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셋째 언니로부터 4월중 잠깐 놀러오겠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여행을 계획했다. 언니는 재수하던 큰딸이 대학에 입학하자 스트레스도 풀 겸, 오랜만에 이곳 자매들도 만나볼 겸, 형부와 아이들로부터 특별휴가를 받아낸 것이었다. 미국은 이번이 세 번째지만 여행사 패키지 관광밖에는 가보지 못했던 언니를 위해 나는 좀 특별한 여행을 선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여행에 둘째 언니도 동참할 의사를 전해왔다.
미국에 30년을 살면서도 비즈니스만 하느라 여행다운 여행을 못했던 둘째 언니는 가게를 막내 동생이 맡아주겠다고 하자 큰 맘 먹고 나선 것이다. 나 또한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남편과 아들의 눈치를 보면서 반찬을 잔뜩 마련해 놓고서야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단 며칠인데, 가정과 일 가진 여성들이 여행에 나서기란 왜 이리도 복잡한 것일까. 한국과 미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여섯 자매중 둘째(정은자), 셋째(정복자), 다섯째(정숙희)가 함께 떠난 여행. 비슷한 길 떠남을 그려보는 사람들을 위해 그 준비와 경비, 일정을 기록한다.
<글·사진 정숙희 기자>
<준비>
세사람 모두에게 잊지못할 추억이 될 ‘감동의 여행’을 연출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 한가지 원칙을 세웠다. "언니들 뿐 아니라 나도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확실하게 스트레스 풀고 오는 여행을 하겠다"는 것. 이 원칙 아래 3박4일 일정으로 ▲내가 운전하며 다닐 수 있는 거리 ▲다녀본 곳 중 유난히 좋았던 곳 ▲한국서 오는 사람이 흔히 가지 않는 곳 ▲미국의 산과 바다를 다 볼 수 있는 관광지 ▲중간중간 쇼핑과 음식도 즐길 수 있는 일정을 염두에 두고, 너무 궁색하지 않으면서 시간상으로도 무리되지 않을 스케줄을 만들었다.
그 결과, 경치로는 따라갈 데가 없는 1번 서해안 도로를 따라 북상, 산타바바라를 거쳐 시카모어 온천, 빅서, 카멜과 세븐틴 마일을 지나 세코이아 국립공원을 돌아 내려옴으로써 산과 바다, 계곡과 온천까지 즐기고 오는 여행지도를 만들었다. 숙박지는 한달전에 예약했고, 한국음식과 미국음식을 고루 먹을 수 있도록 식사 스케줄도 대강 짜두었다. 하루 운전거리와 시간을 지형에 따라 계산해두는 한편 지역정보및 호텔 디렉션등 관련자료를 뽑아놓고, 지도에 우리가 지나갈 하이웨이를 따라 붉은 색 마커로 표시해 한 묶음의 자료를 만들었다.
<일정>
■첫날(4월6일)-LA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전 10시에 출발, 101 프리웨이를 타고 북상했다. 11시30분께 산타바바라에 도착, 예쁜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스테이트 스트릿을 구경하며 쇼핑. 토요일 낮이어선지 번화가와 바닷가 피어는 방문객들로 다소 붐비는 모습이다. 피어에 있는 ‘모비 딕’(Moby Dick) 레스토랑에서 새우요리, 게요리, 파스타를 시켜 먹었다. 유리창 전면으로 펼쳐지는 해변 경치가 일품인 이 식당은 클램 차우더 수프와 해산물 요리가 유명한 곳.
식사후 1번 하이웨이를 따라 북상, 4시반쯤 이날 숙박지인 ‘시카모어 미네랄 스프링스 리조트’(Sycamore Mineral Springs Resort)에 도착했다. 아빌라 비치에 인근한 이 온천휴양지는 각 룸마다 뜨거운 온천물이 나오는 자꾸지가 설치돼있어 일행끼리만 온천욕을 실컷 즐길 수 있는 곳. 때문에 방 가격이 133~323달러로 다소 비싼 편인데도 예약이 두달전 동날 정도로 인기다. 유황냄새가 풀풀 나는 온천욕을 이날 두 차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첫날 총 운전거리는 약 200마일, 운전시간은 4시간 정도.
■둘째 날(4월7일)-서머타임 시작으로 한시간 손해본 날. 아침부터 또 한차례 온천을 가볍게 하고 호텔내 ‘가든스 오브 아빌라’ 식당에서 아침식사한 후 첵아웃했다. 다음 목적지 카멜(Carmel by the Sea)까지는 약 170마일. 거리상으로는 3시간도 안 걸릴 것 같지만 해안선 절벽을 굽이굽이 따라 돌아가는 길이라 속력내기 힘들어 4시간은 잡아야 한다. 1번 도로의 비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길목마다, 산등성마다, 연록색 신록과 화사한 봄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계절의 여왕’에 여행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 길을 몇번 여행하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빅서(Big Sur) 주립공원에 처음으로 들렀다. 절경을 자랑하는 빅서의 숲과 계곡은 싱그러운 바람을 살살 불어대며 세 여자를 차 밖으로 불러낸다. 한가롭기 그지없는 숲길을 따라 한 20분 천천히 걷다보니 언니들이 ‘옛날 정릉 같다’는 계곡에 다다르고 바위에 올라앉으니 선녀(?)가 따로 없다.
