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1,480만달러. 이 기가 막힌 숫자는 3일 전미국서 개봉된 ‘스파이더 맨’(사진)이 주말 사흘간 벌어들인 액수다. 할리웃 사상 한 영화가 개봉주말 사흘간 1억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주말 사흘간 무려 2,000만명의 미국인들이 이 영화를 보러간 것.
’스파이더 맨’의 신기록은 앞으로 스튜디오들에게 압력을 가해 이들로 하여금 단시일 내 거액을 거둬들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영화 제작에 박차를 가하게 만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프랜차이즈’ 영화는 빅 스타가 나오는 대규모 예산을 들인 특수 효과와 액션 위주의 이벤트 영화와 속편들을 일컫는 말. 맥도널드가 천지사방에 분점을 설치하는 영업형태와 마찬가지다.
또 ‘스파이더 맨’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앞으로 할리웃의 가장 큰 대목인 여름장(1년 총수입의 40%)의 개시일은 5월 첫 주말로 확정이 된 셈이다. 통상 할리웃 여름장은 방학이 시작되는 5월 마지막 주말 베테런스 데이 연휴부터 방학이 끝나는 9월 첫 주말 노동절 연휴까지로 수년 전만 해도 영화사들은 빅히트 예상작을 5월 마지막 주말에 내놓았었다.
그러나 1997년 WB가 이벤트 영화인 ‘트위스터’를 경쟁이 약한 5월 둘째 주말에 개봉한데 이어 ‘디프 임팩’(1998), ‘미라’(1999), ‘검투사’(2000) 및 ‘돌아온 미라’(2001) 등이 모두 5월 첫 주말에 선을 보이면서 할리웃 여름장 개막일은 점점 빨라지는 추세를 보여왔다.
’스파이더 맨’이 흥행 신기록을 낸 데는 메가플렉스의 공이 크다. 1990년대 후반부터 극장주들은 한 건물에 14~30개짜리 스크린을 짓고 이벤트 영화를 동시에 5~6개 스크린에서 돌리고 있다. ‘스파이더 맨’은 전국 7,500개 스크린서 동시 개봉됐는데 LA 3가와 페어팩스 인근에 신설된 그로브 메가플렉스 경우 현재 14개 스크린 중 5개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30분 간격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한 건물에서 한 영화가 21번이나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스파이더 맨’의 성공에는 또 스튜디오들의 엄청난 마케팅 작전도 한몫을 했다. 제작비 1억2,000만달러짜리 영화에 5,000만달러의 마케팅비를 투입, 이 영화를 ‘안 보면 안 될’ 영화로 만들어 놓았다.
만화가 원전인 ‘스파이더 맨’의 흥행 성공으로 할리웃은 앞으로 같은 종류의 영화를 양산해 낼 것이 틀림없다. 지난 3월에 나온 ‘블레이드 II’는 지금까지 총 8,000만달러를 벌어 만화가 원작인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예고한 바 있다.
’스파이더 맨’ 속편은 내년 1월 제작에 들어가 2004년에 개봉될 예정이고 ‘와호장룡’의 앙 리 감독은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현재 ‘헐크’를 찍고 있다. 내년에 개봉될 또 다른 이런 영화로는 벤 애플렉 주연의 ‘데어데블’(2월 개봉)과 ‘X-멘 2’(5월 개봉)가 있다. 이밖에도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고스트 라이더’와 ‘퍼니셔’ 및 ‘수퍼맨’과 ‘뱃맨’ 등도 다시 만들어질 계획이다.
나는 지난 주말 2,000만명의 미국인들이 ‘스파이더 맨’을 봤다는 사실에 대해 지금 씁쓸한 느낌을 갖고 있다. 미 전체 인구의 7.4%가 어수선한 액션영화 하나를 보려고 극장엘 찾아가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의 전체 국민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돈을 썼다는 것이 도무지 찜찜하다.
내가 본 ‘스파이더 맨’은 별 재미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군중의 떼거리 심리가 내겐 더욱 탐탁치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는 특수효과 액션영화치고는 비평가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영화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나와 내 여동생 그리고 타임지의 리처드 콜리스 등. LA 타임스의 케니 투란은 이번에도 평소처럼 신중한 평을 했지만 부정적 의견이 보다 두드러졌다.
’스파이더 맨’은 틴에이저들에게나 적당할 영화다. 그런데 지난 주말 관객을 조사해 본 결과 25세 이상의 관객과 그 이하의 관객의 수가 각기 반씩으로 나타났다. 철든 어른들도 많이 봤다는 얘기다.
영화는 오락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고 있다. 그런데 미 영화관람객의 주류를 12~17세 층이 차지하면서 할리웃은 이들의 구미에 맞는 무지막지한 액션영화와 넌센스 섹스 코미디를 양산하고 있다. 인디영화와 외국영화 및 예술성 있는 영화들은 상영 극장조차 제대로 못 찾고 있는 게 미국영화계의 실상이다. 그러니까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들 영화 정크 푸드에 중독이 됐다. ‘스파이더 맨’의 인기도 이 같은 현상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고 해서 정크 푸드가 구르메이 푸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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