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 하기
■리스닝-반에서 선생님 강의 듣기 첫걸음
친척 식구와 같이 저녁을 먹으러 나갔을 때의 일이다.
준(2학년): “엄마! 나 이 것 싫다고 그랬잖아!”(수저를 딱 땅에 떨어뜨리며 소동을 부린다. 그러나 사실은 준은 자기가 그 음식이 싫다고 말 한 적이 없었다.)
준이 어머니:“그러면 준이는 뭘 먹고 싶은데?”
준: “피자 사달라고 했잖아!”(이것도 처음 듣는 소리)
준이 아버지:“여기는 피자 집이 아니니까 다음에 사 줄게! 꼭 약속! 아이 착해!”
준: (또 소동을 부리기 시작한다)
준이 할머니:“그래 사다 주마! 아비야 무엇하니? 어서 사다주지 않고! 별 것 다 갖고 아이를 울리네! 그래 아비가 나쁘지! 사다주면 될 것 갖고!…”
2학년이면 준이는 정신집중을 잘 해서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나이가 지났다. 물론 준이는 강의를 잘못 들어 학교에서 많이 지적을 받은 아이이다. 저녁을 먹을 때 줄곧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 준이는 머리는 명석한데 학교에서 정신집중을 못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나요?”라고 물었다.
부모님들은 정신집중 못하는 것과 자기중심적인 언어발달과의 연결을 전혀 못 한다.
첫째: 준이는 자기가 피자를 꼭 먹어야겠다는 말을 한 적도 없고 남이 자기가 하지 않은 말까지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또, 이해한다고 믿고 자라왔다. 이 자기중심적인 언어(ego-centric speech)는 보통 언어 발달과정에서 2~4세 때 일어난다. 아무리 늦어도 학교 가기 전에는 남을 생각하는 언어발달(socialized speech)이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 남을 생각하는 언어발달은 인간의 두뇌발달에서 이론의 성립이 어느 정도 되어 상황판단을 할 수 있을 때 일어난다. 즉 ‘여기는 피자 집이 아니니까!’라고 아버지가 이론 성립을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 성립으로 준이가 상황판단을 할 기회조차 부모가 뺏은 격이다.
셋째: 할머니에 의해 갑자기 그 ‘아비’가 나쁜 사람으로 등장을 하고 보니 준이는 자신이 남을 생각하는 언어발달은커녕 자기는 나쁜 아빠와 살고 있는 격이 되어 버렸다. 위의 사례를 쓴 이유는 응석받이 어린이는 정신집중의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기중심 때문에 그런 결과를 초래한다.
많은 경우에 듣는 능력이란 남의 생각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자기 중심인 경우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우선 감정의 성숙이 있어서:
1. 남의 생각을 중요시 할 줄 알아야 되며,
2. 남의 생각을 전적으로 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아니라 비록 그것이 남의 생각이라도 자기 생각보다 그 이론이 성립이 됐을 때는 자기 고집을 버리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즉, 논리의 발달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한다.
*논리(logics)는 언제부터 발달하나?-아이들마다 다소 다르지만 피아제(Piaget)에 따르면 6세 정도라 한다. 그래서 피아제는 아이들이 6세에 입학하는 것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논리 발달이 4~5세부터 시작하여 6세 정도가 되면, 남의 존재를 의식하고,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며, 동시에 언어도 어느 정도 아이의 생각의 중심을 잡을 수준이 된다.
*남을 생각하는 언어(socialized speech)가 잘 발달된 학생은 자연히 선생님의 강의를 잘 들을 수가 있나?-반드시 그렇다고만 볼 수 없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생각할 때 소요되는 시간과 말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남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보다 4배나 빠르다. 다시 말하여 40분 동안의 강의를 들었다 하자. 10분은 정말 듣는데 소요 됐다면 나머지 30분은 자연히 생각하는데 쓴다는 결론이다. 즉,
위의 30분 동안 지금 듣고 있는 강의를 생각하고 있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보통 이 30분을 딴 생각을 하는데 쓴다. 또, 다른 생각을 하다가 강의에 몰두할 수 있는데 쓰이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가끔 그 30분의 생각이 더 길어져 딴 생각(공상, 잡념)으로 이어져 나가면, 결국 몸은 강의실에 있지만 생각은 ‘콩밭’에 가 있기가 일쑤이다. 결국 정신집중을 못한다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서론에 소개한 준이는 자기 생각에 사로 잡혀 남의 말이 들어올 여유조차 없었다.
반면에 자기중심적인 언어에서 벗어나, 논리가 자기 나이에 맞게 발달된 아이들은 남의 생각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집중을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은 위에서 언급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강의 듣는 시간보다 4배나 빠른데서 온다. 때문에 이 30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는데 따라 자연히 정신집중 문제는 없어진다.
그렇게 하려면 다음의 3가지를 가르쳐야 한다. 즉,
1. 지금 듣고 있는 10분의 강의를 머리로나 글로 요약하게 한다. 강의하는 선생님들은 덮어놓고 요점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서론도 있고, 또 강의의 내용에 적합한 예문을 들기도 한다.
2. 강의의 내용에 비추어 무슨 내용의 강의로 다음에 들어갈까?
3. 선생님은 간접적인 뜻을 갖고 있는데 혹시 듣는 학생인 내가 모르고 있었나? 간접적인 뜻의 파악은 가끔 어려울 수가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방법이 도움이 된다.
A. 왜 선생님의 이 부분의 강의를 많이 하시나? 책에 있는 내용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경우
B. 혹은 책에는 수십 페이지이나 강의를 조금도 안 하실 경우
C. 선생임이 지금 말 안 하셨더라도, 간접적인 힌트를 하신 적이 있나?
D. 지난주에 조금은 말씀하셨는데… 더 깊이 강의를 할 줄 알았는데 안 하시는 원인은?
위의 4가지 등의 질문을 늘 염두에 두고 강의를 들으면 선생님의 강의 중에 직접 한 말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직접 하지 않은 내용도 이해할 수가 있다.
위의 이 모든 것이 한가지 공통된 점이 있다면, 학생이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가만히 앉아 수동적으로 듣는 것 같으나, 그 머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단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일이다. 비록 똑같이 가만히 앉아 강의를 듣는 학생을 비교해 보자.
1. 서론에서 소개한 준이 같은 학생은 우선 자기 자신이 감정적으로 자기 중심의 말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강의를 들을 감정의 성숙도가 안되어 있다. 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남의 생각을 듣고 나의 생각으로 만드는 것인데 준이는 자기가 원하는, 필요로 하는 것만 선택하여 듣는다. 그 ‘골라 듣기’(selective listening)를 한다. 골라 듣기를 한다는 것은 거의 강의를 못 듣고 있는 것과 같다. 정신집중을 하는 것이 원인이 아니고, 골라 듣기를 하니 늘 생각은 딴 데 가 있다.
2. 듣는데 문제가 있는 학생이 아니지만 생각에 소요되는 시간이 듣는 시간보다 4배가 빠르니 자연히 나머지 4분의3 시간은 딴 생각을 하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전정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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