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여름밤 음악과 포도주의 향연인(여자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할리웃 보울 시즌이 중간 지점에 이르렀다. 올 여름 들어 아직까지 보울을 안 찾은 사람들은 오늘이나 내일 밤 이틀 중 하루 온 가족과 함께 이곳엘 들르기를 권한다.
이틀 모두 하오 8시30분에 시작되는 프로그램은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앳 더 무비스’. ‘오클라호마!’ ‘회전목마’ ‘남태평양’ ‘왕과 나’ 및 ‘사운드 오브 뮤직’의 작곡·작사 콤비인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의 음악이 영화 장면들과 함께 연주된다. 로저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음악회로 존 마우체리가 할리웃 보울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밤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영화에는 할리웃 보울이 배경무대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곳은 로맨틱하고 매혹적인 분위기와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알고 있는 조가비 모양의 건축양식 때문에 많은 영화와 TV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보울서 처음 찍은 영화는 무성영화 ‘심포니’(1928, 일명 ‘재즈 매드’)였다. 그 뒤로 지금까지 보울은 영화에서 춤과 로맨스와 음악의 훌륭한 배경장소 노릇을 하고 있다.
보울이 나오는 영화에 출연한 스타들로는 캐서린 헵번, 재넷 게이너, 진 켈리, 프레데릭 마치, 프랭크 시내트라, 딕 파웰 등이 있다. 또 보울은 ‘베벌리 힐빌리즈’ ‘핑크 팬서’ ‘콜럼보’ ‘사인펠드’ ‘심슨네’ ‘멜로즈 플레이스’ 같은 TV 프로에도 등장했다. 보울이 나온 ‘콜럼보’ 시리즈에서는 미 인디영화의 개척자 고 존 캐사비티즈가 유명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객원출연 이곳서 음악을 지휘한다.
1972년 9월에 방영된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에튀드 인 블랙’. 탁월한 지휘자인 캐사비티즈는 유능한 콘서트 피아니스트인 젊은 정부가 자신과의 관계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하자 여인을 살해하나 연주 때면 늘 상의 칼러에 꽂는 꽃이 단서가 돼 콜럼보에게 붙잡힌다.
보울에서 찍은 영화 중 내 기억에 가장 뚜렷이 남아있는 두 영화는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필름 느와르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1944)과 즐거운 뮤지컬 ‘닻을 올려라’(Anchors Aweigh·1945). ‘이중 배상’은 생명보험 세일즈맨(프레드 맥머리)이 천하의 요부(바브라 스탠윅)의 유혹에 넘어가 여인의 남편을 살해하나 여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뒤 결국 둘 다 황천으로 간다는 내용의 살인의 어두운 걸작이다. 보울은 여기서 요부의 의붓딸이 흐느껴 울면서 세일즈맨에게 계모의 사악성을 알려줄 때 나오는데 이때 연주되는 음악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으로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와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닻을 올려라’는 프랭크 시내트라와 진 켈리가 나오는 노래와 춤이 있는 명랑한 뮤지컬. 두 수병 시내트라와 켈리는 외출허가를 받고 대낮에 할리웃 보울 리허설을 보려고 이곳을 찾아왔다가 경비원에게 퇴짜를 맞는다(당시만 해도 리허설 때는 일반출입이 금지됐던 모양이나 지금은 리허설을 공짜로 즐길 수 있다).
둘은 이에 기죽지 않고 보울 관객석 뒤의 언덕을 타고 내려와 무대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는 호세 이투르비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사진). 스페인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이투르비가 이날 연습하는 피아노곡은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제2번’이다.
그런데 시내트라는 1943년 8월 팝 가수로는 처음으로 보울서 LA 필과 협연한 사람이다. 그의 보울 데뷔가 빅히트를 하면서 뒤를 이어 팝과 재즈와 록 가수들이 이곳 무대를 밟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보울이 나오는 또 다른 명화로는 ‘스타 탄생’(A Star Is Born·1937)이 있다. 인기가 식어 가는 할리웃의 빅스타 프레데릭 마치가 술에 취해 보울에 와 의자에도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는 장면이 있다. 이를 바라보고 웃는 여자가 시골서 스타의 꿈을 안고 할리웃에 온 재넷 게이너. 마치와 게이너는 사랑에 빠져 결혼하나 마치는 끝내 자살하고 만다.
이밖에도 비교적 최근 영화로는 올리비아 뉴튼 존이 나온 ‘자나두’, 청춘 스타들인 에릭 스톨즈, 메리 스튜어트 매스터슨, 리아 탐슨 등이 나온 ‘섬카인드 오브 원더플’, 베트 미들러 주연의 ‘비치스’ 등이 있다.
보울을 찾는 사람들은 이 LA 명물의 역사를 사진과 책자와 TV 모니터에 상세히 기록해 전시하고 있는 보울 뮤지엄을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입장은 무료이다. 오는 9월21일에 끝나는 보울 시즌에 관한 문의는 (323)850-2000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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