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늘 사는 게 바빠 주말이면 한 주간 쌓인 피로를 푸느라 늦잠, 그 후엔 아이들에게 미안해 억지로 샤핑몰에 나가 디즈니 만화영화 하나 보는 것으로 부모 된 도리를 다 한 듯 위안을 받던 당신이라면‘담배 끊기’ ‘운동하기’와 더불어 올해 계획에 더해야 할 것이 있다.
주말을 잘 쉬며 새로운 한 주를 위한 재창조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거저 공짜로 주어지는 건 아니다. 세상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휴가와 주말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윤성운(40, 자영업)씨와 미선(40, 주부)씨 부부는 요즘 들어 부쩍 깨닫는다.
지난 해 말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 흔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러 언제 시간을 내서 주택가 드라이브를 해야겠다고 맘만 먹고 있었지 어영부영 하다 보니 어느새 반짝거리는 장식이 없어지고 난 뒤다.
노동절 연휴 때도 마찬가지였다. 애들 학교 가기 전 여름 연휴 끝인데 캠핑을 떠나 대자연에 온 존재를 내어맡기며 온 가족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것은 생각뿐, 막상 당일이 다가오자 운영하고 있는 비디오 샵을 봐줄 사람을 찾다가 그 계획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조화롭고 성공적인 삶을 위한 여러 계획들이 있다. 재정 계획, 사업 계획, 건강 계획, 은퇴 계획, 자녀들 학자금 계획. 이런 리스트들 끝에 주말 계획과 휴가 계획을 더한다고 해서 삶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가 진지하지 않다고 핀잔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오히려 좀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지향하는 존재들은 이런 당신의 변화에 박수를 보내올 것이다.
지난 주말 일찍 저녁상을 물리고 한 자리에 모여 앉은 윤성운씨 가족은 커다란 달력을 펴놓고 2004년 한 해 동안 갖게 될 52번의 주말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까 함께 계획하는 시간을 가졌다.
윤미선 씨는 그동안 한국일보의 레저와 위크엔드 섹션을 읽으며 스크랩 해놓은 기사들을 책상 서랍 속에서 꺼내 들었다. 신문을 펼칠 때마다 들판에 꽃이 폈다는데, 낙엽 색깔이 고운데, 들로 산으로 나가야지 했던 바람들. 올해는‘우리 가족 주말 계획표’에 따라 매주 한 가지씩 이루어가리라는 생각에 그녀는 벌써부터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윤성운 씨는 한 해 동안 쉬는 날이 얼마나 되는 지, 기념해야 할 날들은 언제인지 우선 웹 사이트를 뒤져가며 연구를 했다. www.earthcalendar.net.(Earth Calendar)에 가면 나라별로 한 해 동안 축하해야 할 날들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한국인과 미국인보다 축하하고 기념해야 할 날들이 더욱 많다.
그는 우선 연휴들들 묶어 본다. 1월 17-19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 연휴와 2월 14일-16일 프레지던트 데이 연휴는 어디 놀러 가기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체리 파이를 만들어 보는 등 미국 역사를 체험해 보는 주말로 보내는 것이 아이들 기억에 더욱 남을 것 같다. 11월 25-28일 추수감사절 연휴 역시 온 가족이 칠면조 구이로 저녁 식사를 나누며 크리스마스트리를 함께 장식하는 것이 어디로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더욱 의미 있을 터이다.
5월의 메모리얼 데이 연휴, 7월의 독립 기념일 연휴, 9월의 노동절 연휴와 크리스마스 때는 뭔가 특별한 것을 계획 중이다. 한국에서 미국을 다녀가는 친척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수많은 국립공원들을 금년부터 한 해 한 군데라도 돌아봐야겠다는 것. “우리 메모리얼 위크엔드에 어디 갈까?”하는 아빠의 질문에 도경(11), 재경(7), 준경(6) 삼형제는 어디서 들었는지 요세미티에 가자고 한 목소리로 합창을 한다.
3회의 롱 위크엔드를 위해 그는 요세미티, 세코야 공원, 그리고 가까이 카추마 레이크의 캠프 사이트를 미리미리 예약할 예정이다. 올해 크리스마스 연휴 때는 항상 마음뿐이었던 빅베어에 산장을 빌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길 계획.
그밖에 주말에 가고 싶은 곳을 물어보니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디즈니랜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레고 랜드!”하며 테마 공원 이름을 귀청이 떨어지도록 큰 목소리로 외친다. 안 그래도 가까운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온 가족이 모두 연간 패스를 끊을 예정이었다. 꼭 라이드를 타지 않더라도 주말 산책지로도 그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정체가 한국인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음력설을 앞둔 17일(토) 오후에는 패사디나의 퍼시픽 아시아 뮤지엄(Pacific Asia Museum)에서 있게 될 한국인 가족 축제(Korean Family Festival Day)에 참가할 계획이다. 전통 혼례 예식, 태권도 시범, 탈 만들기와 탈춤 사물놀이 공연, 한복 전시 등 흥미진진한 이벤트들은 아이들이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를 관심 있게 살펴볼 수 있는데 도움을 줄 것 같다. 18일 오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세배 가는 계획을 적어 넣었다. 윤미선 씨는 아이들에게 전통 민속놀이를 소개하기 위해‘윷을 미리 준비할 것’이라는 메모를 수첩에 적는다.
윤성운 씨는 올해 밸런타인스 데이를 위해 아예 1월 초 레스토랑 예약을 마칠 예정이다. 예약을 하지 않았다가 LA 시내 전체의 레스토랑 문전을 전전하다가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을 다시는 되풀이 하고 싶지 않기 때문. 그날 저녁은 아내와의 로맨틱한 저녁 식사를 위해 체리 파이 만들 거리를 구입해 아이들을 고모네 집에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달력에 마크를 한다.
한 해의 주말 계획을 짜다 보니 행복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물밀 듯 밀려온다. 2004년도 부지런히 추억을 만들어 가다 보면 어느 새 또 한 해가 훌쩍 지나가 버리겠지. 그 시간과 공간에 함께 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할 조건이던가.
글 박지윤 객원기자 사진 김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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