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트리 셰프 서미영씨가 ‘러미타지’ 호텔내 식당에서 자신이 만든 디저트들을 자랑하고 있다.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디저트들. 멋스런 붓칠 하나로 선과 점, 태극 무늬를 자연스럽게 그려넣은 초컬릿 토르트, 밀크초컬릿 타워 등이 섬세한 멋과 맛을 선사한다.
서미영 디저트 전문가의 발렌타인데이 디저트
‘러미타지 호텔’페이스트리 셰프
81년 도미, 셰프 킴 컬라의 영향
유명 식당·유럽 돌며 요리 익혀
음~ 예쁘기도 해라.
이걸 먹으라고 만들어놓은 걸까,
보라고 만들어놓은 걸까.
아까워서 어떻게 손을 댄담…
멋 부린 공주처럼 거만하기 이를 데 없고,
손만 대면 부서질 듯 섬세하기 짝이 없어.
초컬릿 무스, 피나콜로다 블랑만제, 카라멜 토르트…
세련되고 앙증맞은 모습이 만든 사람을 꼭 닮았네.
“밸런타인 데이에는 무엇보다 초컬릿을 주제로 한 디저트가 가장 어울리겠죠. 초컬릿 피칸은 피칸 초컬릿 케익과 블랙베리 가나쉬, 마시맬로 레이어로 만든 것인데 제 딸 캐시가 좋아하는 한국산 초코파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랍니다. 핑크 로즈버드가 장식된 케익은 패션 프룻 커드를 중간에 넣고 밀크 초컬릿 무스와 조화시킨 것이고, 화이트 초컬릿 크림 크레페 파우치는 바나나를 크림에 인퓨즈 시킨 후…”
무슨 소린지 대체로 못 알아들으면서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서미영씨(46·미셸 서).
베벌리 힐스의 ‘러미타지’(Raffles L’Ermitage) 호텔의 페이스트리 셰프(Pastry Chef), 쉽게 말하면 디저트 전문 요리사이다.
서양요리에서 디저트란 무대공연의 피날레와 같이, 식사를 마무리 짓는 화려한 마침표.
달콤하고, 부드럽고, 쌉싸름하고, 새콤하고… 음식의 허영심과 자존심이 맞대결하여 혀가 느낄 수 있는 최대한 맛있는 감각을 낸 결정판이라고 보면 된다.
달고 칼로리가 높은 디저트는 다이어트 차원에서 건너뛰는 사람이 많지만 음식을 오랫동안 천천히 먹고 여유를 남겨두었다가 마지막으로 커피나 디저트 와인과 함께 조금씩 떼어먹는 디저트야말로 수많은 연인들을 달콤한 핑크 무드에 빠뜨릴 훌륭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
와인·치즈·초컬릿등 재료에 대한 이해 중요
미각,후각에 새콤·달콤·쌉쌀함 함께 감지
변화무쌍한 모양·기교로 유행에 민감해야
서미영씨의 스케치 노트를 보면 디저트가 예술이며 작품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노트에 그려진 수많은 그림과 함께 재료와 색상 등이 자잘한 글씨로 여기저기 쓰여있는 스케치는 얼마 후면 실제로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공개된다.
지난달까지 밸런타인 데이와 그래미상 VIP 들을 주제로 한 디저트 만들기에 바빴다는 서씨는 요즘 부활절용 디저트와 NBA 결승 파티때 내갈 플레이트를 스케치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보통 행사 몇 달전에 스케치에 들어갑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하죠. 요리사란 겉으로 보기엔 멋있지만 직업으로 하려면 힘들어요. 하트와 열정이 있어야 하고 계속 바뀌는 음식의 유행에 민감해야지요. 뿐만 아니라 와인, 치즈, 초컬릿 등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 매우 중요합니다. 재료가 토양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죠”
음식중에서도 가장 변화무쌍한 모양과 맛과 기교를 요구하는 디저트는 그런 만큼 변화와 유행에 민감해 셰프들의 무한한 창조력이 필수조건이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전세계 디자이너들이 즉시 모방에 들어가는 것처럼 제과제빵 업계도 일년에 두 번 발표하는 거장의 작품에 따라 트렌드가 창조되고 전세계 페이스트리 셰프들의 모방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렇게 숨가쁜 요리업계에서 작고 가냘픈 체구의 동양여성 서씨가 어떻게 지금에 이를 수 있었을까?
