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중에, 계속해서 내용이 연결되는 연속극을 보기는 힘들고, 쇼나 게임, 혹은 시트콤 등을 주로 비디오로 빌려다 보게된다. 그 중에서도 재기발랄한 개그맨 신동엽과 예쁘지만 솔직하고 털털한 가수 이효리가 진행하는 해피 투게더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빌려다 보는 게임쇼이다. 그 날 초대된 세명의 게스트와 두명의 진행자가 자리를 정해 앉아서, 제작진이 틀어주는 노래를 한번만 듣고 한 사람이 한 소절씩 맡아서 가사를 완벽하게 불러야 하는 게임인데, 총 10번의 기회가 주어지고, 찬스를 쓸 기회도 세번 주어진다. 다섯명의 머리 위에는 음식점에서 쓰는 듯한 커다란 네모 양철 쟁반이 매달려있는데, 가사나 음정이 틀릴시에는 쾅 소리와 함께 다섯명 전원의 머리 위로 쟁반들이 떨어진다. 어렸을 때, 혹은 평소에 가끔 들었던 귀에 익은 멜로디지만, 가사는 무척 생소할 때가 많은데, 게다가 ~하면 인지 ~하며인지 소소한 것들이 헷갈려서 출연자들도 진행되는 내내 긴장을 하지만 보는 사람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쇼이다.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도 제대로 따라부르기 힘든 이유는, 가사가 까다롭다는 것 외에 처음 들려줄 때의 발음이 영 시원치 않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어찌나 발음이 부정확한지, 평소에 잘 알고 즐겨부르던 노래 가사도 알아듣기 힘들 지경이다. 그나마 어린이들이 부른 동요는 좀 덜한 편이고, 성악가가 부른 가곡은 진짜 알아듣기 힘들다. 어렸을 때 그집앞이라는 가곡을 처음 듣고는 한동안 제목이 거지밥인줄 알고 재미있어서 흥얼댔던 기억이 난다. 오~가며 거지밥을 지나너라면 거~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거~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거지밥이란 단어가 재미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닐 때 반주 전공하던 언니와 룸메이트를 했었다. 피아노 전공은 ‘연주’와 ‘반주’ 두가지로 나뉘는데, 연주 전공은 솔로 피아노 곡들을 배우는 것이고, 반주 전공은 성악, 바이얼린, 첼로 등 다른 악기와 같이 연주하는 피아노 곡들을 배우는 것이다. 반주라는 표현이 바르지 않다고 하여, 미국 학교들은 반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앙상블 아트, 건반악기와 함께 연주하는 아트(Keyboard Collaborative Art) 등 이름을 달리한지 20년 가까이 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반주과라고 부른다.
얘기가 약간 샜는데, 반주과는 성악 반주와 기악 반주로 나뉘어서 양쪽을 모두 다 공부해야 졸업을 할 수 있고, 성악 반주에는 각 나라 언어로 가곡을 부를 때 발음법 등을 배워야 한다. 성악가가 발음을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교정하는 것이 반주자의 책임이고, 그래서 성악 반주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을 보이스 코치(Voice Coach) 라고 부른다. 물론 반주과가 아닌 학생들도 반주과목을 들을 때 각 나라 언어의 발음법을 배워야 하는데, 성악곡으로 많이 접하는 이태리어, 독어, 불어, 영어는 물론이고,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도 얼마나 발음법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지 놀랄 때가 많다. 반면에 체계적으로 갖춰진 한국어 발음법에 대한 음악 서적을 찾기 힘들고, 소리를 좀 더 잘 내기 위해 으 발음을 어 비슷하게 내라고 요구하는 한인 성악가들이나 지휘자들을 볼 때면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서양 가곡을 공부하다보면, 가곡 작곡가들이 그 나라 언어와 문학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어서,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나 소리를 크게 낼 수 없는 단어를 음악에 맞출 때 미리 다 알아서 세팅해 놓은 것도 발견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성악가와 한 사람의 피아니스트가 함께 만들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인 가곡은, 그 장르에 있어서 서정시를 음악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라 정의 내릴 수 있을 정도로 가사의 전달이 중요하고, 그 음악적 세팅이 중요하다. 그래서 가곡을 많이 쓴 작곡가들은 문학과 음악, 그리고 성악과 피아노 모든 면에 있어서 풍부한 지식과 학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한국은 서정시가 활발히 쓰여질 무렵, 한일합방으로 인해 지식인들이 대부분 애국 시인으로 돌아서면서 상대적으로 서정시가 부족하고, 서양과는 달리 한국 가곡 작곡가들 중에는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이 드물어서 멜로디가 수려함에 비해 피아노 파트가 열악한 것이 가곡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보리밭, 비목, 그집앞, 아무도 모르라고 등 현재 기존한 아름다운 가곡들을 제발 제대로 발음해서 부를 수 있는 체계만이라도 하루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발성을 더 좋게 하기보다는, 아름다운 한국말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 성악 교육과 의식이 아쉽다.
게임의 진행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하려고 일부러 더 발음을 부정확하게 녹음하는지 모르겠지만, 해피 투게더를 볼 때마다 발음의 체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한국 음악계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되어서 즐거움이 반감될 때가 많다.
새라 최<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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