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가 마련한 2002년도 각 부문 최고를 기리는 시상만찬이 15일 샌타모니카의 카사 델 마 호텔서 열렸다. 비록 오스카 쇼의 화려함을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많은 스타와 감독 등 할리웃의 내로라 하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데다 평소 장돌뱅이 옷차림을 하던 동료회원들도 이날만은 정장을 해 분위기가 제법 번쩍거렸다.
내가 해마다 이 모임에 참석하면서 느끼는 점은 역시 스타 파워라는 것은 빛나는 백열등처럼 뜨겁고 눈부시다는 것. 또 하나 흐뭇한 것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할리웃과 해외의 영화인들과 1대1로 만나 악수하고 자유롭게 담소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오 6시부터 시작된 칵테일 시간에 내가 제일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눈 사람은 내 평생 지금까지 그의 음악만 들었던 엘머 번스틴. 백발단구에 마음 좋은 아저씨 모습의 번스틴(81)은 ‘천국에서 먼 곳’의 음악으로 수상 차 참석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대학생 때 서울서 영화 ‘황야의 7인’을 봤을 때 나는 처음부터 곧바로 당신의 음악에 반했었다”고 말하자 번스틴은 “네 친절한 말이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수상소감서 “10년 전 당신들이 준 생애업적상을 받은 내가 아직도 활동하는 사람으로 이 자리에 돌아오니 기분이 묘하다”며 즐거워했다.
내가 이어 말을 건넨 사람은 생애업적상을 받으러 온 명장 아서 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만든 펜도 역시 백발단구였는데 자기 작품처럼 야무졌다. “왜 더 이상 영화를 안 만드느냐”고 물으니 “요즘 브로드웨이서 일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고. 펜은 수상 소감서 “헨리 폰다, 밥 미첨, 조지 C. 스캇 등 나와 함께 일한 배우들이 거의 모두 사망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그는 “그 누구도 당신들만큼 날 기쁘게 해준 사람들은 없다”며 고마워했다.
오래간만에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를 만나 서로 친구처럼 반가워했고 ‘선샤인 스테이트’로 최우수 조연여우로 뽑힌 이디 팔코에게는 “당신 영화가 작년 나의 베스트 텐 중 하나”라고 했더니 “고맙다”며 즐거워했다.
상도 안 받은 니콜라스 케이지는 자기가 주연한 ‘각색’으로 최우수 조연배우로 뽑힌 크리스 쿠퍼를 응원하기 위해 참석했다. 나는 멋쩍어 하는 듯한 그에게 다가가 “당신의 감독 데뷔작 ‘소니’는 너무 운명적인데 당신 그렇게 염세적인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노, 노”를 연발하며 글이 좋아 연출했다고 말했다. 3년 전에도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으려고 우리 모임에 참석했던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그녀에게 말해’로 최우수 감독)는 그때처럼 검은 옷차림. 내가 “우리가 당신을 너무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농을 건넸더니 “아니야, 난 당신들이 필요해”라고 명랑하니 응수한다.
‘세월’과 ‘천국에서 먼 곳’으로 최우수 주연여우로 선정된 줄리안 모어는 “작품속 주인공의 얘기를 배우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고통스럽게 경험했다”며 차분히 말했다. 답사 후 모어가 단하로 내려서자 최우수 주연 남우상을 받으러 온 잭 니콜슨(‘슈미트에 관하여’)이 벌떡 일어서더니 박수를 보낸다.
이어 등단한 대니얼 데이-루이스(‘뉴욕의 갱들’)는 스크린에서의 맹렬한 모습과 달리 수줍어했다. 그는 “니콜슨과 최우수 남우상을 함께 받게 돼 더욱 영광”이라며 겸손해 했다. 자신의 또 다른 눈인 선글라스를 낀 채 상패를 받은 니콜슨은 “이게 무슨 상이지”라며 “다음에도 또 오겠다”며 능청을 떨었는데 실제 모습이나 연기하는 모습이 모두 즉흥적이다. 감독상을 받은 알모도바르는 “비평가들은 날 별로 안 좋아했는데 당신들 때문에 달라졌다”고 감사하더니 느닷없이 “에, 에” 하면서 “니콜슨에게 감사한다”고 말해 장내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시상식이 끝나고도 회원들과 수상자들은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서서 환담을 나눴다. 나도 크리스 쿠퍼와 데이-루이스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데이-루이스에게 “영화 속에서 당신이 너무 무서워 지금도 접근하기가 겁난다”고 말했더니 “우리 엄마도 그러더라”며 크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주연한 ‘천국에서 먼곳’을 만든 타드 헤인스 감독과 함께 온 모어를 찾아갔다.(사진) 내가 ‘세월’에 관해 얘기하며 “영화 보면서 울었다”고 했더니 모어는 “오-” 하며 측은하다는 듯 감탄사로 대답했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함께 사진을 찍으며 촌티를 냈는데 포도주와 스타 파워에 취해 밤 10시가 넘어서야 호텔을 나섰다.
박흥진<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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