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의 일상은 아름다운 축제들이다. 아침 일찍 동네어귀의 블랑제리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크롸쌍과 바게트 냄새를 폐부에 들여놓는 순간과 저녁 식탁을 위해 장에 가서 치즈와 와인을 고르는 시간 모두가 먹고산다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행위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준다.
파리에서 기차로 약 3시간 떨어진 브리타니(Brittany)지방에 살고 있는 그라프(Graffe) 가의 안주인 프랑소와즈는 LA에서 먼길을 찾아온 친구를 환영하기 위해 아들 피에르이브와 함께 정성껏 만찬을 준비했다. 바삭하게 구운 바게트에 카비에르를 얹은 아페리티프를 보며 프랑스 땅을 밟은 에트랑제는 우선 감동을 먹는다. ‘아니, 이렇게 귀한 것을.’ 샴페인 잔을 높이 쳐들고 ‘친친’을 외친 후 아페라티프를 한 입 물며 혀끝으로 천천히 프랑스를 맛본다.
프랑스인들도 명절 때나 먹는다는 귀한 거위 요리를 대하며 LA에서 바리바리 싸온 카버네 소비뇽 한 병을 꺼내 프랑소와즈에게 건네준다. 와인 맛있기로 소문난 프랑스지만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의 와인들은 이곳까지 명성이 자자하다. 오렌지 소스를 곁들인 거위 요리는 바다를 건너온 와인과 함께 입안으로 녹아든다. 호박찜과 치즈를 얹은 감자 그라탕, 크림소스로 맛을 낸 시금치는 거위와 아주 잘 어울렸다. 브리와 까망베르, 셰브르 등 대 여섯 가지 치즈를 와인과 함께 맛보며 대화는 술 익듯 무르익는다.
중국을 여행하기도 했던 이들 부부는 동양의 이국적인 음식에 대해 상당히 열려 있다. 그들을 위해 LA에서 사 간 깻잎 통조림을 프랑소와즈는 정성스럽게 찬장에 챙겨 넣는다.
이틀 후에는 생 뽈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을 들어가는 브레아 섬(Ill de Brehat)으로 향했다. 그라프 가의 바캉스하우스에서 보낸 문명과 동떨어진 일주일은 축복된 시간이었다.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전 우리는 마치 먹는 것이 여행의 모든 목적인 것 양 마켓에 들러 와인과 먹을거리를 잔뜩 사갔다.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피에르이브는 어머니에게 배워서인지 부엌에서 잠깐만 움직이면 이런저런 음식들을 곧잘 만들어냈다. 브리타니 지방의 토속 음식이라는 가레뜨는 크레페, 또는 멕시코 인들이 자주 먹는 또띠야 같은 밀전병. 둥글넓적한 가레뜨를 펴 치즈와 달걀을 얹고 사각형으로 만든 단순한 요리인데 의외로 담백한 게 맛있다.
섬에서 그가 준비한 또 다른 요리는 큼지막하게 썬 야채와 고기에 다임과 월계수 잎 등 허브를 넣고 오랜 시간 고은 포도푸(Pot au Feu, 불에 올린 냄비라는 뜻).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게 충분한 지방을 공급해 주는 음식인데 흥건한 수프까지 영락없이 우리식 꼬리곰탕과 꼭 같아 국물이 그리운 판에 스푼을 기울이며 홀짝거렸다.
브레아 섬은 먹을 것이 지천에 깔려 있다. 바캉스하우스 정원에 심겨진 사과나무에는 바삭바삭하고 향기로운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바로 옆의 커다란 밤나무 아래에는 따가운 가시 안에 감춰진 통통한 밤이 가득해 주어다가 벽난로에서 구워먹었는데 어찌나 고소하던지. 섬에는 무화과 열매도 많아 산책을 나섰다가 따먹기도 했다.
어부 놀이 하자며 피에르이브와 브느아는 장화에 그물을 챙겨들고 바닷가로 나선다. 썰물 무렵 그들은 바위 가까이로 그물을 드리워 적지 않은 새우를 건져냈다. 어부 놀이가 생경한 다른 친구들은 바위에 붙어있는 굴과 소라를 따며 해녀 놀이를 즐겼다. 그 날 저녁은 우리가 직접 채취한 재료들로 레스토랑에서라면 60유로는 족히 깨졌을 근사한 해물 접시(Fruit de Mer)를 한상 푸짐하게 차렸다.
피에르이브의 동생 라파엘이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낭뜨(Nantes)에는 고성이 바라다 보이는 예쁜 레스토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 가운데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나이트 카페’와 비슷한 분위기의 비스트로가 있어 가격표도 보지 않고 들어갔다. 섬에서 우리가 직접 딴 해물 접시의 반에도 못 미치는 굴을 껍질까지 쪽쪽 빨아가며 입맛을 다신 후에는 생선과 샐러드를 주문했다. 메인 디시를 다 먹고도 아직 부족해 치즈를 주문한다. 낭뜨 지방의 크리미한 치즈에 꿀을 더해 내왔는데 치즈와 꿀의 궁합이 절묘하다는 것을 느끼며 설거지를 한 듯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몽 생 미셸을 돌아본 후 잠자리를 정한 생말로(Saint Malo)의 레스토랑에서는 고등어를 곁들인 샐러드와 당근 소스로 맛을 낸 연어를 주문했는데 곁에 꽁보리밥을 내 온 것이 특이했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밭일하는 농부들이나 먹는 것이 꽁보리밥인 줄 알았더니 프랑스 요리에서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파리 생 미셸의 먹자골목에는 프랑스 요리는 물론이고 그리스, 일본, 한국 등 전 세계 없는 요리가 없다. 입구에 서서 호객행위를 하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샹송 같은 리듬이 있다. 파리를 잘 알고 있는 친구는 아마추어 오페라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독특한 레스토랑이 있다며 안내를 한다. 부서질 듯 작은 체구의 그녀는 도대체 어디서 소리가 나오는지 모차르트와 푸치니의 귀에 익은 아리아를 쩌렁쩌렁하게 불러제꼈다. 버터소스를 끼얹은 가자미 요리와 더불어 그 공간에 함께 있던 친구의 미소,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이던 보르도의 향은 프랑스에 대한 기억의 보물 상자에 고스란히 기억될 터이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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