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LACMA 건너편의 미니어처 뮤지엄만큼 구경거리 많던 장소도 드물 다. 소장품들의 사이즈가 작다 보니 뮤지엄의 공간도 넓을 필요가 없다. 온통 조그만 인형과 미니어처로 꾸며진 인형의 집 앞에 서 있자면 마치 소인들의 나라에 표류되어 온 걸리버가 된 느낌이었다. 미니어처 세계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경이롭게 보여준다.
프랜시스 허드슨 버네트 원작의 ‘소공녀’ 세라는 그녀의 인형 에밀리에게 생명이 있어 외출하고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리면 빈방을 돌아다니다가도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앉혀 놓았던 의자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했다. 인형에게 옷을 갈아 입히고 밤이면 침대에 눕히는 것을 소공녀 세라를 비롯한 여자아이들만의 유아기적 놀이라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산이다.
신비한 마력을 지닌 인형의 집과 미니어처 가구의 세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열정을 지닌 장인들이 인형의 집을 짓고 미니어처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약 400년 전부터. 직접 ‘인형의 집(Doll House)’을 만들고 그 집안을 미니어처 가구로 꾸미는 것은 더 이상 여성 전용물이 아닌 성인 남녀 모두의 취미 활동이다.
인형의 집과 미니어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귀중한 예술 작품이지만 사회적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대단하다. 인형의 집을 통해 우리는 건축 양식과 인테리어 디자인의 변이를 추적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식주와 여가생활의 변화 역시 짐작할 수 있다.
업무상 매물로 나온 미국인들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많은 클라라 조(34, 부동산업)씨. 생활에 여유를 갖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집 한쪽 구석에서 그들이 살고 있는 저택만큼 견고한 빅토리안 양식의 인형의 집을 자주 발견하면서 그녀는 점차 인형의 집과 미니어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한인타운에서 가까운 라치몬트 빌리지에서 앤티크 미니어처 가구를 취급하고 있는 작은 샵을 발견한 이후에는 시간 날 때마다 들러 작은 세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곤 한다.
어쩌면 라치몬트 길의 ‘진스 액센트(Jean’s Accent)’ 앞길을 지나본 이들은 진열장을 들여다보며 어느 유럽의 공주가 가지고 놀던 인형과 인형의 집이 바다 너머 이곳에까지 건너와 전시돼 있는 걸까 하며 의아해 했을 지도 모른다. 인형들의 눈, 코, 입은 어린 시절 갖고 놀던 마론 인형보다 더욱 선명하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에서 오드리 햅번이 입고 나왔던 드레스보다 화려하기가 한 수 위다.
진스 액센트의 주인 에버린 진(Everyn Jean, 81)은 40년째 한 장소에서 인형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 동네 터줏대감. 그녀의 고객 가운데는 가수 코트니 러브와 린다 론스태트 등 유명 인사도 상당수 있고 마이애미와 뉴욕 등지에서 미니어처 가구 하나 구입하고자 비행기를 타고 오는 열성 층도 제법 된다고 한다.
젊은 시절 영화사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미니어처 세계에 빠져들게 되면서 인형과 미니어처 가구들을 하나 둘 수집하기 시작했고 소장품이 늘어가자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샵을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LA타임스 등 신문의 에스테이트 세일 광고는 그녀의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정보 가운데 하나다. 가끔씩 유럽에서 온 귀족 후예의 에스테이트 세일(Estate Sale)에 가면 작은 구석구석까지 세세하게 꾸며진 미니어처들을 접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녀는 마치 금은보화 가득한 보물섬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한다. 흔하진 않지만 가끔씩은 그녀로부터 미니어처를 사갔던 이들이 이제껏 애써 수집했던 보물 같은 소장품들을 되파는 경우도 있다.
고작해야 2평방피트 크기인 인형의 집의 가격이 싼 것은 수백달러부터 시작하지만 비싼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2층집과 3층의 대형 맨션도 있고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작은 가구들 역시 차라리 사람 쓰는 것이 훨씬 쌀만큼 값비싼 것들 일색이다.
아름다운 실크로 장식된 인형 소파 가격은 무려 600달러.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는 빅토리아 가구 세트에 매달린 1,200달러라는 가격표를 확인하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모른다. 어디 소파와 침대뿐일까. 샹들리에와 촛불, 커튼, 테이블 위의 디저트 접시까지 인형의 집을 잘 꾸며주려면 실제 인테리어에 드는 것 못지 않게 많은 비용이 든다.
이처럼 비싼 취미에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에버린 진은 아마도 나이가 들수록 더해 가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라고 대답을 한다. 그녀의 샵을 자주 찾는 레베카 에버렛(62, 주부)은 여러 경로를 통해 마음에 두고 있던 미니어처 가구를 찾아내고 그것으로 인형의 집을 꾸며주는 재미로 항상 소녀시절처럼 꿈을 먹고산다며 미니어처 가구 수집 취미를 예찬하고 나선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는 적지 않은 인형의 집과 미니어처 가구들이 매물로 나와 있고 거래도 아주 활발한 편이다. 900달러로 경매가 시작되는 인형의 집은 나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조회수가 4,000에 이르고 있었다. 참나무 재질에 실크로 꾸민 미니어처 소파는 리스트 끝에 있어서인지 9달러99로 가격이 저렴한 데도 비딩 참여 흔적이 없다. 인형의 집은 한국과 미국 그 외 전 세계를 초월해 사이버 공간 안에서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헨리크 입센은 19세기 남성 중심의 서구 사회에 있어 종속적인 위치에 처해 있던 여성의 삶을 그의 희곡 ‘인형의 집’을 통해 표현했었다. 예쁘게 꾸며진 인형의 집들을 돌아보고 있자니 한 가정의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집을 나선 노라의 결단이 얼마나 용기 있는 것이었는지 새삼 헤아려진다.
글 사진 박지윤 객원기자
■인형의 집 박물관 ‘천사의 다락방(Angel’s Attic)’
샌타모니카에 소재한 천사의 다락방(Angel’s Attic)은 앤티크 인형의 집과 인형, 미니어처, 장난감 뮤지엄으로 1895년에 지어진 아름다운 빅토리안 양식의 건물에 들어서 있다. 모두 7개의 갤러리에 소장된 인형과 인형의 집들은 경이로운 작은 세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오픈 시간: 목~일요일, 오후 12시30분~오후 4시30분. 부활절, 독립기념일,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와 1월1일은 문을 닫는다.
티켓: 어른은 6달러50센트. 12세 이하의 어린이는 3달러50센트. 65세 이상 연장자는 4달러.
주소: 516 Colorado Ave. Santa Monica, CA 90401 Colorado와 5th Street 코너.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가다가 4th/5th St. 출구로 나가 4th St.에서 우회전, Colorado Ave.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샌타모니카 피어, 3rd St. 프로미너드, 샌타모니카 샤핑몰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주차: 스트릿 파킹.
전화: (310)394-8331. 미리 전화로 예약하면 목요일과 금요일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스페셜 투어 코디네이터(Special Tour Coordinator)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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