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여인’이라 불렸던 독일의 기록영화 감독 레니 리펜슈탈이 22일로 100세를 맞았다. 리펜슈탈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2편의 기록영화로 평가받고 있는 ‘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1934)와 ‘올림피아’(Olympia·1936)를 만든 사람이다. ‘의지의 승리’는 히틀러의 뉘렘베르크 나치 전당대회를 찍은 것이고 ‘올림피아’는 베를린 올림픽에 관한 기록영화다. 이 두 영화를 보면 이미지가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미지가 한 개인뿐 아니라 국민 전체를 하나의 광적인 무리로 변질시킬 수 있는 도구로 쓰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작품이 ‘의지의 승리’다.
이 영화는 히틀러를 국민을 영도해 신화적 영혼을 지닌 불멸의 국가 독일을 세계 최고의 강국으로 만들어 놓을 메시아적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히틀러를 독일의 신의 위치로 올려놓고 2차대전 전의 독일 국민을 파시즘의 광기 속으로 몰아넣은 선전영화의 걸작이다.
배우 출신으로 차갑게 아름다웠던 리펜슈탈이 히틀러의 눈에 든 것은 그가 나온 30년대 독일영화 고유의 장르인 ‘마운튼 필름’(산 영화) ‘푸른 빛’(1932) 때문이다. 히틀러는 리펜슈탈이 제작·감독·주연한 이 영화를 보고 매료돼 그에게 뉘렘베르크 나치 전당대회 기록을 부탁했다.
재능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리펜슈탈은 특히 카메라 기술이 조물주적 솜씨. ‘악을 선전한 불후의 걸작’이라 불리는 ‘의지의 승리’가 어떻게 해서 사악한 미치광이 히틀러에 의해 국가와 국민을 하나의 살인적 기형체로 만드는데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도 이 같은 맥락에서 깨달을 수 있다.
리펜슈탈은 6일간의 전당대회를 아무런 논평 없이 이미지와 음향만 사용해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도 보는사람은 화면의 행동들에 대한 감정적 논평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리펜슈탈이 영화의 리듬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빠른 편집과 몽타주 등으로 사실을 환상의 경지로 격상시키면서 인간의 감동을 조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 조작을 한층 부추기는 것이 바그너의 음악이다.
리펜슈탈은 히틀러가 비행선을 타고 뉘렘베르크에 도착하는 모습과 대규모 군중집회에서의 열광적인 연설 같은 흥분되는 장면을 히틀러 유겐트의 천진난만한 텐트생활과 전통복장 차림의 잔치 같은 서정적 장면과 교차시키고 또 클로스 업과 롱샷을 번갈아 사용, 기록영화에서 감정이 샘솟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히틀러가 드넓은 광장을 개미떼처럼 불길하게 메운 군중을 향해 입에 침을 튀겨가며 연설하는 중간중간 군중이 이에 취해 “하일, 하일”하며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전율감을 느끼게 된다. 광란하는 군중의 몰개성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나는 지난 한국 월드컵 축구 때 나라 전체가 붉은 셔츠를 입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뉘렘베르크 전당대회를 연상했었다.
‘올림피아’는 손기정이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에 참가했던 베를린 올림픽을 찍은 그리스의 이상주의를 예찬한 한편의 영화 문헌이다. 이 영화는 히틀러와 그의 선전상 요젭 괴벨스가 막 득세한 나치스를 전 세계에 선전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의지의 승리’와 함께 또 하나의 위대한 선전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리펜슈탈은 각종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의 근육이 뚜렷이 드러난 육체와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표정 그리고 경기장면 등을 슬로모션 등의 촬영으로 시적으로 잡아내고 있다. 리펜슈탈은 단순히 경기모습과 선수들의 외적 동작과 표정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경기와 경기자들의 내적 정신과 감정을 민감하고 세밀하게 추출해 내 아름답다는 찬사가 절로 나온다. 경이적인 작품이다.
지금까지도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의 자기 역할을 어디까지나 예술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리펜슈탈은 현재 72세 때부터 배운 심해 잠수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리펜슈탈은 종전과 함께 체포돼 7년간 수용소와 가택연금 생활을 거쳐 자유의 몸이 된 후 수년간 수단의 누바 원주민들 사이에서 자진추방의 삶을 보냈다.
이때 찍은 사진 전시회가 다음달 LA의 파헤이/클라인 화랑서 열린다.
한편 조디 포스터가 주연하는 리펜슈탈의 자전적 영화가 현재 촬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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