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퓨전요리 창시자 댁스 류의 요리철학
음식을 만들어 서브하는 일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작업한다는 점에서
예술가로서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는 것과 같다
올림픽과 놀턴 코너에 ‘미소‘(MISO)라는 작은 식당이 있다.
감각적인 인테리어부터가 범상치 않은 이 곳은 스시 위주의 퓨전 레스토랑으로, 한인타운의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특이한 유러피언·한식·일식 퓨전 음식들을 서브한다.
1년반전 문을 열었는데, 광고 한번 안하고 소리소문 없이 입맛 까다로운 미식가들을 단골로 확보한 이유. 주방장 댁스 류의 ‘작품’에 한번 매료되면 좀처럼 헤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댁스 류라는 인물은 타운에 새로운 얼굴이 아니다. 특히나 아트 쪽 계열 사람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튀는 인물인지 익히 그 명성을 알고 있다.
온 몸에서 ‘예술적 끼’를 발산하는 그는 자신을 사진작가, 그래픽 디자이너, 광고쟁이, 화가, 인테리어 작가 등 다양한 명함으로 소개하는데, 중년이 되도록 살아오면서 정작 돈 되는 장사는 전혀 배운 적도 없는 요리를 통해서였다.
88년부터 96년까지 그는 8가와 라브레아에 식당 ‘미로’(MIRO)를 운영했다.
그때 그가 창조한 ‘김치 파스타’와 ‘크림소스 만두’는 한식에 ‘퓨전’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하게 만든 요리들로, 한인들보다 미 주류 미식가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LA타임스 캘린더에 대서특필되고, 당시 헤럴드 익재미너를 비롯하여 로컬 신문들, 프랑스 보그 잡지에까지 ‘최초의 유로 코리언 레스토랑’(First Euro Korean Restaurant)으로 소개되면서 한동안 미로는 줄서서 기다려야하는 식당으로 유명세를 누렸다.
그런데 그로 인하여 여기저기 신문 잡지에 소개될 때마다 기사들은 식당과 음식에 포커스하기 보다 댁스라는 특이한 이력의 인물에 집중하곤 했다. 식당 주인이자 주방장이면서 요리를 한번도 공부한 적이 없는 그는 ‘까다로운 혀’와 타고난 예술성이 유일한 밑천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음식을 만들어 서브하는 일은 셰프로서 요리한다기 보다 예술가로서 작품을 창조하는 과정과 같다.
“예술이란 점에서는 다 같으니까요. 음식도 그리는 겁니다. ‘음식을 그린다’는 말은 원래 내가 옛날부터 썼던 말인데 얼마 전에 보니까 대장금에서 그 표현이 나오더군요. 음식은 상상력을 갖고 디자인하여 창작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다는 점에서 어느 예술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댁스 류씨가 ‘미소‘에서 음식 그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식 ‘맛’·양식 ‘멋’ 합치니 “원더풀”
퓨전식당 ‘미소’작년 개업…동·서양 융합요리 선보여
주류 미식가 입맛 단번에 사로잡아…언론서도 찬사
‘미소‘의 사장 헨리 류씨(오른쪽)와 주방장 댁스 류씨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브랜드 식당’을 꿈꾸고 있다.
▲갈비스테이크
센불에 구운 갈비살을 썰어서 소스와 함께 낸다. 소스는 일식 다래 소스를 특별한 레서피로 변형시킨 것.
▲알바코어 다다끼
겉만 살짝 익혀서 썰어낸 알바코어(다랑어)에 폰주 소스를 새롭게 만든 부드러운 소스를 곁들여낸다.
▲된장 크림소스 사시미
흰살 생선 사시미와 된장을 크림과 섞어 만든 소스의 조화가 특별한 감칠 맛을 선사한다.
▲김치 파스타
신 김치가 주 포인트. 김치를 다져서 마늘, 양파와 함께 볶다가 와인 넣고, 크림 넣어 볶은 소스를 파스타에 얹어낸다.
