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희씨네 가족은 한달이면 2~3회, 주로 늦은 밤시간에 네식구가 모두 함께 마켓으로 출동한다. 마켓에 들어서면 엄마는 남편(정공필 남가주초대교회 담임목사), 딸 엘렌(13), 아들 조나단(11)에게 쿠폰들을 분배해주고, 쿠폰을 받아든 식구들은 각자 맡은 ‘구역’으로 좍 흩어져 장보기를 시작한다.
아빠는 주로 치약, 휴지등 생활용품 칸으로, 아들은 과자등 간식류의 칸으로, 딸은 음식과 식품등의 칸으로 흩어지고 엄마는 그날 장보기에 포함돼야할 쿠폰을 정리하고 나눠주며 총지휘하는 일을 맡는다. 이 시간은 모처럼 가족이 한데 뭉치는 시간. 쇼핑도 하고 신상품 구경도 하고 대화도 나누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정씨네가 쿠폰 애호가정이 된 것은 10년전부터. 전에도 쿠폰을 쓰긴 했지만 그저 남들 쓰는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폭동후 심각한 재정난으로 살림이 쪼들리자 절약할 곳은 생활비 밖에 없어 본격적으로 쿠폰을 모으게 됐다. 둘째 아기 기저귀 값을 아끼기 위해 시작한 쿠폰 세이빙이 해를 거듭할수록 수많은 연구와 경험, 실전을 통한 노하우가 늘어 지금은 자타가 인정하는 전문가가 된 것이다.
사실 알고 나면 간단한 것 같지만 쿠폰으로 한번에 몇십달러씩 절약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벌써 10년째 해온 정씨도 한 주에 적어도 1시간은 쿠폰정리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머리도 많이 써야 한다. 유효기간이 빠듯한 것과 넉넉한 것을 가려서 사용하는 지혜는 물론, 물건 가격들을 대충 꿰뚫고 있어야 정말 싼 건지 싼 척 하는 건지 알 수 있다.
그녀에게는 12개의 비닐 쿠폰백이 있는데 종류별로 쿠폰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그 종류들을 참고로 소개해보면 ▲커피, 빵 ▲냉동음식 ▲냉장식품 ▲캔푸드 ▲음료수 ▲면종류, 밀가루 ▲소스와 드레싱 ▲간식 ▲생활용품 ▲약, 필수품 ▲식당 기타 ▲기타 등이다.
또 대형할인매장인 ‘코스코’(Costco)의 회원인 정씨네는 코스코에서의 대량구입과 신문 쿠폰의 할인구매중 어느 쪽이 더 싼지도 이제는 거의 다 파악하고 있어서 아무리 마켓 쿠폰이 많이 나와도 코스코에서 사는 품목(우유, 계란, 빵, 배터리, 냉동 치킨 너겟등)이 있고, 아무리 코스코 가격이 싸다고 해도 마켓 쿠폰을 이용하는 품목이 따로 있다.
쿠폰이나 세일 좋아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돈 절약한다고 쓸 데 없는 것까지 잔뜩 사는 것인데 그런 일은 ‘초보’ 때나 있는 일이라는 정씨는 그러나 샴푸나 치약, 칫솔등의 품목은 미리 사놓아도 상하지 않는 품목이므로 아주 싼 가격일 때 사두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틈만 나면 쿠폰의 혜택을 강조하고 시간까지 내서 방법을 가르쳐주지만 자신들처럼 열심히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대부분 귀찮아서, 막상 마켓 보러 나올때 잊어버리고 안 갖고 와서, 그까짓 것 1~2달러 절약하려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지...등등 이유도 많지만 얼마나 세이브 되는지 쿠폰의 진가를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는 것이다.
정씨가 계산할 땐 워낙 쿠폰이 많아 캐시어 뒤에 늘어선 사람들중 짜증스런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쿠폰 잘 쓰기로 유명한 미국인들도 그처럼 많이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 그러나 아무리 짜증스러워하던 사람도 일단 영수증에서 돈 빠져나가는 걸 보게되면 눈이 두배는 커지면서 경이의 눈길을 보낸다고 정씨는 흡족해했다.
그러나 쿠폰 사용의 진짜 좋은 점은 자녀교육이다. 남편 정공필 목사는 아이들이 절약정신을 철저히 배우고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수확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참 미안하고 안 된 마음이 많았습니다. 철모르고 어린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떼를 써도 쿠폰이 없으면 간식을 일체 사주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참는 것과 절제하는 것을 배우고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는 것을 보게 되니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쿠폰이 있어야만 사주는 것으로 알고 자란 아이들은 항상 "엄마 쿠폰 나오면 저 쿠키 사줘"라고 말하는 것을 당연하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쿠폰으로 얼마나 많은 돈이 절약되는지를 직접 보고 자란 아이들이 돈을 함부로 쓸리는 만무, 딸 엘렌은 백화점에 가도 신제품 매장은 쳐다보지도 않고 할인품목이 있는 곳으로 직행하곤 한다고 정씨 부부는 기특해했다.
3년전까지만 해도 일부러 일요일자 LA타임스를 구입해 쿠폰을 챙겼는데 본보가 구독자에게 무료 배부 시스템을 시작한 이후로는 한층 편해졌다는 정씨부부는 "한국일보를 가장 열심히 보고 알뜰하게 활용하는 가정"이라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글 정숙희 기자·사진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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