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나는 고교졸업 후 한때 가톨릭에 관심을 가졌었다. 당시 나는 가톨릭을 금욕과 금기의 종교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 대해 로맨틱한 매력을 느꼈었다.
내가 제수이트계인 S대학엘 들어간 데는 나의 이런 애매한 종교관이 어느 정도 작용을 했었다. 헤세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엄격한 규율의 준수를 요구하는 학교에서 신부들로부터 철학과 영어를 배우면서 마치 헤세의 글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약간 초조한 환희감을 즐겼었다. 아름다운 나의 청춘이었다.
어느 날 종교에 관해 가르쳐주겠다는 신부방엘 들렀다. 그런데 내 기대와 달리 그 시간은 비신자를 가톨릭신자로 만들기 위한 요리문답 강의시간이었다. 한창 지식에 갈급하던 나는 그것이라도 배우고파 강의에 꾸준히 참석했다.
사실 나는 그때 이미 미카엘이라는 본명까지 정해 놓고 영세를 받을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순간에 신부방 출입을 중단했다. 평생 죄를 지으면서 살 나로서는 일생동안 고백성사를 하면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릴 것이 너무나 짐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헤세가 신학교 입학 7개월만에 자퇴했듯이 대입 반년만에 자퇴하고 다른 학교로 옮겼다. 내가 제수이트 대학서 사귄 친구가 지금 LA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C다. 자상한 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음악과 문학과 역사 등 여러 면에서 귀중한 영향을 미쳐 나는 늘 그와 나와의 관계를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지성과 사랑’)의 그것으로 여기며 아끼고 있다.
보통 사람이 신자가 되는 것도 이렇게 힘드는데 보통 사람이 신의 종이 되는 것이야말로 신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우리반 영어를 가르치던 카빌 예비신부는 그 뒤로 환속했다는 소식이고 대학 총장 킬로런 신부는 제자와 결혼해 큰 화제가 됐었다. 그들에게서 영적인 것과 속세적인 것의 갈등의 현재를 보는 것 같다.
요즘 미 가톨릭계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도 종교적 삶과 세상적 삶의 혼돈이 낳은 소산이다. 나는 신부들의 사건을 보면서 앙드레 지드의 짧은 글 ‘전원 교향곡’을 생각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둔 목사가 데려다 키운 눈먼 소녀 거투르드를 사랑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비극인데 이 비극도 영혼의 삶과 세속의 삶의 혼란에서 빚어진 것. 영혼의 눈이 먼 목사는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구원한다는 명분 하에 자신의 세속적 사랑을 예수의 사랑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목사의 고백론식의 이 글은 1946년 신비롭게 아름다운 프 랑스 여배우 미셸 모르강 주 연의 영화(‘La Symphonie Pastorale’·사진)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기독교적 도덕률과 육체적 욕망(동성애)의 갈등 때문에 번민하며 살았던 지드의 또 다른 글 ‘좁은 문’도 종교적 이상과 인간적 행복의 충돌이 빚어낸 비극을 다룬 이야기다. 알리사는 사촌 제롬을 깊이 사랑하면서도 신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과 제롬의 사랑을 모두 거부한다.
그러나 알리사의 자기 거절과 금욕이야말로 이기적 집념에 지나지 않으며 그녀는 성경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 결국 비극을 맞게 된다.
나는 고등학생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제롬이 너무 불쌍해 그를 크게 동병상련했었다. 그리고 알리사의 이기적 마음이 어찌나 가증스러운지 읽던 책을 내동댕이치고픈 충동을 느꼈었다. 그때 알리사가 내 앞에 나타났었더라면 뺨이라도 때려 주었을 것이다.
성직자들의 육욕탐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톨릭을 풍자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도 신부와 수녀들의 성욕의 방종이 거의 다크 코미디식으로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요즘 신부들의 성추행 경우 대부분 동성애적 행위로 신부들의 남아 성추행을 다룬 뛰어난 드라마로 ‘세인트 빈센트의 소년들’(1994)이라는 캐나다 작품이 있다. 캐나다서 있었던 실화를 다룬 TV 드라마로 가톨릭 교단의 고아원서 발생한 신부들의 남아 성추행을 사실적으로 그린 명작이다.
‘신부’(1994)라는 영국 영화는 동성애자 신부인 그레그가 인간적 사랑과 신에 대한 약속 사이에서 방황하며 몸부림치는 드라마. 개인적 기호와 교회의 정치성을 매섭게 파헤친 감동적 작품으로 그레그 신부가 벽에 걸린 마리아상을 보고 회의하고 항의하고 애원하는 모습이 처절하고 가련하다. 신의 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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