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영국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바그다드는 독재자 후세인 때문에 그 이미지가 나빠졌지만 이 도시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인류문명 발상지의 중심부이다. 이라크의 옛 이름인 메소포타미아는 아시리아 문명의 발상지로 이집트, 그리스, 로마가 번성하기 이전 문명의 요람이었다. 메소포타미아는 세계 최초의 문어와 기념비적 건축과 미술의 생성지로 성경 속 아브라함의 출생지 우르도 이곳에 있다.
무에진(기도시간 알리는 사람)이 사원 탑에 올라 “알라후 아크바”(신은 위대하다)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선뜻 떠오르는 바그다드는 모험과 로맨스로 가득 찬 이야기 ‘천일야화’의 도시다. 흔히 ‘아라비안 나이트’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부와 권력과 미녀 그리고 마법이 있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으로 짜여진 다채로운 양탄자와도 같다. 그래서 바그다드는 꿈과 환상의 도시요 옛날 얘기의 본고장으로 세상 사람들의 영원한 동심 안에 자리잡고 있다.
페르시아의 황제 샤리아르는 여자의 정절을 못 믿어 왕비를 채택해 초야를 치른 뒤 이튿날 처형해 버린다. 수많은 왕비의 목이 날아간 뒤 새로 채택된 왕비가 아름답고 용감하고 총명한 셰헤라자드. 셰헤라자드는 첫날 밤 남편에게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황제는 얘기가 너무나 재미있어 다음 얘기를 들으려고 왕비의 처형을 연기한다. 그러기를 일천하고도 하룻밤.
성경 내용과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얘기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천일야화’ 이야기들 중 가장 인기 있는 것들은 ‘신바드’와 ‘알라딘’ 그리고 ‘알리바바’와 ‘어부와 도깨비’ 이야기. 이것들은 내용이 무척 극적이어서 무성영화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바그다드의 뱃사람 신바드는 용감하고 꾀 많은 자로 인도행 일곱 차례의 항해서 온갖 모험을 겪으며 금은보화를 얻어 귀국한다. 그에 관한 영화로 재미있는 것은 더글러스 페어뱅스 주니어, 모린 오하라 및 앤소니 퀸이 나온 요란한 칼싸움과 로맨스가 있는 눈부신 총천연색의 ‘뱃사람 신바드’(1947)와 특수효과가 뛰어난 ‘신바드의 일곱번째 향해’(1958).
“열려라 참깨”로 유명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은 도둑들이 숨겨둔 금은보화가 있는 동굴을 발견한 나무꾼의 얘기. 얘기 내용을 마음대로 바꿔 만든 동명의 영화(1944)에서는 도둑들이 사악한 몽고 황제에게 쫓겨난 바그다드의 왕자를 도와 왕권을 회복해 준다. 알록달록한 테크니컬러가 찬란한 재미 만점의 영화인데 새디스틱하고 무자비한 바그다드의 통치자를 선한 자들이 무찌른다는 얘기가 이번 이라크 전쟁의 미국측 홍보용으로 쓰일만 하다.
중국에 사는 젊은 방랑자 알라딘과 마술 램프의 얘기는 디즈니에 의해 ‘알라딘’(1992)이라는 만화영화로 만들어졌었다. 로빈 윌리엄스가 램프 속에서 나온 파란 도깨비 음성을 호들갑을 떨면서 해냈었다. 또 멋쟁이 영웅과 예쁜 노예 셰헤라자드, 사악한 군주와 은퇴한 신바드가 나오는 ‘아라비안 나이트’(1945)와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꿈같고 이국적인 ‘아라비안 나이트’ 그리고 펜싱 결투가 멋있는 ‘천일야화’(1945) 등도 모두 흥미진진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천일야화’에 관한 영화 중 최고로 환상적인 것은 영국 영화 ‘바그다드의 도둑’(The Thief of Bagdad·1940). ‘천일야화’의 여러 얘기를 모자이크한 이 영화는 도둑과 쫓겨난 왕자(바그다드서 바스라로 도주한다)와 마술사인 사악한 대신과 3각 사랑에 휘말린 아름다운 공주 그리고 3,000년만에 유리병 속에서 나온 산더미 만한 도깨비가 있는 기막히게 즐거운 마법 같은 작품이다.
비상하는 날개 달린 백마와 비행 카펫,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보석 눈의 보호자로 여러 개의 팔이 달린 요염한 킬러 여신상(사진) 그리고 명중률 100%의 황금 활과 화살 및 귀신도 놀랄 마법이 판을 치는 액션과 모험과 사랑의 얘기가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얘기처럼 고소하다. 이 얘기는 더글러스 페어뱅스 시니어 주연의 동명 무성영화(1924)로도 유명하다.
‘천일야화’는 러시아의 음의 미술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교향조곡 ‘셰헤라자드’(Scheherazade. Philips 출반)에서 총천연색 음의 시로 묘사되었다. ‘바다와 신바드의 배’ ‘칼란다르 왕자 이야기’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 및 ‘바그다드의 축제’ 등 4악장으로 구성됐다. 황홀한 선율과 리듬의 광채 나는 음악으로 동양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데 바이얼린이 셰헤라자드의 이야기하는 음성을 간드러지게 묘사하고 있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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