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편견 극복 할리웃서 뜨는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인들
영화를 보다가 한인 배우가 눈에 띄거나 엔딩 크레딧에 ‘Kim’이나 ‘Lee’로 끝나는 이름이 올라오면 ‘어! 한국 사람이네!’이라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게다가 그 이름이 여자임이 분명할 땐 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시안 영화 강세, 여성 인력의 약진’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 판권이 할리웃에 줄줄이 팔리는 요즘 ‘코리안 아메리칸 필름메이커’는 분명 할리웃 영화계의 기대주다.
인종의 벽을 뛰어 넘기가 힘들고, 재능만큼 운도 철저히 따라야 하는 할리웃의 현실과, ‘남자 열에 여자 한 둘’이 이끌어 가는 영화계 인력구조에서 여성임을 극복해야 하는 이중장벽을 넘어 두각을 나타내는 코리안 아메리칸 파워우먼 3인. 권위 있는 단편영화제에서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쓴 그레이스 이 감독, 컬럼비아 픽처스 출신의 독립영화제작자 캐더린 박 프로듀서, 빔 밴더스 영화사 이인아 프로듀서를 만나 ‘아시안 여성으로 영화하기’에 관해 짧지만 속 깊은 대화를 나눠봤다.
캐더린 박 프로듀서
할리웃 영화인생 14년
독립영화 만들어 두각
이인아 프로듀서
빔 벤더스 영화사 소속
독어 능통…CF등 제작
그레이스 이 감독
20분짜리 화제의 단편
‘방벽장치’ 각본도 써
“할리웃에 발을 들여놓은 건 10년도 넘었어요. 컬럼비아 픽처스에 입사했을 당시 할리웃에서 활동하던 한인 여성은 조나단 드미 감독 제작사의 프로듀서 다이애나 최, 홍보전문가 로라 김 정도가 기억에 남아요”
독립영화제작자 캐더린 박씨는 USC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소니 영화사가 컬럼비아 영화사와 트리스타 영화사를 매입하기 전인 1989년 할리웃에 입성했다.
당시 크리스 이 사장의 어시스턴트로 메이저 영화사들을 상대로 할리웃의 중심부에서 영화 인생을 시작했지만 2년만에 영화판을 박차고 나왔다.
지식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것.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러지 회사를 창업, 실리콘 앨리 기자가 선정한 ‘디지털 산업계 유망주 50인’에 뽑힐 정도로 잘 나가던 박씨는 앙 리 감독의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을 관람한 다음날로 영화계에 컴백했다.
사실상 앙 리 감독은 박씨의 오마주(경의)적인 존재다. ‘와호장룡’을 보면서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추면 아시안 영화도 할리웃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확신한 박씨는 ‘옐로’(Yellow)로 주류 언론의 호평을 받았던 크리스 챈이 감독, 강성호 주연의 영화 ‘원상태로 하기’(Undoing)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박씨가 언급한 다이애나 최 프로듀서는 현재 탐 행크스의 영화사 사장이고 홍보전문가 로라 김은 소니, 파라마운트 등 할리웃 메이저 영화사의 홍보, 마케팅을 담당하는 회사 ‘mPRm’의 부사장으로 할리웃에선 거물급이다.
특히 로라 김 부사장은 미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 영화 ‘쉬리’ ‘집으로’ 등의 홍보를 자청할 정도로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으며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 ‘샤인’(Shine), ‘피아니스트’(The Pianist) 등 흥행에 성공한 외국 영화들 모두가 김씨가 홍보를 전담했다.
“그냥 좋은 영화를 만들면 돼요. 아시안이라는 거, 여성이라는 사실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데 걸림돌은 아니죠. 사람은 제각기 다르지만 결국 모두 똑같은 인간이에요. 오락적 요소와 깊은 감동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독일 출신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밀리언 달러 호텔’ 이후 신작과 CF 제작에 참여해온 이인아 프로듀서는 ‘아시안 여성으로 영화하기’보다 ‘좋은 영화 만들기’를 강조했다. 독일에서 태어나 함부르크 대학 법대를 졸업한 이인아씨는 독일의 스피겔(Spiegel) TV 프로듀서로 다큐멘터리와 토크쇼를 제작하다가 1998년 LA로 건너왔다. 리들리 스캇 감독의 광고 프로덕션,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엔드 오브 데이스’(End of Days) 제작에 합류했고 현재 빔 벤더스(Wim-Wenders) 영화사 5년 차 프로듀서다.
