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아담을 지으시고 그에게 모든 것을 다 안겨 주셨다.
완벽한 환경과 풍성한 물질,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지위, 그리고 거기에 한 치의 흠도 없는 하나님과의 완벽한 관계까지.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던 아담에게 하나님께선 혼자 있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 않다고 하셨고, 이브를 창조하셨다. 인간과의 관계로만 채워질 수 있는 ‘need’(필요)가 아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창조론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인간이 인간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관계란 아주 소중한 것이고, 사는 동안 그를 통해 부대끼며 ‘함께’ 성장한다. 그중 ‘소중한 친구’를 기억해 내는 건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머리가 다 커서 서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대부분이 자신의 ‘이익’을 배경으로 만남을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이 어려서 동네 냇가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을 ‘부랄 친구’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이익관계로의 만남이 아닌 자연스러운 만남,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정겨운 표현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나에게도 소중한 기억이 있는 한 친구가 연수 겸 방문을 왔다. 그 친구와 함께 얽혀 있는 많은 기억들이 나에게 새로운 기쁨을 주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기숙사 시절이다. 처음 느낀 인상은 뭔가 의욕이 없어 보이고, 생각이 많아 보이던 나와 닮은 데가 있었다. 그 날 서로 종교에 대해 몇 마디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그 이후로 난 철저히 혼자서 방황과 혼란의 시간들을 보냈고, 그 친구는 다른 과아이들과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진 그룹 속에 끼어 나름대로 대학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의 대학 입시가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겨준 일화들이야 많겠지만, 특히 나에겐 많은 상처와 동시에 성장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듯 나는 그렇게 대학 시절을 보냈고, 그런 나에겐 다른 아이들처럼 미팅이며 남자를 들먹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4학년 초쯤 나의 방황도 어느 정도 마무리를 할 때가 되었던 터, 졸업여행에 동참키로 했다. 그간 끼리끼리 짝지어 다니던 과친구들이 노닥거리는 동안, 좌석에 덜렁 혼자 앉자 창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제야 내가 혼자라는 걸 의식할 수 있었다. 그때 그 친구는 망설임 없이 내 옆 좌석에 풀썩 앉았다. 어울리던 같은 친구들에게 나름대로 회의가 있었는지, 그 친구는 여행 내내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와 삶과 신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번째로 그 친구와 만난 것은 아마도 ‘가족 치료시간’에 교수님이 한명씩 자기 가족의 구조에 대해 분석, 발표하라는 과제를 만들고 나서였을 것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또 하나의 학생이 있었고, 그 이후 난 그 친구에게도 가족 안에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재혼에 얽힌 사연. 나 또한 몇해 신경정신과를 오가야 하는 오빠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의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우리가 가까워진 이유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지 않았지만, ‘동질감’ 그것이 머리가 다 커서 만난 우리를 묶어준 줄인 듯싶다. 그 이후로 난 그 친구와 세월이 흘러도 나의 치부들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학창 시절 많이 써먹던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더운 7월 한 여름에 냉커피와 같은 시원함을 안겨 줄 수 있는 친구를 떠올려보자. 그리곤 달려가 보자. 벌거벗은 모습으로. 중년을 바라보며 친구에게 전해줄 남편과 아이들의 자랑거리를 생각해 내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초라해진 나의 현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에게. 혹시, 떠오르는 친구가 없다면, 슬퍼할 필요 없다. 내가 바로 그런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오라 “나의 냉커피 속으로!!!!”
이성희<소셜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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