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완견 마리 키우는 장수경 박사
▶ “주워 온 개들은 항상 고마운 표정, 안스럽고 기특하기도”
이발·목욕에 수의사 정기검진까지
한달 사료값 500달러…여행도 못가
한인가정상담소장 장수경 박사(47·임상심리학)가 30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다. 한두마리도 아니고, 대여섯마리도 아니고, 무려 30마리다. 그중 열 마리는 바로 얼마전 태어난 새끼들이라곤 해도 좀 심하지 않은가? 그것도 하나같이 진돗개, 허스키, 차우차우 같이 덩치 큰 개들이 스무마리나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아마 상상만 해도 겁낼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찾아가보니 풍경이 전혀 다르다. 개들 뿐 아니라 염소 두마리에 거북이까지 살고 있는 평화로운 ‘장스 동물농장’. 한때 거위와 토끼, 비둘기까지 한 식구가 되어 살았다는 장수경 박사의 선랜드 집을 찾아 개 기르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얘는 주책 바가지예요.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고도 낯선 사람이 왔는데 저렇게 좋아하니 한심하지요. 오죽하면 내 무릎에 머리를 얹고 같이 진통하면서 새끼를 낳았겠어요”
1주일전 태어나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꼬물꼬물하는 강아지들을 한 놈씩 안아올려 닦아주면서 장박사는 옆에서 멀뚱멀뚱 무심하게 바라보는 어미 ‘칼루아’를 나무랜다. 바로 6개월 전에도 새끼 3마리를 낳은 시베리안 허스키 칼루아는 무섭게 생긴 것과 달리 주책이 심하고 미련해 답답하다는 설명이다.
“얘네들 때문에 걱정이 돼서 여행도 잘 못 간답니다. 한국에 가도 5일 이상 머문 적이 없어요. 이 많은 애들을 쓸어주랴, 목욕시키랴, 병원 데려가랴, 바쁘고 힘들지만 개를 워낙 좋아하니까 취미생활 삼아 기르지요”
개를 ‘애들’이라고 부르는 장박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개를 좋아했다고 한다. 농림부장관이었던 부친 장경순씨가 워낙 개를 좋아해 집에서 항상 대여섯마리씩 키우곤 했기 때문. 자신이 아프면 학교에 가도, 개가 아프면 학교에 안 갈 정도로 형제들 가운데 유난히 개와 친했던 장박사는 69년 미국에 조기유학온 후에도 지금까지 항상 개와 더불어 살아왔다.
그러나 아무리 개를 좋아해도 한두마리였지, 이렇게 대식구로 불어난 것은 전혀 계획에 없던 일. 시작은 6년전 선랜드 산꼭대기에 있는 집으로 이사오면서부터였다.
“처음 이사올 땐 원래 기르던 골든 리트리버 ‘와블’ 한 마리만 데리고 왔어요. 그런데 대지가 너무 넓다보니 하나 더 키우고 싶더라구요. 애니멀 셸터를 찾아가 ‘베어’를 데려왔죠”
차우차우 종인 베어는 전 주인에게 심하게 학대당한 개였다. 이빨이 다 뽑혔고 곪아터진 귀에 파리가 들끓는 처참한 모습을 보는 순간 장씨는 두 번 생각도 않고 차에 실어 데려왔다. 처음 며칠동안은 어찌나 으르렁대고 가까이 안 오는지 얼마간 후회도 했지만 햄을 던져준 것을 계기로 친해졌고 6년이 지난 지금은 개들의 보스 노릇을 하고 있다.
그 다음에 온 개가 진돗개 백구인 ‘새라’. 친구가 이사가면서 주고 갔는데 겁이 많고 성격이 차가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네 번째 들어온 ‘렉스’는 장박사가 유일하게 돈을 내고 산 개다. 숫자가 많지 않은 그레이트 피레니스 종으로 오더하고 6개월을 기다려 샀는데 데려와보니 뒷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장애견이었다. 구입처에 이야기하니 도로 보내라고 했지만, 보내면 안락사 시킨다는 말을 듣고는 그냥 기르고 있다. 원래 영리한 종인데 렉스는 머리가 무척 나쁘다. ‘바보’라고 놀리면서도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장박사는 렉스를 가장 좋아한다.
다섯 번째 ‘심바’. 잘생긴 진돗개 황구로 4년전 한인타운에서 친구가 주워왔다. 진돗개가 타운 거리를 배회하는데 꼭 차에 치일 것만 같아 운전하던 차문을 열어주었더니 얼른 올라타더란다. 행색이 수려한게 아무래도 길 잃은 개인 것 같아 라디오로 수차례 주인 찾는 광고를 했지만 나타나지 않아 할 수 없이 장박사 집으로 들어왔다. 가장 영리하고, 깨끗하며, 지 앞가림을 잘 하는 놈으로 장박사가 아무리 늦은 시각에 귀가해도 늘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 충직한 놈이다.
그 다음은 ‘스노우맨’. 장박사 집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개다. 밖에서 새끼를 배어온 새라가 6마리를 낳았는데 다 남 주고 스노우맨 하나만 기르는 것. 아직 어리고 약해 심바의 ‘밥’이란다.
검은 색의 덩치 큰 ‘데이지’가 들어온 것은 그 얼마 후. 락와일더 종인 데이지는 장박사의 친구가 개를 키우고 싶다면서 애니멀 셸터에서 입양한 개인데 어찌나 말썽장인지 도저히 감당을 못해 데려왔다. 신기한 것은 동물보호소에 들어갔던 개들은 모두 거세를 시키는데 어찌된 일인지 데이지는 임신이 되어 장박사의 집으로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새끼 두 마리 ‘록키’와 ‘말리’를 낳았다.
