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인 바스티유데이 퍼레이드에 참석한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 대한 저격사건은 서툴기는 하지만 그 상황이 영화 ‘자칼의 날’(The Day of Jackal·1973)의 라스트 신을 매우 닮아 흥미롭다.
이날 상오 9시55분 군대 오픈지프를 탄 시라크가 막 개선문 앞을 지나 샹-젤리제로 접근하는 순간 관중 속에 섞여 있던 막심 브뤼네리(25)가 들고 있던 기타 케이스에서 라이플을 꺼내들어 시라크를 향해 발사했다. 그러나 총알은 빗나갔고 브뤼네리는 옆에 있던 시민들과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조사 결과 학생인 브뤼네리는 네오-나치로 밝혀졌고 그가 사건 1주일전 산 라이플에는 다섯 발의 탄환이 장전돼 있었다.
사건 후 한 수사관의 말처럼 브뤼네리의 저격은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 상황은 명장 프레드 진네만(‘하이 눈’ ‘지상에서 영원으로’)이 만든 흥미진진한 정치 스릴러 ‘자칼의 날’의 드골 저격 미수사건을 방불케 한다.
OAS(비밀 군사조직)의 드골 암살시도를 그린 이 영화는 ‘제4의 의정서’ ‘오데사 파일’ 및 ‘전쟁의 개들’(이들은 모두 영화화 됐다) 같은 정치 및 액션 스릴러 전문작가인 영국인 프레데릭 포사이드가 1971년에 쓴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자칼’이라는 암호명을 지닌 주도면밀한 청부살인자의 드골 암살계획 작성과 목표물에 대한 접근 그리고 신출귀몰하는 자칼을 뒤쫓는 형사의 수사활동을 지적이면서도 긴장감 가득히 묘사한 뛰어난 작품이다(비디오 출시).
1960년대 초 드골의 알제리 독립 허용에 반감을 품은 전직 프랑스 군인들로 구성된 OAS가 드골 암살을 위해 뛰어는 지능의 영국인 냉혈 킬러 자칼(영국배우 에드워드 폭스의 매서운 연기가 일품이다)을 고용한다. 암살의 대가는 50만달러. D-데이는 바스티유데이.
철저히 자기 신분을 베일 속에 감춘 자칼은 영국신사이자 파리 잡듯 눈 하나 깜빡 안하고 살인하는 자다. 그는 또 변장에 뛰어나 수사 당국을 혼란에 빠뜨리는데 치밀한 암살계획을 짠 자칼은 이탈리아에서 제조된 특수 라이플과 위조여권을 가지고 프랑스로 잠입한 뒤 파리를 향해 다가간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자칼에 의해 가차없이 살해되고 드골 암살계획의 정보를 입수한 프랑스 경찰은 자칼을 추적하나 그가 원체 정체불명의 인간이어서 갈팡질팡한다.
바스티유데이.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가운데 드골(아드리앙 카일라-르그랑이 드골과 너무나 닮았다)이 전쟁 공로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나타난다. 다리를 하나 잃은 재향군인으로 변장한 자칼이 행사가 열리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창에서 드골을 향해 라이플을 겨냥하고 한발을 쏜다. 양 볼을 서로 마주 대는 프랑스식 인사 때문에 고개를 숙인 드골은 암살을 모면하고 자칼이 두번째 저격을 시도하려는 순간 경찰이 문을 박차고 들이닥친다. 지적 쾌감과 함께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1997년 브루스 윌리스와 리처드 기어 공연의 신판으로 만들어졌으나 볼품 없다.
그런데 자칼이라는 이름은 현재 파리의 라 상테 교도소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자칼’(52)로 인해 신출귀몰하는 킬러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막시스트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원하는 자칼의 본명은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 그는 1972년 뮌헨올림픽 이스라엘선수 숙소 기습사건과 1975년 비엔나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의장 난입 인질사건을 주도한 자다.
70~80년대 유럽을 무대로 83건의 살인과 은행강도와 폭파와 인질사건을 자행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법의 추적을 비웃던 대담한 킬러였다.
그런데 1994년 체포돼 지금까지 옥살이를 하고 있는 자칼의 프랑스인 변호사 이자벨 쿠탕-페르(48·사진)가 지난해 말 자신과 자칼이 사랑에 빠져 작년 9월에 약혼했으며 올해 교도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발표, 큰 화제가 됐었다. 쿠탕-페르는 “산체스는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며 우리를 떼어놓으려는 세력 때문에 사랑이 더 타오른다”고 말했었다.
두 사람이 과연 결혼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마치 영화 내용을 연상케 하는 테러리스트와 변호사의 사랑이 스릴 있고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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