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풀러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의 하나로 선정된 김지오·영희씨 부부의 갤러리 카페 ‘419 베르네제’는 자연과 전통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마음 평온해지는 아름다운 갤러리 정원 카페’
한인 소유주 김지오·김영희 부부를 찾아
정크 투성이 91년된 집, 이사 1년만에 개벽
전통·자연이 어우러진 프랑스식 정원으로
갤러리가 있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카페, 아티스트 김지오·김영희씨 부부가 운영하는 ‘419 베로네제’(Veronese)가 요즘 풀러튼에서 잔잔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4월18일 풀러튼의 아름다운 정원 오픈 투어(Fullerton Beautiful Open Gardens Tour)에서 공개된 이후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이날 투어를 실시한 11개의 아름다운 정원 중에서 풀러튼 뉴스 트리뷴지가 ‘마음이 평온해지는 전원 공간’으로 선정한 ‘419 베로네제’는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프랑스식 정원이다. 이들 부부가 걸어온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갤러리 카페 ‘419 베로네제’를 소개한다.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가는 문.
그룹전 ‘더욱 더 멀리’(Far Flung)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 내부.
김씨 부부가 아끼는 골동품 피아노.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에 가면 정원이 모두 이렇게 생겼습니다.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공간이죠. 미국 땅에 발 딛고 있지만 프랑스를 선망하다보니 프랑스식 정원을 만들게 됐어요”
오랜 프랑스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온 그래픽 디자이너 김지오씨와 화가 김영희씨 부부가 풀러튼의 역사가 깃든 정크 투성이 2층집으로 이사온 건 2003년 5월이었다.
지금이야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갤러리 카페로 멋지게 탈바꿈했지만, 김씨 부부가 구입했을 당시 이 집은 91년이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겨우 지탱해온 오래된 집에 불과했다.
외관상으론 볼품 없는 이 고주택은 1913년 풀러튼 뉴스출판사 게일 모어 회장의 사택으로 건축돼 풀러튼시가 역사적 보존을 명한 히스토릭 홈(historic home)이다. 건축 당시에는 유명 인사가 거주할 사택이라서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근사하게 지어졌을지 모르지만, 오랜 세월 집주인이 수차례 바뀌면서 소홀했던 관리 탓에 잡초만 무성한 오래된 집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일년이 지난 지금, 이 고주택은 임자를 제대로 만난 덕분에 풀러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의 하나로 선정되는 등 그 옛날 화려했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우리 부부는 생활 속에서 오래 묵은 것을 발견하기 좋아합니다. 지나간 세월의 손때가 묻은 물건은 정감이 가득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고.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값어치를 지니죠”
옛날부터 앤틱에 매력을 느껴 고물과 고철에 집착해 왔다는 김지오씨는 이 낡아빠진 집에 묘한 인연 같은 걸 느꼈다고 한다. 잡초만 무성한 뒤뜰은 프랑스식 정원 ‘보스케’(Bosquet·잡목이 우거진 숲)를 떠올리게 했고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연철 조각은 빛 바랜 미술장식품으로 보였다. 미국에 건너온 지 6년이 지났지만 파리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있던 김씨 부부에게 이 집은 정감이 가고 스토리가 있는 전원적 공간으로 다가왔다.
가족이 사는 집으로는 위층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아래층을 예술 작품 전시공간인 아트 갤러리로, 뒤뜰은 메마른 일상생활에 지친 영혼들이 쉬어 가는 가든 카페로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전통과 자연이 어우러진 프랑스식 정원
“인테리어는 정확한 설계와 드로잉이 필요하지만 정원 꾸미기는 다르죠.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둔 채 감각과 느낌으로 하는 겁니다”
김씨 부부의 정원은 프랑스식 정원 보스케의 축소판에 앤틱(고물)들을 보기 좋게 장식해 놓은 공간이다. 그럴듯하게 표현해서 보스케 앤 앤틱(Bosquet & Antique)이지 무심코 지나치면 야생화와 잡목이 무성한 자연공간에 각종 고물들이 하나의 예술 작품인양 놓여있는 작은 숲이다.
“내추럴하면서 자연 친화적인 이미지가 돋보이는 정원을 갖고 싶었다”는 김지오씨는 “오랫동안 쓰던 가구, 고물로 보이는 앤틱으로 장식한 건 편안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잡초 무성한 오래된 정원이 ‘뷰티풀’을 연발하는 정원으로 변모하기까지는 꼬박 일년이 걸렸다.