또 얼마 후 허스키 자매 ‘시바’와 ‘칼루아’가 왔다. 할아버지가 개 경연대회에서 16회나 챔피언을 먹은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들. 누가 기르다가 남에게 한마리씩 떼어준다기에 마음이 안돼서 함께 데려왔는데 둘 사이가 어찌나 나쁜지 원래 의도와는 달리 떼어놓아 기르고 있다.
그중 시바가 브리딩 챔피언인 ‘실버라도’와 교미해 6마리를 낳으면서 숫자가 부쩍 늘었다. ‘스펜서’ ‘실베스터’ ‘사샤’ ‘사만다’ ‘세바스찬’ ‘울프강’이 그들.
또 6개월전에는 칼루아가 렉스와의 사이에서 ‘모카’ ‘코코’ ‘록샌’ 세 마리를 낳았으며 이들 모두 한 식구가 되어 살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한달전 시바가 밖에서 배어온 ‘사생아’ 세 마리를 낳았고, 바로 뒤미처 또 칼루아와 렉스 사이에서 7마리가 태어났다. 장씨는 새로 태어난 10마리는 정 붙이지 않고 모두 원하는 사람들에게 분양할 계획. 데리고 있는 20마리 키우기도 벅차 한동안은 식구를 더 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참 신기한 것은 이 집에서 태어난 애, 자란 애, 주워온 애가 다르다는 거예요. 태어나고 자란 애들은 뭘 해줘도 당연한 줄 알지만 주워온 애들은 항상 고마운 표정이죠. 그 차이가 확연하게 보여서 한편으론 기특하고 한편으론 안 됐기도 하고 그래요”
개를 좋아하는 만큼 그 많은 개들을 돌보고 관리하는 일은 장난이 아니다. 한달에 사료 값만 500달러를 쓰는 것은 기본이고, 밥통 20개, 물통 20개를 매일 수시로 채워줘야 하며, 그렇게 먹고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배설한 똥을 치우는 일들은 보통의 정성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집에 일하는 사람이 상주하고 있어 기본적인 사육은 맡아주지만 장박사는 일하고 밤에 돌아와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들을 한번씩 꼭 보고서야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꼭 보고 싶어서만이 아니라 혹시 병이 났는지, 몸에 이상이 있는지 직접 몸의 여기 저기 만져주고 살펴보며 체크업해야 하기 때문.
바로 얼마전에도 베어의 팔을 쓸어주다보니 좁쌀 같은 것들이 만져져 항생제를 주었는데 다음날 자세히 보니 온몸과 얼굴에 다 돋아 있더란다. 한밤중에 응급실로 실어가 치료를 받고 왔지만 피부 알러지로 한동안 고생했다고 안쓰런 표정을 짓는다.
토요일은 개들과 노는날
‘칼루아’는 주책, 장애견 ‘렉스’가장 사랑스러워
매주 토요일은 개들과 노는 날. 평소보다 일찍, 새벽같이 일어나는 장박사는 우선 개들 목욕시키느라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난 후 한 놈씩 귀도 닦아주고, 이빨도 닦아주고, 빗으로 온 몸을 긁어 털갈이를 도와준다. 예방주사 놓는 것 정도는 장박사가 직접 하지만 일년이면 한두차례 수의사를 집으로 데려와 모든 개의 정기검진을 실시하고, 또 가끔씩 브루밍 서비스도 집으로 불러 하루종일 개들 이발이며 미용을 맡기기도 한다.
장박사에 따르면 개의 세계에도 서열과 순서가 있어 강한 개일수록 ‘가오’를 잡고 약한 개들을 거느린다. 또 서로 죽고 못살게 좋아하는 개들이 있는가 하면 붙기가 무섭게 물어뜯고 싸워 병원 신세까지 지는 개들도 있다. 렉스와 베어가 그 대표적인 숙적으로 한번은 싸우다가 렉스의 송곳니가 베어의 다리뼈에 박혀 한밤중에 동물병원 응급실에 들어가 수술과 처치를 받은 적도 있다.
이때 더 힘들었던 것은 원수지간인 두 마리를 함께 차에 싣고 갈 수가 없기 때문에 한 놈을 데려다 놓고 수술하는 동안 또 한 놈을 데려와야 했고, 집에 갈 때도 따로 따로 싣고 가느라 새벽3시가 넘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했던 것이다.
이처럼 친한 개들과 싸우는 개들, 또 발정난 개들을 따로 분리시켜 키우느라 장박사는 집 마당에 벽돌을 쌓고 펜스를 쳐서 5개 그룹으로 나누어 놓았다. 뒤꼍에는 여자애들, 아래쪽은 서로 잘 어울리는 놈들 식으로 나누고 마당에는 착한 개들만 풀어놓고 기르는데 가끔씩은 자리를 바꿔 펜스 안에 들어있던 놈들을 밖으로 내놓기도 하고, 자라면서 성격이 온순해지거나 사나와지는 변화에 따라 융통성있게 그룹을 조정하고 있다.
일하는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밖에 있는 개들은 모두 산 밑에 내려와 문 앞에 앉아서 장박사를 기다린다. 그러다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스무마리가 한꺼번에 난리를 치고 뛰어올라 차가 현관 앞에 설 때까지 잘못해서 치이는 놈이나 없을지 걱정될 정도.
“매일 밥주고 물주는 사람이 있는데도 주인이 누군지 너무 잘 알아요. 개를 키우다보면 서로 너무 정이 들어 떨어지기 힘든 관계가 되죠. 개가 너무 많다고 우리 집에 오기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저는 사람보다 개가 더 좋답니다”
<글 정숙희·사진 이승관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