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정태수 특파원> 첫판 폴란드전 쾌승으로 한국이 이번만은 조마조마한 묘수풀이 없이 16강에 합류하는가 했으나 또 그 덫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승1무로 여전히 D조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으로선 포르투갈과의 3차전을 비기기만 해도 되는 겉보기상 유리한 고지에 있으나 객관적 전력으로 보나 첫판 부진을 딛고 우승후보다운 막강 화력을 내보이기 시작한 포르투갈의 위용으로 보나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다.
미국이 포르투갈을 잡아버린 것, 한국이 미국을 잡지 못한 것, 포르투갈이 폴란드를 크게 이겨버린 것, 이 세 가지 모두 월드컵 본선데뷔 48년만에 첫승 문을 연 여세를 몰아 16강 대문까지 활짝 열기 위해 발버둥친 한국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제 한국은 최선을 다해 포르투갈전에서 무승부 이상 선전으로 막판 자력진출을 확정짓거나 폴란드가 미국을 잡아줘야 한다.
다음은 한-포르투갈전 결과에 따른 한국의 16강행 가능성.
▲한국 승리=미-폴란드전 결과에 관계없이 한국 16강 확정. 미국도 승리할 경우 한국은 골득실차 등을 따져 미국과 조 1, 2위 판가름. 미국은 폴란드전 무승부라도 2위로 16강에 진출.
▲한국 패배=포르투갈 2승으로 16강 확정. 만일 미국이 폴란드에 지면 한국은 미국과 똑같이 1승1무1패가 돼 골득실차로 2위 합류 가능. 그러나 미국이 폴란드전에서 무승부 이상 거두면 한국은 미국(1승2무 또는 2승1무)에 이어 3위가 돼 탈락.
▲무승부=한국의 16강 진출. 미국이 폴란드를 이기면 미국 1위 한국 2위, 미-폴란드전도 무승부가 되면 골득실차로 한국 1위 미국 2위를 차지한다. 미국이 3차전을 놓치면 한국 1위가 확정되는 가운데 포르투갈이 골득실차로 미국을 제치고 2위.
한국으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한국을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월드컵에서 네덜란드팀을 이끌고 크게 이겨본 팀이기에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한국팀을 맡았고 한국인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과거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 5번이나 진출하고도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나는 여기에 마침표를 찍고 싶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내게 질문한다. “과연 월드컵 16강에 오를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예스’라고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다. 승부의 세계서 확실한 것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한국팀의 첫 인상은 충격적이었다. 전력을 떠나 한국 선수들의 열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따라줬고 한결같이 착하고 순수했다.
유럽의 탑 클래스 선수들은 프로라는 의식이 있을 뿐 하나의 팀으로서, 아니 한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사명감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월드컵이란 무대를 몸값 높이기 수단으로 여기는 선수들도 많이 봤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월드컵 그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무대에서 뛰기 위해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왔다. 이점에서 한국 선수들은 세계 어느 나라 선수들보다 우월하다. 이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으며 내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대단히 사랑한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월드컵에서 16강에 가고 못 가는 일을 떠나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강력한 한국팀이 돼 있을 것이다. 지금의 전력을 더욱 갈고 다듬어서 6월에 있을 본무대에서 모두 폭발시킬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낮은 전력의 팀들을 격파하면서 얻는 값싼 승리가 아니다. 그런 길을 택했다면 한국인들은 승리로 열광하겠지만 결국 자기기만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월드컵에서의 승리는 내가 원하고 또 한국이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이번 월드컵 만 위해 뛰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강팀으로 가는 길에 작은 기여를 하고 싶다.
과거의 한국 축구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변방의 소속팀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속한 나라이며 내가 이끌고 있는 우리나라이다. 비록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그 문화의 차이가 다르지만 내가 선택한 나라이며 또한 가능성이 있는 나라이다.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16강이 나의 바람이 아니다. 내게는 그 이상의 바람이 있다. 만약 6월을 끝으로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될 지라도 소중한 추억으로서의 한국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그것이 영광스러운 이별이 될 수도, 불명예스러운 퇴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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