먼저 운치 있게 뻗은 나무, 제멋대로 자라난 풀과 꽃은 그대로 두고, 지저분한 바닥은 돌을 사다 깔았고, 베란다와 나무들 사이에 야외 테이블과 의자, 소파를 놓아 자연 속에 있는 듯 편안한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고물상을 찾아다니며 양철 함석판을 사다가 정원 한 구석에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창고를 지었고 게스트 하우스는 오붓한 만남의 공간으로 개조했다. 나무로 지어진 게스트 하우스는 천장이 낮고 오두막집 같은 느낌을 자아내 홀로 사색을 즐기거나 나른한 오후 잠시 눈을 붙이기엔 최고의 공간이었다.
다음은 디테일 작업. 시멘트를 실어 나르는 구닥다리 일륜차에 찰랑거릴 정도로 물을 담아 나무 오리, 작은 물고기, 화초가 떠다니는 양철 연못을 만들었다. 또, 비바람에 깎이고 닳아 삐걱거리는 오래된 문짝을 창문에서 떼어내어 정원 한 가운데 설치했다. 카페를 찾는 이들에게 ‘창문 넘어 바라보는 은밀한 느낌’을 즐기게 하고 싶어서다.
자칭 고물 수집가라는 김지오씨가 가장 아끼는 명물은 베란다에 자리잡고 있는 색색깔로 칠해진 오래된 피아노다. 피아노 뚜껑을 열면 1839년 보스턴 골드메달 획득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고주택보다 더욱더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골동품 피아노다.
김씨가 여행을 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이 오래된 피아노는 할리웃의 엘캐피탄 극장의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시킨다.
베란다 벽면에 부착돼 있는 유리 진열장의 ‘커피 앤 아트’도 재미난 구경거리다. 또, 베란다를 내려오면 고물 창고 옆에 아주 작은 화원이 조성돼 있다. 직접 빚은 도자기와 그림이 그려진 화분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며, 창고 벽에는 ‘고물 사고 골동품 팝니다(We buy Junk & sell Antique)’라는 사인이 붙어 있다. ‘밖에선 고물 취급받던 물건이 예술품, 골동품으로 둔갑하는 곳’이 김씨 부부가 정성껏 꾸민 가든 카페의 컨셉이다.
■갤러리 카페 ‘419 베로네제.’
베로네제(Veronese)는 프랑스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 김지오씨가 파리에서 8년 넘게 운영하던 광고회사 이름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후 건축가로 물리학자로도 명성을 떨쳤던 이탈리아 화가, 베네치아 학파의 마지막 거장 파올로 베로네제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이 베로네제가 미국으로 건너 와서는 화가인 아내 김영희씨를 비롯,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을 위한 자유로운 전시공간으로 바뀌었다.
지금 갤러리 베로네제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5명의 그룹전 ‘더욱 더 멀리’(Far Flung)가 열리고 있는데, 지난 4일 오프닝 리셉션에 참가했던 많은 이들이 미술 전시회의 작품도 작품이거니와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프랑스식 정원에 매료돼 늦은 밤까지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서라벌 예대와 프랑스 에콜 드 보자르 베르사이유에서 페인팅을 전공한 화가 김영희씨에게 베로네제 가든 자체는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다. 땅이 캔버스라면 살아있는 꽃과 나무가 물감인 것.
여기에 남편 김지오씨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수집한 고물과 골동품들이 천상의 조화를 이루어 편안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정원이 탄생한 것이다.
한국과 프랑스, 그리고 LA에서 수십 차례 개인전과 그룹전을 여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며, 수요일 오전 아마추어 주부들을 대상으로 그림 지도를 하고 있는 김씨는 “419 베로네제가 갤러리를 찾는 미술애호가들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의 근원지가 되고, 가든 카페를 찾는 이들에게는 좋은 미술작품을 접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갤러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문을 열지만 카페는 아직 공식 오픈을 하지 않았다. 이달 말 오픈 예정.
갤러리 카페 419 베레네제의 주소와 전화번호는 419 W. Commonwealth Ave. Fullerton, (714)578-8265. 웹사이트 www.419cv.com
글 하은선 기자
사진 이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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