“한국 음식은 미각은 좋은데 시각에서는 빵점입니다. 그런데 음식에서 맛은 제일 나중이거든요. 예를 들어 미소라는 식당에 음식을 먹으러 간다고 합시다. 우선 식당에 대해 ‘맛있는 곳’이라는 소문을 듣지요(청각), 그 다음에 식당에 가면 실내 분위기를 보게 되고(시각), 이어 음식이 나오면 냄새를 맡습니다(후각), 그리고는 손으로 그릇과 포크를 잡고(촉각), 맨 마지막에 혓바닥이 음식의 맛을 보게 됩니다(미각). 이렇듯이 음식이란 최종적으로 맛을 보게되기까지 총제적인 분위기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토탈 예술인 것입니다”
토탈 예술인 댁스 류씨(45)는 70년 도미한 1.5세. 퍼시픽 팰리세이즈 고교를 졸업하고 USC에서 영화를 공부하다가 험볼트 주립대학에서 미술을, 오티스 파슨스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고교 졸업 무렵 코닥 전국 사진 컨테스트에서 5개 부문 상을 휩쓸었는데, 한 사람이 1개 이상부문의 상을 탄 것은 그가 처음이었고 지금까지도 기록이 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특별난 재능과 이력으로 인하여 그는 대학시절 ‘제대로 배우지 않았던 시간들’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
“뭐든지 그냥 내 맘대로 만들어가면 교수들이 천재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수업을 등한시했어요. 학교에 잘 다니지도 않았고 시간을 많이 버렸죠. 그 때부터 내 맘대로 하는 버릇이 붙어서 지금까지 제 멋대로 입니다”
식당 ‘미로’는 처음에 88 올림픽에 맞춰 한국음식을 알리자는 목적으로 열었던 한식당이었다. 궁중요리 전문 주방장을 고용해 전통한식을 서브했는데 어느날 주방장이 나가버리면서 주인 댁스가 주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만들어본 것이 최초의 퓨전 한식요리의 탄생이었다.
“그때 이태리 음식이 유행이었죠. 파스타가 미국인들 사이에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이라 한국 재료를 갖고 이태리 음식을 만들어보자고 한 것이 김치 파스타였습니다. 김치를 다져서 와인과 크림을 넣고 볶은 소스를 먹어본 사람들의 첫 반응이 의외로 좋더군요”
재미있어서 또 만들어본 것이 크림소스 만두. 라비올리의 컨셉을 갖고 만든 것으로 다진 야채에다 치킨, 비프 혹은 새우로 속을 넣고 프렌치 이탤리언 소스를 뿌려낸 것이다.
그 다음엔 고추장을 이용했다. 고추장에 몇가지 야채와 케첩 등 미국 재료를 섞어 만든 소스는 양고기에 발라 구웠을 때 기가 막힌 맛을 내었다. 그런 식으로 코리안 피자(빈대떡)를 소개했고 전복죽도 색다른 요리가 되어 새로 태어났다. 그때의 메뉴를 보면 요리의 이름들이 이렇다.
James Joyce Pan Fried Seafood Pizza (해물전)
Henry Miller Dumplings w/ cream sauce (만두)
F. Scott Fitzgerald Tofu w/ Bulkoki (불고기 두부)
Marcel Duchamp Kimchi Pasta w/ shrimp (김치 파스타)
Le Courbusier Lamb w/ secret sauce (고추장 양고기구이)
앞에 붙은 사람 이름들은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름. 16년전 LA에서 이렇게 특이한 메뉴들을, 예술 감각이 물씬한 디자인으로 멋을 내어 붙여놓았으니 푸드 비평가들이 호들갑스럽게 찬사를 보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런데 그 이후 댁스는 무엇을 했을까?