서미영씨는 81년 도미,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유학하면서 파리장 쿠킹스쿨을 다닌 것이 리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되었다. 87년 LA로 이주한 그녀는 UCLA 익스텐션 클래스에서 유명한 셰프 킴 컬라를 만났는데 그의 독려로 디저트 전문 요리사의 길로 들어섰다.
컬라의 밑에서 1년간 도제과정을 거친 그녀는 88년 베벌리힐스의 유명식당 ‘카페 로마’(Cafe Roma)에 입사, 3년동안 입맛 까다로운 스타들의 디저트 취향을 파악한 후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와 이태리 등지의 음식문화를 견학했다. 다시 돌아와 로데오 드라이브의 ‘알마니 카페’에서 일한 서씨는 94년 산타모니카에 자신의 베이커리 ‘미셸 & 컴퍼니’(Michelle & Co.)를 오픈했으나 세상 물정을 몰랐던 탓에 1년후 문을 닫고 말았다.
무 힘들었어요. 유대인 일색인 지역이라 더 했지요. 무설탕, 무지방, 넌 데어리의 페이스트리 샵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그런 컨셉이 먹혀 들어가지 않았죠”
그후 베이커리 카페 ‘미스토’의 매니저를 거쳐 토랜스의 ‘아이올리’ 식당 페이스트리 셰프로 들어갔으며 이때부터 그녀의 실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97년 서씨는 캘리포니아 식당비평가협회로부터 ‘올해의 페이스트리 셰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고 이어 99년에는 산타모니카의 유명식당 ‘마이클스’에서 일하면서 ‘푸드 & 와인’과 ‘트래블 & 레저’ 잡지에 크게 소개되는 등 ‘잘 나가는 셰프’로 업계에 이름을 걸게 되었다.
호텔 ‘러미타주’의 페이스트리 셰프로 영입된 것은 2002년. 베벌리 힐스 버튼 길에 위치한 러미타지 호텔은 5 스타급 호텔이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프라이빗 한 호텔로 스타들이 즐겨 이용하는 곳이다. 특히 오스카나 그래미상 시상식이 열릴 때면 스타들로 만원사례를 이루기 때문에 호텔 주방의 메뉴가 최고급 식당과 맞먹는 수준.
곳서 섬세한 디저트 예술을 매일 창조하고 있는 서씨는 요즘 한국에서 갑자기 음식문화가 발전하면서 요리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많아진 현상에 대해 우려를 보이기도 한다.
“요리는 푸드 채널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한 쇼가 아니예요. 투철한 장인정신과 예술성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요리학교에 좀 다니고 나면 너도나도 ‘셰프’라고 부르는 무지함도 안타까울 뿐이죠”
서씨는 오랜 경험과 훈련을 거쳐야 하는 셰프는 요리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요리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주방에서 여러 사람을 지휘할 리더십이 있어야 하며, 음식의 단가와 장사에 대해서도 현명함을 갖춘 비즈니스맨이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요리 업계에서 일하는 또 한가지 힘든 것은 육체적으로 큰 힘이 필요한 것. 여자 주방장이 적은 이유도 그 때문으로 하루 11시간씩, 바쁠 때는 13시간씩 주방에 서서 뱅뱅 돌며 일해야 하는데 발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셰프들이 신는 신발(clog)이 따로 있을 정도란다. 뿐만 아니라 주방에서 쓰는 기구들은 가정용이 아닌 대형이라 하나같이 크고 무거운데 매번 남의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일이니 모든걸 억척스럽게 해내야 한다는 것. 또한 식당에서 많이 고용하는 히스패닉 남자들은 여자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권 출신이라 말못할 고충도 있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들을 뛰어넘는 방법은 하나, ‘실력과 포용성’이라고 말하는 서씨에게서 오랜 경험과 훈련을 쌓은 프로의 성숙함이 느껴졌다.
남편의 서포트와 격려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서미영씨는 서경원씨(JC세일즈 부사장)와의 사이에 올해 고교 졸업하는 아들과 대학 다니는 딸을 두고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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