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사 건물 1층에는 아담한 뒤뜰이 있다. 실내가 답답할 때면 누구나 가끔씩 나가 바람을 쐬기는 하지만 그 뜰을 단골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애연가들이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 뒤뜰이 많이 한산해졌다. 재떨이로 쓰는 커다란 화분 속에도 담배꽁초가 전같이 수북하지 않다. 새해 첫 주 - ‘금연’ 결심들을 한 모양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새해가 되면 새로운 기대로 가슴이 부푼다. 삶에 대한 신선한 열정이 되살아나면서,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생기고, 그것이 새해 결심으로 구체화한다.
우리가 새해마다 다짐을 하고 결심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으로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아닌데” “저렇게 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미적미적 습관에 떠밀려 살아오던 것을 새해라는 계기를 맞아 바꿔 보려는 시도가 새해 결심이다.
하지만 대개 내가 바라는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괴리는 나이 들수록 넓고, 그래서 이편에서 저편에 이르는 그 넓고 깊은 강을 건너는 성공률이 높지가 않다. 미국에서는 매년 1억명 정도, 혹은 성인의 40-45%가 새해결심을 한다는 데 그중 40%는 두달이 채 못돼 두손을 들고 만다는 통계가 있다.
가장 흔한 새해 결심은 운동, 체중 줄이기, 금연. 미국에서 사망원인의 60%가 과식이나 운동부족, 흡연 등 평소 생활습관과 관련된 질병으로 인한 것이고 보면 이런 결심들은 삶의 질, 혹은 수명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루 30분씩 걷자”“저녁은 굶는다”“술은 한 달에 한두번”“담배, 죽을 때까지 안 피운다”… 새해 결심들을 말하면서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한두주 지나면 다져먹은 마음이 느슨해지고, 이런 저런 핑계로 결심을 어긴 후 낭패감에 잠깐 젖다가, 2월쯤 되면 결심의 기억조차 아득해지면서 홀가분하게 옛날의 ‘나’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추운 날씨 때문에 독주를 많이 마시는 나라, 러시아에는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교회는 가깝지만 길이 너무 미끄럽고, 술집은 멀지만 조심해서 걸으면 된다”
교회에 가려면 핑계가 많지만 술집은 멀건 가깝건, 눈이 오건 비가 오건 문제가 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
무엇이 ‘교회’와 ‘술집’에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낼까. ‘교회’는 마땅히 가야 할 곳, ‘술집’은 피해야 할 곳, 그러나 교회에 가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반면 술집은 몸 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이다.
행동변화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새해 결심을 비롯한 모든 결심이 실패하는 이유는 자신의 의지력에 너무 의존하기 때문이다. 독하게 마음먹고 ‘다이어트 하자’‘운동하자’ 결심을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무참하게 실패하고 마는 것은 습관의 위력을 무시한 탓이다.
습관이란 오랜 세월 반복해서 거의 본능처럼 굳어진 행동양식.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무의식’의 단계이다. 반면 의지력은 아무리 강해도 ‘의식’의 단계에 머문다. 의식적 목적보다는 무의식적 충동이 더 강렬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바이다.
먼길 마다 않고 달려가는 ‘술집’, 혹은 ‘오랜 습관’ 대신 ‘교회’ 즉, ‘새해결심’으로 마음의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뭔가가 필요하다. ‘술집’의 달콤함을 넘어서는 어떤 것, 바로 ‘동기’이다.
대학생 아들이 비만이어서 늘 걱정하던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지난 몇 달 사이 수십파운드의 살을 빼서 옷이 맞지를 않는다고 한다. 가족들이 아무리 다이어트를 권해도 꿈쩍도 않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에게 갑자기 살을 뺄 이유가 생겼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것이다.
새해 결심은 ‘무엇’을 결심하느냐 보다 ‘왜’ 결심하느냐가 중요하다. 결심의 동기가 분명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일년 내내 삶이 두서없고 원칙이 없다. 올해는 첫 단추부터 차근차근 잘 끼우고 사는 정돈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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