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딸 가진 어느 부모의 마음이 안 그러하랴마는, 내 어머니도 남 못지 않았다. 교수가 소개해 준 남학생이면 그래도 믿을 만 하건만, 외삼촌을 시켜 성적증명서도 떼어보았다. 그래서 우리 집안에서는 남편이 성적에 관한 한 과장을 못하게 되어 있다. 3학년 1학기 구조설계가 B학점이었다는 물증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5월의 신부가 되기로 한, 남편의 까마득한 후배 여학생이 느닷없이 주례를 부탁하는 바람에 4월 한 달은 무거운 스트레스 속에서 보냈다. 어려운 숙제를 받은 아이처럼 남편은 시간이 나면 주례 예화집을 뒤지고, 목사님께 예식서도 빌려오고, 서점에도 다니고 하였다. 워낙 참견을 못하게 하는 무뚝뚝 경상도여서, 애가 타도 내색은 못하고, 가끔 진척상황을 알기 위해 “잘 안되면 내가 써볼까?” 이러면, “고마 니가 주례까지 서라” 이러는 바람에 지켜보기만 했다.
주례를 서려면 두 사람에 대해 알아야겠기에 세 번 만났다. 후배 여학생은 우리 집에 드나들던 이여서 괜찮았으나 신랑감은 보아야겠기에 말이다. UC버클리 대학원에 유학 와서 만난 두 사람은 건축 설계를 전공한 새내기 Architect이다. 객지에 와서 얼굴 맞대고 공부하다가 쓸쓸하던 차 정이 들었나보다.
순전한 한국식 사고로 말하자면, 겉으로 보이는 조건은 여자가 월등하다. 키도 후리후리하고, 공부만 한다는 학교 출신의 여학생 치고 미모이다.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신랑은 그 보단 조금 처지는 한국의 유명 사립대학을 졸업하였다. 인물은 여자보다 훨씬 겸손하다.
집안도 여자 집은 인텔리전트하고 재력가인데 비해, 신랑 쪽은 지방 소도시의 은퇴 공무원 가정이 막내아들이다. 딸이 죽어도 결혼하겠다는 신랑감이 못 미더운 아버지는, 생각다 못해 딸의 남자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정이 친구 이군에게… 현정이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고맙게 생각하네. 현정이 아버지로서 우선 아래 2개 질문에 대한 자네의 생각을 듣고 싶네.
1.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요 단계별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나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나 가장 자랑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를, 그리고 창피스러웠거나 실수하여 가슴 아팠던 일들 중 하나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 보내주겠나?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 직장 근무 시절, 유학 시절.
2. 향후 3년간 아래 3가지 분야에서 꼭하고 싶은 일들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실현하고 싶은 일을 한가지씩만 적어 보내주게 -경제 관련 부분, 일이나 사회활동 관련 부분, 가정과 관련되는 부분”
재미있는 것은 간단히 2개의 질문이라 하고는, 조합하면 꽤 질문의 양이 방대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근심이 많고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아버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질문서이다. 신랑감은 그 written test는 일단 합격을 한 것이다.
답변의 내용과 직접 만나본 후의 소감을 합쳐보면 절대 기우는 혼인이 아니라 아주 조화로운 한 쌍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덜렁대는 신부에 비해 말수 적고 찬찬한 신랑이라든지, 늘어놓는 주부에 정리 잘하는 남편, 꼭 우리 부부의 20여년 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남편의 주례사는 염려했던 것 보다 좋았다. 기독교 정신이 가미된 현대식 주례사였다. 주례를 준비하려고 서점에 가보니 부부 관계를 정의해 놓은 책들이 많더라고. ‘행복한 가정생활’ ‘아름다운 부부생활’ ‘성공적인 만남과 후회 없는 결혼’ ‘결혼 전 꿈, 결혼 후 현실’ 등등. 이렇듯 지침서가 많은 것은 그만큼 좋은 부부 관계를 만들며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며, 이미 중세 때 혼인을 ‘흰색 순교’라고 정의했다나? 피 흘림의 예수의 순교는 붉은 순교인데 비해. 많은 인내를 요하는 부부 사이엔 ‘흰색 순교’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고.
그리고 즐거울 때 둘이 걷던 발자국이, 어려울 때는 주님이 우리를 업어 한 발자국 되었듯이 부부도 그러해야 한다는 요지의 간략한 주례사였다.
그걸 들으며 나만의 눈물 바람을 했다. 주례사가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현실로 돌아가 복잡다단한 결혼생활을 하며 경험하게 될 그들의 어려움이 지레 걱정이 되어서, 마치 이모라도 된 듯 눈물이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5월에 탄생한 그들 부부를 보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즐거우나 괴로우나,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에서든지, 서로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순종하고,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해로하기를.
이정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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