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아내는 올해로 삼 년 차 불임부부입니다. 많은 다른 불임부부들에 비하면 삼 년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니지요. 지금까지 세 번의 인공수정시도 후 실패하고 시험관아기시술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길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의 저희 부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2001년 1월 7일 삼십 년만의 폭설로 한반도가 모두 하얗게 덮인 날, 아내와 저는 결혼을 했습니다. 모든 교통수단이 마비되어 신혼여행조차 갈 수가 없었지만 무사히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던데 감사하며 저희 둘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특히 저에겐 더한 감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저에게 고등학교시절 첫사랑이었기에 그 날은 내 생애의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몇 달 후 미국으로 발령이 난 저를 따라 아내는 하던 일을 버리고 저를 따라와 주었습니다. 친구도 친척도 없는 미국에서 아내가 외로워 할까봐 빨리 아이를 갖기로 했습니다. 정말 무지하던 저는 그냥 결혼만 하면 아이가 생기는 걸로 알았습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여섯 달이 지나서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일년쯤 지나 아내는 불임검사를 해보자고 했지만 벌써 검사를 해본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그냥 기다리면 되려니 하는 막연한 생각에 좀더 기다려보자는 말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아내는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소리도 없이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할 때 한 시간쯤 흘러 아내가 나왔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벌써 일어났어? 몰랐네… 그러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저는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려 하는데 쓰레기통에서 휴지에 싸여 얌전하게 누워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펼쳐보았습니다. 그것은 선명하게 한 줄이 그려진 임신 진단기였습니다. 갑자기 그전 일들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씩 화장실에서 소리도 없이 나오지 않던 아내… 임신진단기를 들고 한 시간을 앉아서 얼마나 두 줄이기를 빌었을까요? 하지만 그녀는 그때까지 한번도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었습니다. 이 년 동안 기다리며 매달 한 줄이 그어진 진단기를 들고 얼마나 속으로 울었겠습니까? 불임검사가 힘든 일도 아닐 텐데 왜 제가 차일피일 미뤄왔는지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저는 그 날로 바로 병원을 알아보고 LA에 차병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를 받았습니다.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저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남자불임은 아주 극소수에서 나오는 일 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불임원인은 반반이라고 하시는 말씀에 저는 정말 깜짝 놀랬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니 인공수정이 가능하다 하셔서 바로 시술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날짜에 맞춰 약을 먹고 주사도 맞으며 시술준비를 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저 때문에 인공수정을 해야 하는데도 힘든 것은 모두 아내 차지였습니다. 주사도 맞아야 하고 초음파도 해야 하고 시술도 받아야 하고…. 시술하고 집에 와 누워있는 아내를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파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후유증으로 복수가 차 올라 숨도 헉헉거리며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도 나를 향해 웃으며 여보 나 진짜 임신한 사람 같지 않아? 나…아까 길에서도 임신한 척 배 내밀고 다녔다 헤헤. 그러나 첫 번째 시술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절대 힘들다고 못 견디겠다고 울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두 번째 시술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매일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아내는 씩씩하게도 자기 배에 주사를 꽂으면서 절 보며 여보 나 이거 너무 재미있어. 꼭 병원놀이하는 거 같아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말 엽기적이라 하겠지만 저에겐 정말 슬픈 얘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주사도 씩씩하게 잘 맞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싫어하는 곰국(착상에 좋다면서)도 열심히 먹었습니다. 하지만 또 실패, 첫 번째보다 두 번째에 성공 가능성이 많다고 하여 저도 내심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아내를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나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내는 괜찮아, 이제 두 번인데 뭐 다른 사람들은 시험관을 열 몇 번씩도 한다고 하더라,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자! 응? 하면서 아내는 오히려 저를 위로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아내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두 달 후 다시 시작한 세 번째 시술, 이번에는 엉덩이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더군요.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놔주기로 했습니다. 다들 주사 맞는 게 젤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아내는 주사기를 들고 와서는 날더러 자…병원놀이 할 시간이에요 그러며 씩씩하게 잘 맞았습니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번에는 장모님이 태몽도 꾸셨다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도 기대를 많이 하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시술 후 14일도 채우지 못하고 실패를 한 것을 알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번에 안되면 시험관을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얼마나 멋진 놈이 나오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냐고…. 그것은 아내가 첨으로 한 투덜거림이었습니다. 그래도 역시나 저를 오히려 위로하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아내는 울지 않습니다. 원래 눈물이 없냐고요? 얼마 전 ‘다모’라는 TV드라마를 보다가 슬프다며 통곡을 하고 운 아내입니다. 다시 삼 년 전 제 결혼식 날로 돌아가서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결혼식당일 아내는 서울에 있었고 저는 결혼식장인 마산에 있었습니다. 결혼식 전날까지도 회사 일로 바빴던 그녀는 당일 아침 비행기로 내려오기로 했었습니다. 기상예보에도 별일이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산간지방 곳곳에만 눈이 내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2001년 1월 7일 아침, 삼십 년만의 폭설로 모든 교통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결혼식 시작 시각인 12시를 넘긴 오후 1시쯤, 공항에서 비행기가 다시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기차는 괜찮을 테니 지금 기차역으로 간다구요. 그러고는 아홉 시간 후에 그녀가 마산에 도착했습니다. 입석으로 서서 여섯 시간을 달려 온 것입니다. 신부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들고서 말입니다. 밤 아홉 시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결혼식을, 고맙게도 밤까지 남아서 기다려준 많은 친척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입석을 타고 내려온 도우미 아줌마와 비디오 기사님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신부가 정말 대단하다고…어찌 저런 상황에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오히려 자기들에게 힘들겠다며 서서 기차 타고 내려오는 동안 계속 웃으며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기도 하고 그랬다며 어디서 저런 색시를 구했냐고. 자기들도 중간에 포기하고 그냥 가고 싶기도 했지만 저렇게 씩씩한 신부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고. 아니 더 용기가 나서 기분 좋게 왔다고.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장가 하나는 잘 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친지들을 배웅하고 저희는 근처 호텔로 향했습니다. 아내는 친척들에게도 웃는 얼굴로 모두에게 빠짐없이 인사하고 다시 한번 결혼식에 늦어 죄송하다고 했었습니다. 호텔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있는데 아내가 침대 끝에 앉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씩씩하던 아내가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한참을 울고 나더니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 종일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참았다고 내가 울면 나를 위해서 와준 사람들이 더 힘들 것을 알기에 더 울 수가 없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끝까지 참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아내는 울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슴속에 눈물이 고여 고여 바다를 이루고 있을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내는 끝까지 울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울면 제가 힘들 것이라 생각하기에 절대 울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시술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내를 닮아 예쁜 아기가 품에 안기는 날 아내의 눈에선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아마도 통곡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세상에 영원한 불임은 없다고 하더군요. 아내의 눈물샘이 말라비틀어지는 그 날이 곧 머지않아 오리라는 걸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아내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줄이려 합니다.
이범석·황선미 부부(글렌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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