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을 나서면 바로 작은 들판이 있고 그 들판을 가로질러가면 냇물과 방천(뚝)이 있으며 냇물을 건너면 해가 뜨고 달이 뜨는 앞 산이 있는 그런 곳에서 성장한 나는 항상 온 몸으로 바람을 받으며 지내왔다.
그 매섭고 살을 에이던 북풍설한풍, 곡식이 텅 빈 추수한 뒤 들판의 쓸쓸하던 가을바람. 여럼철의 장마를 몰고 오던 비 바람, 그리고 아 잊을수 없이 나긋한 봄바람. 어머니처럼 부드럽고 누나처럼 다정하던 그 봄바람은 미풍으로 오는 것이 특징이다. 연한 보리밭 이랑을 초록물결로 한없이 출렁이게 하고 강뚝의 細草와 집 뒤의 붉은 복사꽃과 어울려 들판의 원색을 유감없이 내 마음 속에 색칠하던 그 봄바람 물든 들판을 차마 잊을리야.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봄이와도 봄같지 않다는 말을 알게되고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마음속에도 바람이 분다(心風)는 부처님의 가르침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이 마음 속의 바람이란 무엇인가 우선 이익 되고 손해보는 것이 우리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는 바람으로 다가온다. 이 바람은 황사의 먼지 바람과 같이 무수한 번뇌라는 먼지를 일으켜 자욱한 어두움이 되어 우리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기 일쑤다. 이익이 되는 것만큼 우리를 솔깃하게 유혹하는 것은 없다. 뇌물을 어떻게 뿌리친다는 말인가. 우선 받아 챙기고 볼 일이다.
우정도 형제도 돈 앞에서는 순위가 뒤로 밀리게 마련이다. 또한 나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처럼 화가 나고 상심되게 하는 일이 또 있겠는가. 나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두고두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적개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헐뜯고 욕하는 말은 나의 마음을 또한 얼마나 뒤흔들어 놓는 바람인 것인가. 혹시나 맹수와 같이 사나운 마음이 되어 분노하고 따지고 투쟁하는 마음이 되지는 않는가… 나에게 아첨하고 칭찬하고 호의적인 사람은 또한 훈풍이 되어 얼마나 나의 마음에 파도를 일렁이게 하는가. 고생스러운 것을 피하고 즐겁고 편안한 것을 찾는 마음은 끈질긴 바람이 되어 시도 때도 없이 우리 마음을 뒤집어 놓기는 마찬가지다.
離苦得樂(이고득락)이라 괴로운 것을 멀리 잊어버리고 즐거움을 얻자는 것을 인생살이의 목표로 삼는 지경이 될 정도로 이 바람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인 모양이다. 바람이 불면 먼지가 따라 일어나 듯이 마음이 움직이는 즉시 번뇌가 따르는 것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마음은 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用心) 필연적인 것이라면 번뇌 또한 피할 수 없는 인생사이고 번뇌의 짝인 괴로움과 고통은 항상 우리 곁에 붙어 있는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것을 이름하여 풍진세상이라고 일컫는 것이니 죽음과 더불어 겨우 면하게 되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孔子는 스스로 고백하기를 그가 40代에 이르러 바람과 먼지를 잠재웠다고 하니(不惑) 대단한 일이라 할 것이며 이것을 본받아 우리도 40代를 불혹의 나이라고는 하나 바람을 잠재우기는 참으로 소망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마음의 바람도 잠재우지 못한 차원의 사람들이 진리를 안다고 떠 벌이는 것은 우리를 웃기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바람(유혹)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질때라야 하늘의 뜻을 짐작하기 시작 하는 지혜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知天命) 바람은 그칠 날이 없음으로 우리의 삶은 바람앞에 서 있는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우리는 어떻게 바람에 넘어가지 않고 나아가서는 흔들리지도 않아 풍파없는 삶을 살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일 일만을 염두에 두고 전문적으로 찾아 나선 이들이 수도자들이다.
이 풍진 세상을 잊어버린 수도자들의 삶은 그러므로 경이롭고 성스럽고 존경스럽다. 우리가 그 분들을 우러르고 따르는 이유가 바로 이점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풍진 세상 속에서 풍진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점을 민망하고 안타깝게 여긴 선각자들은 반도인(1/2 도인)이 될 것을 우선 권하고 있다. 성난 파도나 미친 파도가 아닌 보리밭이랑의 초록 물결같은 잔잔한 파도나 겪으면서 살으라는 부탁인 것이다. 정말로 이 정도의 풍진세상이라면 한 세상 살고 가는데 무슨 애로가 특별히 있다고 할 것인가.
1/2도인은 우선 남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확실히 물리친 사람을 가리켜하는 말이다. 자기와 남을 비교하는 마음을 비웠다는 것이다. 뭣 한다고 짧은 한 평생을 남과 비교해서 속을 끓인다는 말인가. 나는 다만 나의 고유한 업 때문에 태어나서(業來) 그 업력으로 살다가(業生) 또 잔뜩 한 짐되게 업을 짊어지고 죽는 것이고(業法), 또 이 짊어지고 가는 업 때문에 다시 生死와 法來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업이 다르기 때문에 고유하게 태어나고 필연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살게 마련인 것인데(異生) 남의 삶을 나와 비교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얼마나 어리석고 허망한 짓인가.
남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뚝 잘라내 버리고 봄바람을 맞이하여 가슴을 한껏 펴듯이, 바람 앞에 맞서서 가슴을 펴고 이 풍진 세상을 한번 가늠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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