“어느 날 갑자기 그만 하고 싶더군요. 그래서 그날로 문을 닫았어요. 사실 그동안도 마음 내키는 대로 열었다 닫았다 했습니다. 여행가면서 닫고, 골프 치느라 닫고, 인테리어 잡이 생기면 또 닫고… 그래도 장사에 큰 지장이 없었던게 신기한 일이죠”
미로를 진짜 닫고 나서 한 2년은 그냥 놀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시 ‘먹고살기 위해’ 오픈한 것이 웨스턴과 2가의 MK. 처음에 아티스트 스튜디오 식으로 꾸민 이곳은 그러나 장사가 되지 않자 다시 주방시설을 넣고 퓨전 스타일의 스낵샵 겸 스튜디오로 운영했다. 그러나 위치 탓이었는지, 불분명한 컨셉 탓이었는지 MK는 1년만에 문을 닫았다.
그 무렵의 어느 한달동안 그는 전시회도 했다. 당시 존 앤 조 갤러리를 운영하던 화가 강태호씨의 권유로 ‘실버, 오일 & 프라잉 팬‘이란 제목의 작품전을 가졌는데 여기서 실버는 사진을, 오일은 그림을, 프라잉 팬은 요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의 예술의 굵은 가지를 이루는 재료들이 호흡을 같이하는 전시회였다.
98년 그는 한국에 나가 큰형과 함께 신사동에 ‘아미 아모’(AMI AMO)란 퓨전 애피타이저 갤러리를 열기도 했다. 컨템포한 인테리어에 작가들의 그림을 걸고 퓨전 요리를 선보이던 이곳은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도 하는 도심속의 특이한 공간으로 뜨면서 곧 강남의 명소가 되었지만 그는 6개월만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팔방미인 독립군’으로 이일, 저일 하기를 몇 년, 이번에는 둘째형 헨리 류씨가 한인타운에 식당을 열자고 제의해왔다.
형이 자본을 대고 동생이 인테리어로부터 메뉴까지 맡아 작년 초 문을 연 것이 ‘미소‘. 처음에는 퓨전 식당을 계획했으나 한인타운에서는 퓨전으로만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 일본인 셰프를 따로 고용해 일식을 넣었다. 아직까지는 단골 장사라 큰돈은 못 벌지만 요즘 댁스 류씨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한국 퓨전요리 창시자라는 사람이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지 않았던 게으름을 인정해야겠어요. 생각은 많은데 실천이 안 된거죠. 그러나 이제는 국제적으로 해볼 생각입니다. 왠지 모를 애국심도 생기고 우리 문화, 우리 맛에 대한 자부심이 갈수록 더 커지거든요”
그는 구체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체인 레스토랑을 계획하고 있다고 들려주었다. 중국 시장의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것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는 사실. 거기에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한류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보고 이들을 겨냥한 브랜드 식당을 창조할 생각이란다.
벌써 머릿속은 전세계를 뛰어다니고 있는 타고난 보헤미안, 한없이 떠돌기 쉬운 그를 꽉 붙잡아주는 사람들이 아내 구재정씨(40)와 아들 마이클(7)이다.
그가 주방맡은 ‘미소’에 가면…
‘맘대로해’ 시키면 어떤 요리 나올까?
미소에 가면 ‘맘대로해’(FYB-Follow Your Bliss)라는 이름의 코스 메뉴가 있다.
주방장 맘대로 내오는 코스 음식이라는 뜻인데 카르파치오와 다다끼, 사시미에 이어 그날그날 재료의 신선도나 손님의 기호에 따라 달라지는 메인 디시(스테이크 류)가 나오고 마지막은 김치 파스타로 입가심하는 7개 코스 요리이다.
가격이 35달러로 다른 일식당 코스 메뉴에 비하여 턱없이 싼 편이라 알고 찾는 손님들이 계속 늘고 있는데 ‘작품활동’에 매진하다보니 남는게 별로 없다는 것이 주방장 댁스와 그의 형이자 식당주인인 헨리 류씨의 푸념이다. 또 다른 코스 메뉴 ‘미소‘는 49달러로 비슷한 코스이지만 생선과 재료를 좀 더 비싼 것으로 만드는 음식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외에 런치 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은 스파이시 튜나 덮밥, 장어 덮밥, 사시미 샐러드, 명란 파스타와 시푸드 파스타 등이 미소만의 메뉴다.
<글·사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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