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우리아이들…어떻게 기를까
“우리 준호는 지금 4학년입니다. 며칠 전 선생님과 컨퍼런스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요즘 준호가 부쩍 반에서 강의시간에 딴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렇다고 반에서 딴 짓을 하거나 말썽을 부리는 것은 아닌데, 강의 내용을 물으면 강의의 일부 정도나 대답할 지경이랍니다. 혹시 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물으시더군요! 집에는 물론 아무 일도 없고 또 준호가 정신집중을 못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지요? 제가 집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4학년 준호 어머니
과거에 이 지면을 통하여 정신집중 못하는 아이들과 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여러 번 다룬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신집중을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는 학생에 대해 쓰려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 강의를 들을 때나 책을 읽을 때 본의 아니게 자기도 모르게 딴 생각이나 딴 짓을 하는 아이들,
2. 저학년 때는 정신집중 못 한다, 혹은 안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었는데 근래에 들어 정신집중이 안 되는 아이들이다.
우선 ‘강의를 듣는다’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며 또 들은 강의에 정신집중을 ‘했다 혹은 못 했다’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듣는다는 것은 흐르는 물 같아서 그 물줄기를 잡지 않으면 그냥 흩어져 딴 데로 흐르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귀가 있다고 들리는 모든 말을 다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알아들었다는 것은 말의 내용이 두뇌와 연결되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연결된 것 가운데 가장 초보적인 것부터 살피자면 우리의 마음이 세 분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첫째, 생각하는 과정-보통 언어 중에서 듣기(listening)와 읽기를 받아들이는 언어(receptive language)라고 하여 그 말 자체가 마주 수동적인 인상을 준다. 그러나 듣기에서 히어링(hearing)에는 혹 약간의 수동성이 포함된다 하더라도 리스닝(listening)은 수동적이기는커녕 아주 능동적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두뇌를 열심히 써서 생각하는 과정(cognitive process)이다. 사례에 소개한 준호는 반에서 히어링을 한 것이다.
듣기(listening) 자체가 힘든 과정이다. 듣기는 생각하는 과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두뇌를 적극적으로 쓰는 행동이며, 어떤 점에서는 읽기보다 더 힘든 것이다. 읽기도 물론 받아들이는 언어이고 생각하고, 적극적인 사고, 판단, 평가 등을 하는 행동이기는 하지만 이 것은 읽는 도중에 혹시 몰랐거나 다시 생각하거나 점검(check up)할 일이 있으면 다시 읽을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쓰여진 글은 다시 되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듣기는, 말하는 사람의 말을 그 때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한번 한 말은 마치 흘러가는 물 같아서 다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듣기가 힘드는 이유는, 연구에 따르면 생각하는 속도가 듣는 속도 보다 4배나 빠르다. 즉, 준호의 경우 강의를 듣기는 들었지만 나머지 4분의3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4분의3의 시간을 딴 생각을 했다가 금방 또 강의에 집중할 수는 없다.
둘째, 훈련된 행동-듣기(listening)는 분명히 훈련된 행동(disciplined activities)이다. 귀를 먹지 않았다면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자연적인 능력이 히어링(hearing)이라면, 리스닝(listening)은 어디까지나 훈련된 행동이다. 이것을 제임스 브리튼(James Britton)은 ‘참여자의 듣기’라고 한다. 이 참여자의 듣기란 능동적인 활동으로 그때 그때의 상황을 알고,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고, 결정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방관자(spectator)의 듣기’라 함은 마치 놀러온 사람이 멀리서 구경하듯 하는 행위이다. 방관자는 자신의 눈앞에 일어나는 일에 책임질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또 그 경험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 감정적인 행동에 옮기지를 않는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정신집중을 하지 못해 강의를 못 듣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정신집중이 안 되었다기보다는 강의의 내용이 싫건 좋건 들을 수 있는 정도의 감정적, 지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선생님의 강의가 학생의 관심이나 취미 밖의 것이라고 해서 듣지 못한다는 것은 정신집중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싫은 것, 재미없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감정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말이고, 또 선생님의 강의가 지적으로 너무 수준이 높다면, 그 학생은 지적으로 높은 것을 소화해 낼만한 지성 발달이 미약하다는 말이다.
셋째, 골라서 듣기(selective listen-ing, affective domain)-여기에서 ‘골라 듣는다’는 말은 간추려 듣는다는 말이 아니다. ‘골라 듣는다’란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 자신이 듣고 싶은 부분, 자신의 취미, 흥미, 관심이 있는 부분만 골라 듣는다는 말이다. 정신집중이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강의의 어떤 부분을 도저히 못 알아듣는 경우 어쩔 수 없다. 반면에 간추려 듣는다는 말은 말의 균형이 맞게 요점만 간추려서 꼭 알아들어야만 하는 점을 알아들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완벽히 간추려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론:
준호 문제의 해결책-듣는 강의의 내용에 정신집중을 하여 그 내용을 필기할 수 있는 능력과 교과서에 쓰여진 글의 내용을 정신집중을 하여 필기할 수 있는 능력과는 결과는 비슷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은 다르다. 듣기(listening)를 잘 할 수 있는 능력도 읽기를 배우듯이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즉,
1. 강의를 듣기 전에 반듯이 예습을 해가게 하여야 한다. 비슷한 능력의 두 학생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강의를 듣는다고 해도 한 학생은 예습을 미리 해 갖고 와서 강의를 듣는 학생과 지금 교과서의 어디를 배우고 있는지도 무르고 앉아 있는 학생과는 그들의 태도부터 다르다.
원래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사전지식이 있어야 그것을 근거로 배운다(Schema Theory). 비록 책에서 이미 읽고 알고 들어온 학생은 아는 것을 또 들어 그것이 보링(boring)하지 않을까 라고 착각이나 오해를 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강의가 ‘복습’이 되고 보니 이미 안 지식마저도 그 기반이 더 닦아질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몰랐던 새 지식을 배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 몰랐던 새 지식이 아무리 좋아도 연거푸 계속 나오면 우리 두뇌는 그것을 다 담당하지 못한다. 즉, 자기도 모르게 딴 생각을 함으로 자신의 두뇌를 식히려 든다.
2. 강의가 보너스(enrichment)가 있다. 강의에는 책에는 쓰여져 있지 않은 내용이 많이 포함된다. 이것은 책을 읽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내용들이다. 이것이 가끔 강의 전부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교과서의 내용과 연결을 알아야 한다.
3. 강의를 필기하게 한다. 가끔 교수회의나 강연 때 들은 것을 무엇이나 다 쓴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시간과 정력상 아주 비생산적이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무엇이나 다 쓰려니, 받아쓰기 바빠서 들은 것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없을 수가 많다. 효과적인 것은 들은 것을 들은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쓴 것이 중요하지만 쓰는 사람이 생각을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즉, 중요한 것만 필기하게 하는 것이다.
(지면상 준호의 문제해결 방법의 나머지는 다음 주에 계속함.)
전정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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