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다닐 때 책가방에 책이 없어도 꼭 들어있는 것이 있었다. 보자기로 질끈 동여맨 넙적한 양은 도시락. 먹성 좋은 남학생들은 두 개씩도 넣어 다녔다지만 가난한 산동네 아이들이 적지 않던 시절, 점심시간이면 슬그머니 운동장 뒷산으로 올라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생들뿐인가, 직장에 다니던 오빠, 언니, 아버지들도 자기 몫의 도시락을 챙겨 나가는 것이 하루의 시작. 아침마다 부뚜막에 네모다란 양은 도시락 너덧개가 주르르 놓여있고, 어머니가 주걱으로 막 지은 밥을 고슬고슬하게 퍼담는 모습을 보고 자란 세대가 아직은 태반일 것이다.
반찬이 뭐 그리 많았을까? 도시락통 자체가 밥 넣는 부분이 훨씬 넓었고 한구석에 마지못해 반찬 칸이 있었으니 그 작은 칸에 콩자반과 달걀말이, 조금 나아봤자 장조림이나 멸치볶음이 들어있고, 달걀 프라이가 납작하게 눌려 밥을 덮고 있는 날은 보너스라도 탄 것 같았다.
작은 유리병에 따로 담아간 김치가 점심시간쯤이면 쉬어터진 냄새를 풍겨도, 친구들과 둘러앉아 먹으면 집집마다 다른 김치 맛이 신기하게 느껴지던 시절.
하지만 아날로그 시대의 도시락 향수가 아무리 그리워도 당장 내일부터 도시락을 싸라고 한다면 고개를 휘휘 젓는 주부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만큼 도시락 싸기는 신경 쓰이고 손은 많이 가면서 요리 대접을 받지 못하는 틈새 음식인 탓.
한국서도 요즘은 도시락 가져가는 학생이 거의 없고 학교마다 급식을 제공한다니 한국 어머니들의 정성과 손맛이 조미료와 칼로리 높은 인스턴트 식품에 멀리 멀리 밀려나고 있는 것 같다.
도시락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어머니의 선물, 아내의 정성이다.
사먹는 음식에 질린 남편을 위해, 학교 런치에 실속 없이 살만 찌는 아이들을 위해, 아니면 소중한 식사시간을 ‘아무거나’로 때우는 나 자신을 위해, 아침 한시간 투자할 생각은 없으신지...
한국서 나온 요리책 몇권을 들여다보고 만들기 쉽고 먹음직스런 도시락 메뉴들을 골라보았다. 이중 ‘정겨운 도시락’(웅진닷컴)은 50여 가지의 다양한 도시락과 레서피를 소개하고 있어 많이 참고가 됐다. 레서피보다는 아이디어를 주는 식으로 정리해본다. <정숙희 기자>
<도시락 싸는 요령>
▲영양소가 고루 들게 싼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종류, 맛, 조리법이 다른 반찬 서너가지 넣으면 된다.
▲간단하게 싼다. 반찬을 세가지 이상 싸지 않고 특별한 경우 외에는 따로 도시락을 위한 요리를 하지 않는다. 엊저녁 먹던 반찬 한두가지에 김치와 김만 싸들고 가도 밖에서 먹는 밥은 꿀맛이다.
▲예쁘게 싼다. 눈으로 먼저 식욕을 느끼듯 같은 밥반찬이라도 모양과 색깔에 신경을 써서 담으면 주부의 사랑과 정성이 듬뿍 느껴진다.
▲뜨거운 밥이나 반찬은 식혀서 담는다. 수증기가 도시락 뚜껑에 고여 있다가 밥과 반찬에 떨어지면 맛도 없고 반찬이 쉬 상할 수 있다.
▲물기 많은 반찬이나 덜 익힌 것은 피한다. 쉬기 쉬운 나물류는 좋은 도시락 반찬이 아니다. 꼭 싸야한다면 다른 통에 담는다.
▲간은 짭짤하게 한다. 간이 싱거우면 더운 날 상하기 쉽고, 도시락밥은 짭짤한 반찬과 먹어야 맛이 더 난다.
