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후반 조선말기 술과 여자와 그림으로 평생을 살았던 화가 오원 장승업(1843~1897) 의 삶을 그린 ‘취화선’은 영화라기보다 그림이라고 해야 할 작품이다. 올 칸영화제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감독상을 받은 임권택의 또 하나의 한국화로 영상미가 취토록 아름답다.
임감독(66)은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져있고 존경을 받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세계적 감독. 외국비평가들은 그를 ‘매스터’(거장)라 부르며 가장 한국을 잘 대표하는 감독으로 여긴다. 이것은 그가 한국적인 것에 애착을 갖고 그것을 여러 형태로 끊임없이 영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 ‘태백산맥’ ‘서편제’ ‘아제 아제 바라 아제’ ‘씨받이’ ‘길소뜸’ ‘만달라’ 및 ‘족보’ 그리고 ‘춘향뎐’과 ‘취화선’등이 모두 그런 영화들이다. 내 생각에는 칸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취화선’이라는 한 작품때문이 아니라 그간 임감독의 공로에 대해 상을 준 것 같다.
나는 지난해 ‘춘향뎐’홍보차 LA를 방문한 임감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한국영화계에 바람직한 것은 한국사람이 아니면 못 만들 영화가 많이 나와야하는것”이라고 말했었다. 나는 임감독의 집념을 존경하는 사람중 하나다. 그러나 내가 ‘취화선’을 보고 느낀 것은 그가 자신이 만든 형태의 틀에서 못 벗어나고 있구나하는 아쉬움이었다. ‘취화선’은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이야기 서술방식에서는 산만하기까지한 작품이다.
영화란 영상이야기 일진대 그림과 드라마가 좋은 조화를 이룰 때 잘 된 영화가 나오게 마련이다. ‘취화선’은 격조 높고 아름답고 즐길만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림이 드라마를 압도, 이야기를 듣고 본다기 보다 무슨 산수화나 인물화를 보는 기분이다.
이같은 불찰은 임감독(각본은 임감독과 도올 김용옥 공동집필)이 고약한 성질의 천재이자 광인같은 오원의 격렬한 인간드라마라는 큰 줄기를 소홀히하고 그의 재주와 주정과 호색 그리고 과격한 행동 등 지엽적인것에 매달린 탓이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임감독은 그의 오랜 콤비인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유려한 춘하추동 산수화를 스크린화폭에 담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일관성과 유연성을 잃고 있어 이 관광객이 휴가때 찍은 풍경사진같은 장면들은 드라마를 뒤에서 받쳐 준다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훼방하고 있다.
정일성의 그림이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나 그의 화법은 임감독의 과거 여러 영화에서 보았던 것들이다. ‘취화선’의 촬영은 자연풍경은 ‘서편제’, 가옥이나 마당장면은 ‘춘향뎐’에서 익히 본것. 임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오원에 심취해 영화연출자가 아니라 화가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취화선’은 오원의 어린시절부터 그의 의문에 싸인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격변하는 조선말기의 역사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오원은 술과 여자와 흥이 없으면 그림 그리기를 마다한 괴팍한 성질(뛰어난 예술가들이란 다 그렇지만)의 사람으로 부와 권력을 거부해 어명(고종)마저 무시한 배짱 좋은 환쟁이었다. 또 예술과 술과 여자란 불가분의 관계여서 호주가에다 호색한인 오원의 주정과 함께 그와 관계한 기생들이 여럿 묘사된다(갈대밭 섹스신은 작의가 너무 짙다).
이 얼마나 흥미있는 인간인가. 그런데도 영화는 오원의 삶이라는 큰 줄기를 놓치고 그의 그림 솜씨와 주정과 여자들을 에피소드식으로 반복 묘사, 드라마가 이런 것들에 의해 쪼개지고 무기력해지면서 희생당하고 있다. 술 마시고 주정하고 그림 그리고 기생하고 정을 풀고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계속 보자니 물린다(이 기생 저 기생들이 나와 매향이가 진홍이 같고 진홍이가 향란이 같이 혼란스럽다.)
또 회상식으로 전개되는 얘기에서 너무나 많은 인물들이 특별한 이유도없이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것도 드라마의 흐름에 큰 방해가 된다. 오원으로는 삼삼한 비극적 사랑얘기 ‘파이란’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최민식이 나오는데 그저 무던한 연기. 한국관객들이 섹스를 좋아해 쓸데없이 격렬한 섹스신을 집어넣은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겠지만 보는 사람 당황케 한다. 대취한 오원은 자기 한계를 벗어나려고 “달라지고싶다”고 주정을 한다. 임감독도 달라지기를 바란다. 8월8일까지 그랜드 극장 (345 S.피게로아)서 상영한다. (213)-48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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