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백수잔치를 치른 조병숙씨에게 파인애플을 먹여주는 그레이스 박씨. 다정하기 그지없는 모녀지간이다.
어머니 날에 들어보는 모녀·고부간 사랑 2제
오늘은 한국의 어버이날, 내일은 미국의 어머니날이다.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가슴 뭉클함과 포근함으로 다가오는 어머니. 아무리 억척스럽고 늙어 볼품없다해도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고,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어머니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다. ‘어머니’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자기 희생’이다. 세상살기가 좋아진 현대사회에서는 어머니도 무조건 자신을 희생하기보다는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이 곧 가족의 행복과 연결되는 새로운 어머니상이 확립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희생과 가족의 행복을 맞바꾼 장한 어머니들이 있다. 또 이런 어머니를 곁에 두고 훌륭한 어머니상을 이어가는 딸과 며느리가 있다. 지난달 25일 백수연을 치른 ‘장한 어머니’ 조병순씨와 외동딸 그레이스 박씨의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다정한 모녀지간과 ‘훌륭한 어머니’로 선정돼 2년 전 밀알상을 수상한 안희순씨와 며느리 신주희씨의 딸보다 가까운 고부지간의 사랑을 소개한다.
어머니 조병숙씨 백수연 차려준 외동딸 그레이스 박씨
“진작에 잔치하는 줄 알았으면 못하게 했을 거야. 아직도 세상엔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 생일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냥 집에서 밥 한끼 먹으면 됐지. 바쁜 사람들 불러서는...”
지난달 25일 세리토스 가든 부페에서 백수연을 가진 조병숙씨는 100세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자세도 바르고 환한 웃음이 고운, 꼿꼿한 할머니다.
조씨의 손을 붙들고 이층 계단을 내려오던 외동딸 그레이스 박(62)씨가 “사람들을 초대해 성대하게 잔치를 한다면 못하게 할게 뻔해 당일 아침에 미장원 가서 머리하고 한복을 입혀드리며 ‘오늘 어머니 백수 잔치하는 날’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아직 화가 덜 풀려 저러신다”고 귀띔한다.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긴 해도 조씨는 아직까지 한번도 교회 예배에 빠진 적이 없고, 매일 아침 2∼3시간씩 외손자로부터 시작해 미국과 한국에 있는 가족 모두와 교회 식구들을 위해 기도할 만큼 정정하다.
물론 나이가 나이인지라 귀가 어두워 소리를 지르듯이 말해야 겨우 대화가 가능하지만, 한번 이야기 보따리가 터지면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는 할머니다.
조병숙씨는 아주 오래 전 이승만 대통령 표창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그 시절 한국여성들이 그렇듯이 제대로 배우진 못했어도 대쪽같은 성격과 지극 정성으로 4남1녀를 키운 조씨가 장한 어머니상을 받은 사연은 당시 연합신보에 대서특필됐다.
사연인 즉, 6·25전쟁이 터지자 군인이던 조씨의 큰아들이 이북으로 납치됐고 얼마 안 있어 작은아들이 시골에서 고구마를 실어오다가 을지로3가 파출소로 붙잡혀 빨갱이로 내몰려 거제도로 보내졌던 것.
전쟁통에 두 아들이 행방불명되자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던 조씨는 그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엄동설한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뒤뜰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자식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고 한다.
그렇게 6년이 흘렀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6년만에 두 아들이 포로석방이 되어 헬리콥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를 모두 지켜봤던 동네 사람들이 “모두가 조씨의 지극 정성 덕분”이라며 정부에 추천을 했고 대통령으로부터 장한 어머니상을 받은 것이다.
아들, 며느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외동딸만 못하다고 한사코 딸집에만 머무르고 있는 조씨에게 건강 100세 장수비결을 물으니 옆에 있는 딸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침마다 맨손체조 시켜드리고, 채널9에서 방송하는 설교 빠지지 않고 함께 보고, 하루 세끼 꼬박 챙겨드린 게 전부에요. 워낙 정신력이 강한 분입니다”
늙으니까 고장난 곳이 많아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다는 어머니를 위해 몸에 좋다는 건 어떻게 해서든 구해드리고 어머니 얼굴에 검버섯이 피어나는 게 싫어 피부과에도 모시고 다녔던 박씨는 “어머니 사랑이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어머니가 늙고 병약해지는 순간부터는 자식이 사랑을 갚아야한다”며 “자식된 도리를 다할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양로병원 시설이 아무리 좋다해도 어머니를 그 곳에 모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박씨는 30대 초반이던 유신정권 시절부터 종로·중구 1지구당 부녀회 총무로, 여성분과위원장으로 사회봉사활동에 앞장섰던 맹렬 여성이다. 70년대 초 공화당 훈련원으로 입당, 20년 가까이 정당인으로 살았다는 박씨는 “서울에 있는 양로원, 고아원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자식, 손주 뒷바라지를 도맡아준 어머니 덕택”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은 이제 어머니와 딸의 역할을 바꿔 놓았다. 81년 어머니와 함께 이민 온 박씨는 미국에 온 이후로는 연로하신 어머니 곁을 떠날 수가 없어 교회봉사 한번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박씨야 딸이니까 그렇다해도 사위 박성훈(65)씨는 또 어떠했을까. 30년 이상 장모와 한집에 살면서 아무리 더워도 장모 앞이라 웃통 한 번 맘대로 벗지 못했다는 박씨는 “연로해지시면서 가스도 틀어놓고, 물도 계속 틀어놓는 바람에 우리 부부가 말다툼을 하게 하시지만, 그래도 장모님 모시는 덕분에 손위, 손아래 처남 4명이 내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고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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