▲맛이 섞이지 않도록 칸막이를 정확하게 한다. 애써 여러 가지 반찬을 했어도 도시락 안에서 다 섞여 버리거나 밥에 물들면 맛도 변하고 보기도 싫다. 포일이나 베이킹 컵 혹은 깻잎, 겨자잎, 상추 등 잎 넓은 채소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후 밥과 반찬사이, 반찬과 반찬 사이에 넣는다.
▲투고 음식에 딸려오는 소금이나 양념 플라스틱 용기를 챙겨두었다가 양념장이나 젓갈 등을 담을 때 사용하면 편하다.
▲과일도 준비해 따로 담아준다. 제철과일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없애고 한입 크기로 썰어 담는다.
<아이들 도시락>
10여년전만 해도 학교에 한국음식 가져가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문화와 요리가 퓨전이 돼버린 요즘, 김밥이나 만두를 가져가면 미국인 친구들이 다 뺏어먹는 바람에 아이가 제대로 못 먹고 오는 일도 있을 만큼 우리 음식의 인기가 높아졌다.
아이들 도시락은 간단한 것,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것이 좋다. 주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가장 많이 해주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것이 카레볶음밥, 스파게티, 김밥, 샌드위치류.
김밥은 전통적 레서피 대로 소고기나 햄, 어묵, 달걀부침, 시금치나물, 볶은 당근, 단무지 등을 넣은 것도 좋지만, 간단하고 아이들 입맛에 맞게 치즈와 김치만 넣기도 하고 참치 통조림과 피클, 아보카도, 햄 같은 것을 넣어 싸주면 더 좋아한다. 또 멸치나 우엉, 오이 등 남은 반찬을 잘게 썰어 볶아서 주먹밥을 예쁘게 뭉쳐 싸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
샌드위치는 더 다양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좋아하는 재료를 번갈아 넣어 싸주면 좋다. 아이들 샌드위치에는 너무 많은 재료를 넣지 않는 것이 좋다. 치즈와 햄, 터키와 양상추, 베이컨과 토마토, 훈제연어와 피클 등 한두가지만 넣고 대신 한 옆에 다른 야채나 과일을 싸주도록 한다.
<손쉬운 볶음밥·비빔밥·쌈밥 도시락>
볶음밥과 비빔밥은 의외로 손쉬운 도시락 메뉴다.
중요한 것은 재료를 많이 넣지 않는 것. 맛을 내는 최소한의 재료 서너가지만 넣고 볶거나 비비는 것이 맛도 깔끔하고 건강에도 좋은 훌륭한 도시락이 된다.
볶음밥은 야채류(김치·피망·감자·당근·양파·옥수수 등) 한두가지와 육류(쇠고기·닭고기·새우·햄) 한가지 그리고 취향에 따라 버섯을 넣고 볶다가 소금(혹은 간장이나 굴소스)으로 간하면 된다. 여기에 카레가루를 섞으면 카레볶음밥이 되는 것.
비빔밥도 마찬가지. 버섯과 나물 한두종류, 고기 등 세가지만 싸도 맛있는 양념고추장에 비벼 먹으면 꿀맛이다. 재료가 빈약할 때는 특히 양념고추장이 중요한데 고추장에 마늘, 설탕, 참기름, 꿀 등을 넣고 약간 묽게 섞기도 하고, 다진 쇠고기를 넣고 볶은 것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뜨거운 밥에 그냥 비벼 먹기만 해도 입맛이 저절로 돈다.
여름에는 보리밥에 열무김치나 깻잎, 풋고추, 양파, 마늘 같은 야채를 넣고 초고추장에 비벼 먹도록 하면 회덮밥 비슷한 맛이 난다. 왠지 섭섭하면 생선 한토막이나 고기 구운 것 몇점을 따로 싸주어도 좋다.
마늘 넣고 볶은 밥을 삶은 호박잎이나 케일, 양배추 잎에 도르르 싸서 김밥처럼 썬 다음 볶음고추장과 깍두기를 함께 싸면 훌륭한 쌈밥 도시락. 토티야 두어장에 고기, 양파, 피망 볶은 것과 살사를 싸주면 근사한 홈메이드 타코 도시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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