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한석봉, 이율곡, 율리우스 시저, 마키아벨리.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치맛바람 드센 어머니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이사를 자주 다녔거나 촛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글을 쓰게 했거나 방법은 다를지라도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 자녀 교육이었다.
교육열 높은 것으로는 빠지지 않는 것이 한인들이다. 만약 당신이 이제껏 자녀들의 SAT 점수 높이는 데만 급급했었다면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학교 행사에의 적극적인 참여임을 알리고 싶다.
정미라(42, 주부)씨는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아들 앤디 정(15, 트로이 하이 10학년)군이 초등학교 학생이던 시절, 아들의 학교생활에 참여하면서 미국의 교육 제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마치고 온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그녀 역시 미국의 교육 제도에 대해 도무지 아는 바가 없었다. 앤디가 펀 드라이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그녀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 처한 아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미국에서의 수업이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지 참관할 수 있는 룸 마더를 자청했다.
룸 마더들은 일주일에 한 차례, 교사들을 도와 교실을 단장하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사용할 자료를 준비하기도 한다. 교실에서 아들이 어떤 수업을 받는 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음을 그녀는 깊이 감사한다. 룸 마더로서의 경험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미국 교육의 정체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돼 주었다.
그녀의 치맛바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앤디의 학교에서 연극 발표를 했을 때 평소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그녀는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무대 장치 만드는 것을 도왔다. 마치 자신들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인 것처럼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그녀의 뇌리에 진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학교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페어가 열릴 때면 그녀는 어머니회에 자청해서 갈비와 잡채 등 한국 음식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 한인이 그리 많지 않던 학군이었던지라 그녀가 한국 음식을 만들어 가면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설거지가 필요 없을 만큼 깨끗하게 그릇을 비우며 “원더풀!”이라는 감탄사를 반복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정체가 자랑스러웠다.
미국의 학교는 교사에게 일방적으로 떠맡기는 체제가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 교사와 운영위원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사중주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조금은 의기소침하던 앤디의 성격도 엄마가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선 후부터는 달라졌다. 양 어깨는 당당하게 벌어지고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넘치게 됐다.
“생각해보세요. 선생님들도 사람인데, 부모가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는 학생이 왜 더 예뻐 보이지 않겠어요? 아무리 공정하게 성적을 채점한다고 하더라도 B 줄 것이 B 플러스가 되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평소 눈도장을 많이 찍은 학부모의 자녀들에게는 표창장 수상자로도 우선적으로 추천이 된다고 느꼈어요.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도 학부모가 적극적이었던 학생들에게는 과분할 정도의 추천장을 써주곤 하죠.”
‘학부모, 교사, 학생 연합회(Parent Teacher Student Association)’에 가입해 직접적으로 학교 정책의 결정에 참가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돈으로 해결하자고 기부금을 많이 내는 것은 가장 소극적인 참여에 불과하다.
지난 주말 한인 타운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라치몬트 빌리지에서는 연례행사인 라치몬트 페어가 열렸다.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세인트 제임스 스쿨(Saint James School) 역시 이 페어에 참가해 기금 모금 이벤트를 벌였다. 아들 제임스 리(10세, 5학년)군이 다니는 학교의 행사에 열심인 베키 리(41, 변호사 사무실 근무)씨와 이문규(45, 변호사)씨 부부도 지난 주말 라치몬트 페어에 참가해 세인트 제임스 스쿨 부스에 서서 코리안 바비큐를 구웠다.
하루 종일 서서 쉬지 않고 갈비를 구워내느라 어깨와 다리가 쑤시고 아파왔지만 가슴 뿌듯한 보람 때문에 육체의 고통은 쉽게 생각 밖으로 나가버린다. 처음에는 안 그래도 바쁜데 왜 이리 오라는 날이 많나 귀찮게 여겼지만 자꾸 참가해 보니 그것도 재미가 있었다. 이제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베키 리 씨 부부는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이벤트에 참여를 하는 열성파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들 부부는 스스로가 학교를 구성하는 주체라 생각한다. 방관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학교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믿음 때문이다.
다른 학부모들을 만나 자녀 교육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평소 대화할 시간이 빠듯하기만 하던 제임스와도 하루 종일 바비큐를 구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학교생활을 같이 해주는 부모님을 제임스는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여긴다.
세인트 제임스에는 유난히 한인 학생들의 비율이 높고 학부모들의 참여도 적극적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한인 학부모회에서는 오리엔테이션 나이트를 통해 신입생을 대대적으로 환영한다.
아버지들이 팬케이크를 만들어 팔며 기금 모금을 하는 팬케이크 데이가 오면 이문규 씨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와이셔츠 자락에 반죽을 묻힐 만큼 적극적이다. “나도 커서 아빠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고백은 그의 어깨를 으쓱하게 한다.
한인을 비롯한 이민 1세대들은 미국에 이민 와서 처음으로 주류 사회에 소속되어 있음을 진하게 느낀 순간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시작할 때부터라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물론 학교 행사에 참여하려면 영어가 필요하긴 하지만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언어 장애도 벽이 되지는 않는다. 자녀 학교의 주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부모들은 마치 다시 학교에 다니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었다.
글 박지윤 객원기자
사진 김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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