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건강상 문제나 좌절감 등 평소와 달리 한계 상황에 도달하면 누구나 한번쯤 죽음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과 달리 죽음을 특별한 의미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도 없잖아 있는 것같다. 삶 자체를 지나치게 회의적으로, 우울하게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하나의 단순한 행위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 것같다.
아는 선배 중에 평소 염세 끼(?)가 좀 많은 이가 있었다. 동문들 사이에서는 너무 똑똑해서, 그리고 세상을 너무 훤히 내다봐서 항상 주의를 끌던 분이었다. 그 선배가 지난 주말 그만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이유는 살만큼 살았으니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살면서 그는 너무 능력이 있기 때문인지 온갖 것 다 참견하다 견딜 수 없는 자기 한계
에 못 이겨 목숨을 끊은 것 같다. 그 것도 죽는 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정말로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다.
죽음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마지막 계단이다. 인간은 언제일지
모를 이 마지막 순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열심히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살다보면 우리도 때로는 이런 생각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났으면 한번 멋있게 살다가 가야 될텐데... " 그러나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아 그렇게 살다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그래서 이런 생각을 누구나 종종 하곤 한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이 선배는 지난주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어와 "나는 이제 죽을 때가 왔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죽음을 노래하듯 했기에 그것이 정말 선배의 마지막을 예고하는 전화였는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겉으로 보아선 죽을 이유가 없는 선배였기 때문이다. 남편이 있고 버젓한 두 아들이 있고 자기가 손수 가꾼 집이 있었다. 직장에서나 동네에서도 그는 영어도 아주 유창하고 대단히 유머스러워 남다른 인기를 얻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는 자기의 속내를 털어놨다.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놨고, 남모르게 겪는 신체적 아픔도 호소해 왔다. 그리고는
"흉하고 험하게 살 바에는 차라리 깨끗이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오랫동안 준비해온 자살계획을 털어놨다.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너무나 담담하게 해 주변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 선배는 정말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제 돌아보니 마지막이었던 그 전화에
서 나는 "왜 자꾸 죽음을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듯이 꾸짖었다. 그는 내가 한 나무람 보다는 질문에 중요성을 더 둔 듯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고 억울하게 사는 여성들이 너무 많아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 그동안 지병이던 병이 직장도 못 갈 만큼 너무 악화됐고 60세도 안된 여자의 얼굴이 너무 흉한 것을 보니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이제는 죽을 때가 된 것 같다고 전화에서 말했다.
황당하게 들리던 그 말이 이렇게 현실로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선배의 살아생전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견딜 수가 없었으면 죽음을 택했을까 가슴이 저며온다. 그는 이 죽음을 앞두고 벌써 오래 전부터 많은 계획들을 하며 자신의 뒤를 정리했던 것이다.
살아있을 당시 그는 정의파로 남달리 의협심이 강해 한인사회 일이건, 미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중 한인들이 당하는 걸 보면 도무지 참고 넘어가지 않았다. 때로는 항의와 개선에 앞장섰다. 죽기 바로 전까지 자신의 장기를 기능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한인사회에 직업학교가 없는 것을 알고 자신이 죽고 나면 남은 조그마한 금액도 뜻 있게 쓰여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놓고 숨졌다.
자신이 죽은 뒤에도 남은 식구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사항들도 세심하게 돌아봤다. 자신과 가까웠던 주위의 동문 선 후배들에게도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야말로 선배의 죽음은 지저분하게 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아래 철저히 준비된 죽음이었다. 선배는 데릭 햄프리의 ‘마지막 출구(Final Exit)’ 속에 나오는 자살방법을 택했다.
"60 전에 생의 의미를 다하고 죽는 다는 것이 얼마나 프라우드한 건지 모른다"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난 선배. 선배가 끝낸 삶에 대해 어떤 말을 해야할지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 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러나 신만이 내릴 수 있는 생의 종말을 본인 스스로가 끊는다는 것만은 결코 찬성하고 싶질 않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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