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명장 아키라 쿠로사와의 생애를 담은 2편의 기록영화와 그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라쇼몬’이 DVD로 출시되고 또 PBS-TV를 통해 방영되면서 뒤늦게 이 ‘황제’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1998년 9월6일 88세로 사망한 쿠로사와는 일본 전후 감독의 1인자로서 생전 눈부신 영상미와 혁신적인 스타일을 끊임없이 추구했던 거장이었다.
흔히 사무라이 영화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쿠로사와는 이것들 못지 않게 영혼의 각성과 자아의 의미를 찾는 인간 드라마를 많이 만들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실존적 인도주의자였다. ‘길 잃은 개’(1949)와 ‘이키루’(1952) 그리고 ‘악인은 편안히 잔다’(1960)와 ‘상과 하’(1963) 등은 모두 이런 작품들이다.
또 서양문학에 통달했던 쿠로사와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리어왕’을 ‘피의 옥좌’(1957)와 ‘란’(1985)이라는 사무라이 영화로 만들었다. 이 두 영화는 동서예술의 혼합의 극치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웨스턴의 거장 존 포드와 친구였는데 쿠로사와의 사무라이 영화의 작품 구성과 인물 묘사에서 포드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서부영화의 영향을 받은 쿠로사와의 사무라이 영화는 후에 미국으로 역수입돼 다시 서부영화로 탈바꿈한다.
3시간반짜리 걸작 ‘7인의 사무라이’(1954)는 율 브린너와 스티브 매퀸이 나온 ‘황야의 7인’(1960)으로 ‘요짐보’(1961)는 스파게티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1964)로 또 ‘숨겨진 성채’(1958)는 우주 웨스턴 ‘스타 워즈’(1977)로 재생됐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화가가 되려다 우연히 영화계로 들어간 쿠로사와의 작품이 영상미가 뛰어나고 구성이 완벽한 것은 그의 그림 재주 탓. 그는 영화를 만들 때 히치코크처럼 모든 장면들을 사전 그림으로 그렸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얘기를 중요시했다.
쿠로사와는 병적일 정도로 완벽주의자인데다 권위적이어서 주위로부터 ‘황제’라 불렸다. 결국 이런 완벽성과 돈과 시간이 모두 막대하게 소요되는 역사극 감독이라는 이유로 그는 일본 메이저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아 1960년대 후반부터 작품활동이 뜸해졌었다. 그의 또다른 걸작 사무라이극 ‘카게무샤’(1980)도 조지 루카스와 프랜시스 코폴라가 총 제작자로 나서서야 빛을 볼 수 있었다.
쿠로사와라는 이름과 일본 영화를 서양 세계에 알려준 계기가 된 영화는 그의 심리 도덕극 ‘라쇼몬’(Rashomon·1950·사진)이다. 이 영화가 베니스영화제서 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오스카상까지 받으면서 미국과 유럽에 일본 영화의 물결이 도래하게 된다.
쿠로사와의 영화에 17편이나 출연한 토시로 미후네(1997년 사망)가 주연한 ‘라쇼몬’은 한 사건을 네 사람의 각기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한 사실과 진실의 정체를 파헤친 불후의 명작이다. 세월을 초월한 보편 타당성을 지닌 시대 역사극이자 법정 드라마이기도 한데 내용뿐 아니라 미후네의 원기 왕성한 연기와 빛과 그림자를 절묘하니 사용한 흑백 촬영 등 여러 면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영화다.
시대는 8세기지만 현대적 시각으로 노출되는 얘기는(일본의 권위 있는 신인 작가상인 아쿠타가와 상의 류노스케 아쿠타가와의 글이 원작) 관헌에 끌려온 살인용의자인 산도둑과 그에 의해 살해된 무사(죽은 자의 혼이 무당을 통해 말한다)와 무사의 아내 및 목격자 나무꾼 등의 진술에 의해 플래시백으로 진행된다.
무사와 그의 고혹적으로 아름다운 아내(마치코 쿄)가 녹음 무성한 산길을 가다 상체를 벗어제친 혈기 넘치는 산도둑(미후네)을 만나면서 무사와 산도둑간에 결투가 벌어진다. 무사는 살해되고 그의 아내는 산도둑에게 겁탈을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사건을 놓고 네명의 진술이 각기 달라 결코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데 이 영화 이후 ‘라쇼몬’이라는 말은 한 가지 사실을 놓고 각기 다른 관점에서 얘기를 한다는 것의 동의어가 되었다. 세계 고전 걸작들을 디지털로 재생해 출시하는 크라이티리언 콜렉션(Criterion Collection)은 최근 영상과 음향이 복원된 ‘라쇼몬’의 DVD(40달러)를 내놓았다.
또 웰스프링(Wellspring)에서는 기록영화 ‘쿠로사와’(Kurosawa)를 DVD(35달러)와 VHS(25달러)로 함께 출시했다. 여기에는 지금 70대인 마치코 쿄와 제임스 코번 및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과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쿠로사와의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데 좋은 명품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