한국어, 독일어, 영어가 유창한 이인아씨는 독일에서는 거의 유일한 한국인으로 생활했지만 LA에 와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할리웃에 입성했기에 ‘페미니즘’ ‘마이너리티’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도발적 에너지와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한국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여성으로 자랐기에 여성의 시선이 영화 속에 녹아드는 것뿐”이라는 이씨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 누구나 특유의 스타일과 색깔이 있다. 한국인,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내 자신의 독특함을 영화 속에 담고 싶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사는 한국인을 소재로 영화 제작을 기획하고 있던 이씨가 베를린 영화제 기간, 빔 벤더스가 후원하는 영화계 유망주를 위한 웍샵 캠프에서 만난 사람이 그레이스 이 감독이다.
UCLA 대학원에서 영화 디렉팅을 전공한 그레이스 이 감독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20분짜리 단편영화 ‘방벽 장치’(Barrier device)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대한다. 영화의 엔딩 자막이 올라가면 영화가 끝나 버린 게 아쉬워 “다음은 뭐지?”(What’s Next?)를 외치게 된다.
눈부신 아이디어와 작품의 완성도가 돋보이는 영화 ‘방벽 장치’는 여성용 콘돔 리서치 과정 중 자신을 발견하는 여성을 묘사한 코미디. HBO시리즈 ‘알리(ARLI)$$’에 출연 중인 캐나다 출신 한인 배우 샌드라 오씨가 주연을 맡았다.
샌드라 오씨는 ‘더블 해피니스’(Double Happiness)로 데뷔해 ‘프린세스 다이어리’(The Princess Diaries) 등에 출연했고 최근 ‘슈미트에 관하여’(About Schmidt)의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결혼, 화제가 됐다.
“NAATA와 록펠러 재단이 제작비를 대고 캐더린 박씨와 공동으로 다큐멘터리 ‘그레이스 이 프로젝트’를 제작 중에 있고 이인아 프로듀서와 함께 베를린에 관한 단편영화 ‘소시지 중에 단연 최고’(Best of the Wurst)를 독일에서 찍을 예정”이라는 그레이스 이 감독에게는 또 하나의 히든카드가 있다.
이 감독과 캐더린 박, 이인아 3명이 공동 제작할 장편 영화가 그 것. “미국과 한국을 배경으로 한인 여성의 시각에서 그려 가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살짝 귀띔한다.
최근 몇년 새 할리웃에서 활동하는 한인 여성들은 확실히 많아졌다. 제52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인 첸카이거 감독의 ‘황제와 암살자’ 공동 제작자로 혜성처럼 등장해 같은 해 버라이어티의 ‘주목해야 할 제작자 10인’에 선정됐던 맥스 미디어 대표 박선민 프로듀서가 탐 크루즈와 공동 제작한 영화 ‘타인들’(The Others)로 할리웃 영화계의 마이더스 손으로 부상했고 최근 개봉한 ‘때로는 샬롯’(Charlotte Sometimes)에서 달시와 샬롯으로 열연, 신예 배우로 떠오른 재클린 김은 할리웃이 주목하는 코리안 아메리칸 뉴 페이스다.
또한 한국계 여성 코미디언 1호인 마가렛 조가 오랜 기간 슬럼프를 겪게 했던 “뚱뚱하고 못생긴 동양 여자”라는 편견을 당당하게 떨쳐내고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환호를 받더니 지난해 ‘악명 높은 조’(Notorious C.H.O.)로 할리웃에 입성했고 UPN-TV 공상과학물 ‘스타 트랙: 엔터프라이즈’(Star Track: Enterprise)로 안방의 인기를 독차지한 린다 박씨도 ‘주라기 공원3’(Jurassic Park 3)에 출연하는 등 주목받는 차세대 배우.
올해 4회째 샌디에고 영화제를 준비중인 리앤 김 영화제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지난해 한인 이민가정의 애환을 그린 ‘소피’(Sophie)로 학생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헬렌 이 감독, 올해 영화제에 출품된 ‘너와 나니까 이야기인데’(Just Between You and Me)의 미리엄 김 감독도 할리웃 영화계 유망주다.
<글 하은선 기자·사진 홍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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