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이란 말이 있다. 사실 피를 나눈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사는 곳이 다르다보면 일 년에 얼굴 한 번 보기가 쉽지 않다. 이웃에 산다는 단순한 이유는 인간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요리 하다 말고 양념이 부족할 때 마켓으로 달려가기보다 옆집 방문을 두드림으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게 된 경우는 비교적 흔하다. 잠깐 아이를 봐달라는 부탁을 하기에도 이웃은 불편하지 않은 존재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의 주인공 미미는 꺼진 양초에 불을 붙이기 위해 옆방 사는 이웃 루돌포의 문을 두드림으로써 뜨거운 사랑을 시작하게 됐었다. 세상에 수많은 인연이 있지만 우린 어쩌다 흐르는 세월 속에 바로 담벼락을 마주 하고 이웃에 살게 되었을까.
하지만 말이 이웃사촌이지 요즘은 이런 미덕도 사라진 지 오래다. “하도 조용해 아파트 매니저를 불러 문을 열어봤더니 세상 떠나고 난 후더라”는 신문 보도가 우리들에게 주는 충격의 강도는 많이 무뎌졌다. 회색빛 상자각 안에 각자의 성벽을 높이 쌓고 사는 현대인들의 초상은 메마르고 각박하다.
곽지영(40, 교사)씨가 한인 타운의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새 삶을 시작한 지도 이제 2년째 접어든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느라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들어와서일까. 그녀는 바로 얼마 전까지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 지 잘 알지 못했다.
12월 들어선 어느 날 누군가가 그녀의 아파트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 또래의 여성이 새로 이사를 들어왔다며 시루떡을 건네준다. 이 각박한 미국 생활에 이사를 왔다고 떡을 돌리다니. 이웃집 여인의 돌연한 방문은 그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 한 번은 옆집 사는 유학생 이웃이 와인 병마개 따개를 빌려달라며 그녀의 문을 두드렸다. 와인 병따개 빌려준 게 뭐 큰 빚이라고 그는 다음 날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케이크 한 조각을 사다주었다.
한 주 전 월요일 아침에는 회사에 가려고 차에 시동을 거는데 어제까지도 부릉부릉 잘만 달리던 그녀의 차가 묵묵부답이었다. 추운 겨울에 땀방울까지 흘려가며 차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바로 옆 주차 공간에서 차를 빼려던 옆집 신사가 도움주기를 자청했다. 점프 케이블을 이용해 배터리를 충전하고 무사히 제 시간 안에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던 그녀는 혼자 무인도에 살고 있지 않음을 감사했다.
아주 작은 이웃간의 오고감은 때로 혼자 회색 담장 안에 갇혀 있다고 느끼던 그녀의 인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시루떡과 케이크를 얻어먹고 자동차 충전을 받은 후 그냥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은 유난히도 이웃 잘 챙기던 어머니를 둔 덕분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보고 자란 대로 연말을 맞아 작은 도움을 주었던 이웃을 초대하는 블럭 파티(Block Party)를 계획했다.
우선 그녀는 날짜와 시간을 정해 초대장을 보냈다.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좀 더 기억에 남게 하기 위해 파티 재료 파는 곳에 가서 벌크로 된 초대장을 구입한 그녀는 간단한 초대의 말을 적어 넣었다.
파티를 갖기로 한 금요일 저녁,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평소 잘 가던 중국집에 주문한 음식을 픽업했다. 물론 손수 요리를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바쁜 일과 때문에 그럴 여력은 없었다. 후식으로는 떡으로 만든 케이크를 주문해 두었다. 전날 미리 마켓에 들러 마실 것과 과일을 사다 놓은 덕에 파티 준비는 재빨리 마쳐졌다.
7시가 되자 이웃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마실 것을 준비해주며 여러 나이 또래의 이웃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요리 직접 하지 못해 죄송해요” 하며 송구스러워 하는 그녀에게 이웃들은 오히려 이런 기회를 먼저 제공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음식과 함께 그들은 자연스레 이웃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어린 시절 옆집 살던 아저씨가 만들어주었던 나무 칼 장난감과 그것을 함께 가지고 놀던 철수. 뽑기를 함께 해 먹던 이웃집 언니, 스케이트장에 데려가주었던 이웃집 형. 솜씨 좋고 인심 좋은 한 옆집 아주머니는 콩나물 무침이 됐든 잡채가 됐든 항상 저녁 반찬거리를 넉넉히 만들어 한 대접씩 가져다주기도 했었다. 돌이켜 보니 우리들에게 있어 이웃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항상 우리에게 정겹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웃은 지금쯤 과연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녀가 먼저 마음 문을 열어 초대함으로 서로 알고 지내게 된 이웃들은 앞으로도 자주 이런 시간을 마련하자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지 떡이든, 크리스마스 케이크든 함께 나눔으로 그들은 더욱 풍성한 새해를 맞이할 터이다.
블럭 파티 어떻게 준비할까.
▲초대장 준비: 비용을 따로 들이지 않으려면 컴퓨터로 인쇄하면 된다. 카드 전문 숍에 가면 블럭 파티용으로 준비된 귀엽고 재미있는 카드들이 많이 있다. 초대장에는 때와 장소, 드레스 코드, 어린이들을 데려와도 되는지 어른들만을 위한 블록 파티인지를 명시한다.
▲집안 장식: 풍선이나 꽃, 컨피티(Confete) 등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펀드레이징을 동반한 블럭 파티일 경우에는 그 펀드레이징 이벤트에 관계된 이미지들로 장식을 한다.
▲음식 준비: 음식 준비하는 부담에 블록 파티 여는 것을 꿈조차 꾸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음식은 파티에 있어 그리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사과 한쪽, 차 한 잔을 마시면서도 이를 매개로 이웃간의 정을 나눌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해보면 된다. 식사 중간 시간의 블럭 파티일 경우에는 그저 간단한 다과로도 족하고 식사 때라 할지라도 그저 몇가지의 음식만 준비하면 된다. 각자 한 가지씩 요리를 준비해 오는 파트락은 준비하기도 부담 없고 여러 집안의 각기 다른 음식 솜씨를 즐길 수 있어 좋다. 혼자서 음식을 준비하기 부담스러우면 이웃집 주부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린이들: 집안 공간에 여유가 있으면 어린이들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그들끼리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길다란 테이블에 종이와 가위, 그 밖의 다양한 재료를 놓아두고 카드나 가면 만들기 등 공작 클래스를 마련해도 좋다.
▲이벤트: 여럿이서 할 수 있는 게임은 연말 뿐 아니라 어떤 때라도 파티를 더욱 화기애애하게 만든다. 그리고 각자 부담 되지 않게 마련할 수 있는 상품을 경품으로 마련하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겨울이 추운 다른 이웃을 위한 펀드레이징도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아이디어.
▲초대받은 손님들은 무엇을 준비할까: 미국인들의 경우 블럭 파티에 초대받으면 와인이나 파이를 많이 사간다. 와인도 좋겠고 모인 이들의 취향에 따라 한국 주류를 준비하면 어떨까. 과일 상자, 케이크, 파이 역시 초대한 이의 호의에 감사하며 가져가기에 좋은 아이템들이다.
글 사진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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