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사를 닮아 타고난 개구쟁이 셋째 동혁이와 엄마 같은 언니 미혜가 은솔이를 가운데 두고 장난을 치고 있다.
사진으로 만난 은솔이
한국방문 시어머니가 앞장서 주선
양부모 예비교육등 수속만 10개월
“어머니, 이번에 희망원에 가시면 우리가 입양할만한 아이가 있는지 좀 알아봐 주세요”
시어머니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청주의 고아원에 들린다는 걸 알고 있던 한나씨가 2001년 시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드린 부탁이었다.
공개입양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가타부타 아무런 말씀도 없이 항상 웃음으로 화답하던 시어머니는 그 날도 그냥 입가에 웃음만 띠우신 채 한국 방문 길에 올랐고, 이번에도 허락을 얻어내지 못한 한나씨는 다음 기회를 엿보아야했다.
박목사를 닮아 타고난 개구쟁이 셋째 동혁이와 엄마 같은 언니 미혜가 은솔이를 가운데 두고 장난을 치고 있다.
그리고 3주후, 미국으로 돌아온 시어머니는 “여기 네 딸 있다. 봐라”하며 사진 한 장을 불쑥 내미셨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입양을 원하는 며느리를 마음깊이 이해하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승낙하신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주신 사진 한 장을 받아들고 “우리 딸 예쁘네요”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이미 은솔이는 한나씨의 딸이 돼버렸다.
이후 이들 부부는 동방사회복지회를 통해 입양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음속으로 준비해온 입양이었지만 수속이 꽤나 복잡했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어도, 양부모 예비교육을 받기 위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야 했고, 미국에 오기 위해 비자 수속을 하면서 위탁모가 키우는 은솔이와의 첫 대면도 이루어졌다.
이렇게 은솔이를 막내딸로 입양하는데 소요된 기간은 10개월, 그 동안 소용된 입양비용은 2만 달러에 달했다. 목회자 월급으로 네 아이를 키우던 박목사 입장에서 2만 달러의 입양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그러나 박목사는 크레딧 카드를 긁어가며 입양비용을 지불했다. 많은 사람들이 융자를 내어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사는데 입양비용이라고 이런 방식을 이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주례를 많이 서는데, 예비부모에게 늘 강조하는 게 있어요. 아이는 하나님께서 잠깐 맡겨주신 존재다.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을 다해 기르고, 성인이 되면 사회인으로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슴졸인 은솔이의 LA생활
가족눈치 안보는 보통아이 되길 기원
2년 지나자 첫 말문이 ‘아이 러브 유’
은솔이는
다른 엄마 뱃속에 있었고.
다른 엄마가 사랑했는데
키울 수가 없어서
엄마가 키우는 거지…
2002년 6월 생후 21개월 된 은솔이가 LA에 도착했다.
그 날은 박목사 부부는 물론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아이들 모두가 은솔이 얼굴을 먼저 보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는데도,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은솔이는 늘 방긋거리는 웃음으로 사람들을 쳐다봐 귀여움을 독차지한 날이었다.
“둘째 미혜가 ‘동생이 또 생긴다면 이번에도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아빠에게 늘 ‘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딸’이라는 말을 들으며 하나뿐인 딸로 사랑을 받아왔거든요. 은근히 딸에게 신경이 쓰였는데, 은솔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괜한 걱정이었다고 후회했어요”
인터뷰하는 날 양 갈래로 예쁘게 땋아준 은솔이 헤어스타일도 실은 열두 살 짜리 미혜의 솜씨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미혜 옆에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는 은솔이는 언니랑 그림 그리는 걸 제일로 좋아한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게 있어요. 은솔이가 집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에요. 낮잠을 자라고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줬는데 가만히 나를 쳐다보며 눈을 깜빡거리는 거예요. 그래서 잠이 오나보다고 생각하고 부엌에 갔어요. 한 시간쯤 지났을까. 하도 조용해서 은솔이에게 다가갔죠. 근데 여전히 나를 쳐다보며 눈을 깜빡거리네요. 보통 아이들이 어디 그래요? 낮잠 자라고 눕히면 안아달라고 칭얼대고, 잠이 안 오면 부스럭거리다가 울고 떼쓰고 그러잖아요”
은솔이가 내 집, 내 아빠, 내 엄마로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는 한나씨는 이후 은솔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떼쓰고 심통도 부릴 줄 아는 아이가 되기를 기도하며 기다렸다.
입양한지 2년이 되어 가는 지금에야 가족들 눈치보지 않고 투정도 부릴 줄 알며, 목소리를 높일 대로 높여 ‘아이 러브 유, 유 러브 미(I love you, you love me)....’ 노래를 부른다는 은솔이. 이미 자신이 언니와 오빠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한나씨는 은솔이를 위해 준비해둔 말이 있다.
“유치원에 가면 아이들이 묻는 질문이 있어요.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어땠어? 아팠어?’ 아마 은솔이도 그런 비슷한 질문을 하겠죠. 그러면 그 때 솔직하게 말해줄 겁니다. 은솔이는 다른 엄마 뱃속에 있었다고. 다른 엄마가 사랑했는데 키울 수가 없어서 엄마가 키우는 거라고.”
한국입양 홍보회는…
아직도 입양은 한국이나 한인사회에서 낯설고 힘든 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입양문화가 확산돼야 한다는 전제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진 건 분명하고, 입양에 대한 인식들이 달라져 박목사 부부처럼 친자가 있는 가정의 입양이 점차적으로 늘어가는 추세다.
한국의 입양문화 확립에 크나큰 공헌을 한 기관이 LA한인 스티브 모리슨(한국명 최석춘)씨가 설립한 한국입양홍보회(MPAK)이다. ‘입양! 속터지는 이야기’ 게시판에 게재됐던 경험담을 모아 ‘아름다운 입양이야기’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야기’ ‘선물’ 등의 입양관련서적을 펴낸 한국입양홍보회는 온라인,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아이 키우는 재미를 알콩달콩 나누는 공개입양부모모임이다.
한국입양홍보회 웹사이트(www.mpak.co.kr)에 접속하면 한국 내 입양기관 및 양부모 조건과 절차 등 자세한 입양안내가 돼있고, 일기마을 중 ‘미주마을’을 클릭하면 한인입양홍보회의 설립자 스티브 모리슨씨(조셉이네집)를 비롯해 일곱 가정의 입양일기장과 사진첩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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