상궂은 눈초리 보다 부드러운 유머가 더 효과적일 수가 있다.
어느 미국교회에서 생긴 일이다. 교인들이 한창 진지하게 설교를 듣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모두가 “도대체 누가…”하는 눈초리로 사방을 둘러보는데 목사가 말했다.
“전화 받으십시오. 우리가 기다리지요. 누구십니까?”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오고 그 후로는 좀처럼 예배 중에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벨소리 보다 더 짜증나는 공해는 사람의 말소리이다. 엘리베이터나 자동차 안, 혹은 작은 식당 같은 데서 들리는 전화통화 소리는 단순한 소음 공해 이상이다. 같은 크기의 소리로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면 그렇게 거슬리지 않는데 전화통화는 왜 그렇게 거슬리는 걸까.
그것은 공공 장소를 사적인 공간으로 함부로 사용하는데 대한 불쾌감으로 이해가 된다. 전화가 신기한 것이어서 전화를 받는 순간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그 공간에 있지 않다. 전화선을 통해 만들어지는 제3의 공간으로 날아가 버려서 자기가 발 딛고 서있는 물리적 공간과 격리된다. 그래서 공적인 장소에서 맞지 않은 사적인 이야기를 마구 하게 되고 목소리도 더 커진다. 그 무신경이 셀폰 공해의 핵심이다.
1세기 전 이맘때 ‘우리 시대의 수갑’이라고 불리던 물건이 있었다. 손목시계였다. 중세때 마을 중심에 하나쯤 있던 공중 시계가 가정용 시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휴대용 시계로 발전하더니 19세기 후반 손목에 차고 다니는 시계로 만들어졌다. 전화도 비슷한 경로로 이제 휴대용 전화로까지 발전했다.
중요한 것은 시계가 우리 몸의 일부처럼 달라붙을수록 우리의 삶에 깊이 침투해왔다는 사실이다. 시계를 만들어 시간을 분, 초로 쪼개며 최대한 활용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거꾸로 시간의 노예가 되었다. 수갑이다.
같은 현상이 셀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한 편리함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언제 어디서나 통화를 못하면 불안증세가 나타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어쩌다 셀폰을 집에 두고 나오면 하루 종일 안절부절이다.
셀폰이 이 시대의 족쇄가 되고 있다. 문명의 이기에 구속당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를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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