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사에 있어 1881년 10월26일 이른 아침 애리조나 툼스톤에서 벌어진 연방보안관 와이엇 어프 일가 대 소도둑 일가 빌리 클랜튼 형제간에 실제로 벌어졌던 ‘O.K. 목장의 결투’보다 더 전설적 사건도 없을 것이다.
미 서부사의 마지막 대결전으로 불리는 이 결투는 단 30여초만에 끝났다. ‘묘비’라는 이름이 총잡이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걸맞은 사막과 태양과 선인장의 땅 툼스톤은 1880년대 한때 총성과 주먹질과 주정과 술집여자의 교성이 끊어지지 않던 붐타운이었다. 건맨과 무법자와 도박사 그리고 카우보이와 광부들이 은광 노다지를 찾아 몰려들었던 ‘인간 묘지’ 같은 마을에서 법을 지키는 어프 형제들과 소도둑을 업으로 하는 클랜튼 일가간의 묵은 원한이 필사의 총격전으로 대단원에 이른 사건이 ‘O.K. 목장의 결투’다.
전설적 건맨이 된 강인한 법 집행관 와이엇과 그의 친구로 폐병을 앓는 사나운 도박사이며 전직 치과의사이자 또한 냉혹한 킬러였던 닥 할러데이가 주인공이 되어 치러낸 이 결투는 그동안 수많은 책과 영화의 소재가 되어 왔다.
많은 영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버트 랭카스터와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총천연색 ‘O.K. 목장의 결투’(1957)와 헨리 폰다가 나온 흑백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My Darling Clementine·1949·사진)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황야의 결투’라는 이름으로 개봉됐던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은 서부극의 명장 존 포드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시적 웨스턴이다.
이 영화는 와이엇 어프를 직접 알았던 포드가 그에게 바치는 헌사다. 내용과 액션과 연기와 함께 포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인 애리조나 북부 모뉴먼트 밸리에서 찍은 촬영 등이 모두 준수하기 짝이 없는 웨스턴의 서사시. 포드는 극적 흥미를 북돋우기 위해 사실을 다소 변경했지만 가급적 사실에 충실했다.
보기 좋은 것은 와이엇으로 나오는 콧수염을 한 헨리 폰다의 과묵한 모습과 연기. 특히 그의 완숙되고 절제된 연기는 유명한 변경의 법집행자를 수필처럼 묘사한 것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폰다 못지 않게 멋있는 인물이 닥 할러데이 역을 맡은 빅터 마추어다. 폐병으로 심한 기침을 할 때마다 목에 감은 스카프로 입을 막는 마추어는 불치의 병을 위스키로 진정시키곤 했다. 그는 몹시 쓴 표정으로 시한부 인생의 건맨 모습을 표현했는데 셰익스피어의 ‘햄릿’ 구절을 줄줄 외워 영화의 시적 분위기에 신비감마저 부여한다. 영화에서 와이엇과 함께 결투에 나선 마추어는 이 기침소리 때문에 적의 총에 맞아 죽는데 실제로 그는 이 싸움에서 살아 남는다.
와이엇과 닥은 친구이면서 삼각관계를 이루는 것도 야릇하게 로맨틱하다. 클레멘타인은 자기를 피해 툼스톤으로 숨어든 닥을 찾아 이 마을 선생으로 부임한 닥의 전 애인. 그런데 어수룩할 정도로 순진한 와이엇이 이 참한 처녀를 보고 반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약하게 묘사된 인물이 캐시 다운스가 맡은 클레멘타인이다.
이에 반해 술집 가수인 멕시코 여인 치와와로 나오는 린다 다넬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다넬은 닥을 사랑하는 불같은 성격의 여인역을 정열적으로 표현하는데 총에 맞은 자기를 수술하는 닥과 치와와가 나누는 마지막 시선이 가엽다.
영화는 많은 다른 포드의 웨스턴들 처럼 주인공이 먼 지평선을 향해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와이엇은 마을에 남는 클레멘타인의 뺨에 입을 맞춘 뒤 “맴, 나는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이 정말로 좋습니다”라는 말로 작별을 고한다. 카메라가 말을 타고 멀리 사라지는 폰다의 뒷모습이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따라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특히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극적이요 또 침울한 흑백 명암을 뛰어나게 처리한 촬영이 일품. 거의 모든 장면이 치밀하게 구성됐는데 화면이라는 틀 속에 마치 서부 전체를 떠다 옮겨 놓은 듯한 광대하고 거침없으면서도 극사실적인 촬영이야말로 시각미의 잔치라고 할 만하다. 하모니카로 간간이 연주되는 타이틀 송도 감상적이다.
와이엇 어프는 1848년 일리노이 태생으로 한때 역마차 마부노릇도 했으며 총을 놓을 때까지 모두 100여회나 결투를 한 명건맨이었다. 건맨으로는 보기 드물게 81세까지 장수했다. 존 H. 할러데이는 조지아 명문 태생으로 총과 칼에 능했는데 치과의로 개업까지 했으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서부로 방랑의 길에 올랐다. 그가 폐병으로 1887년 35세로 숨지기까지 처치한 인명은 모두 30명으로 기록돼 있다. ‘황야의 결투’가 Fox에 의해 DVD(20달러)로 나왔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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