3시반께 카멜시에 도착 ‘그린 랜턴 인’(Green Lantern Inn)에 들었다. 이곳은 내가 17년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카멜시장선거 출마때 취재와서 묵었던 아담한 B&B(베드 앤 브렉퍼스트)로 각 방이 독립 건물로 지어져 있고 내부는 유럽의 가정집 같이 예쁘게 꾸민 것이 특징. 짐을 풀자마자 구경에 나섰다. 카멜 특유의 그림엽서처럼 예쁜 상점들이 골목골목 줄 이어 손님들을 맞고, 언니들은 즐거운 쇼핑 시간. 이것저것을 사서 차 트렁크를 계속 채운다. 북가주까지 와서 와인을 안 마실 수야 있나. 인근 마켓에서 괜찮다고 추천한 레드 와인 한병을 사다 식사후 언니들과 수다를 안주 삼아 한잔씩 마신다.
■셋째 날(4월8일)-숙소에서 제공하는 콘티넨탈 브렉퍼스트로 식사를 마치고 세븐틴 마일을 돌았다. 바닷가를 끼고 만들어진 골프 코스가 유명한 17마일 드라이브 코스는 이날 흐리고 추운 날씨 탓에 썰렁한 경치. 대충 둘러보고는 일찌감치 세코이아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카멜에서 세코이아로 가는 길은 순전히 지도에 의존해 1번 N→68번 N→156번 E→152번 E→99번 S→180번 E로 정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 애를 먹었다. 로컬과 하이웨이가 계속 섞이면서 표지판이 충분치 않아 놓쳤다가 다시 돌아가기를 서너번, 5시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6시간 걸려서야 도착했다(약 240마일).
아름드리 거목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한 세코이아 국립공원(Sequoia National Park)은 북쪽 입구로 들어가 다음날 남쪽입구로 나왔는데 도착하면서 북쪽에 위치한 ‘제너럴 그랜트 트리’를 먼저 구경했다. ‘미국의 크리스마스 나무’(National Christmas Tree)로 불리는 그랜트 트리의 위용에 놀란 언니들과 함께 숙소인 ‘우크사치 빌리지’(Wuksachi Village)로 향하는 해발 수천피트의 산길은 온통 겨울이다. 푸르고 청청한 사철나무들 사이로 흰눈 쌓인 산을 돌아가며 언니들은 계속 탄성을 금치 못했다.
끝없는 나무들의 행렬도 장관이지만, 근 30년만에 눈을 처음 본다는 둘째 언니의 감격과, 무리한 노정이지만 미국의 산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의 결정이 과연 효과를 본데 대한 흐뭇함... 언니들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세코이아였다고 말했다. 호텔 식당의 훌륭한 음식 맛에 또 한번 감격하며 일찍 해 저무는 산 속에서 어느새 다가온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랬다.
■넷째 날(4월9일)-전세계의 살아있는 생물중 가장 큰 것(world’s largest living thing)이라는 ‘제너럴 셔먼 트리’는 언제 봐도 경이롭다. 2,700년이나 살아왔는데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이 거대한 나무앞에서 누군들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4월인데도 눈이 녹지 않아 ‘크리스탈 케이브’ ‘모로 락’등 세코이아의 여러 관광지는 폐쇄돼있고 사람이나 차를 거의 볼 수 없는 한적한 숲속에서 장엄한 산세와 삼림욕을 즐기다 하산하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에 위치한 카위 호수(Lake Kaweah)에 들러 잠깐 낚시꾼들과 호수 구경도 하고, LA까지 240마일을 쉬지 않고 달려 내려왔다.
"정말 좋았다. 다음에 또 가자" 하면서도 언니들의 말끝이 흐리다. 이렇게 ‘맘 먹고’ 떠나는 일이 몇 년 후에나 또 가능할지,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어서일까.
<식사>
이런 기회가 다시없으니 고급 레스토랑에서 좋은 음식을 실컷 먹고 오자는 의견들이었지만 4일동안 한국식당이 없는 지역들을 지나게 되므로 작은 전기밥솥과 세끼분의 쌀, 서너가지 밑반찬, 김, 깡통 소시지, 볶은 김치등을 준비했다. 과일 약간, 소다와 물도 아이스박스에 넣었고, 몇종류의 과자, 비프저키등 간식도 챙겼다. 그런데 막상 다니다보니 식사를 세끼 제때 맞춰 하기 힘들거나, 간식으로 배가 불러 두끼만 먹기도 했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이용하기도 했으며, 가져간 밥을 세 번 지어먹었더니 사먹은 횟수는 서너번에 지나지 않았다.
밥은 호텔에서 짓기만 하고 밖으로 가져 나와 먹음으로써 음식냄새를 풍기지 않으려 애썼다. 좋았던 식당은 산타바바라의 ‘모비 딕’과 세코이아의 우크사치 빌리지 식당으로 특히 우크사치 식당은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앙트레가 25달러 정도) 음식맛은 상당히 수준급이었다. 또 시카모어 호텔내 ‘가든스 오브 아빌라’에서의 간단한 오믈렛 아침식사도 인상적이었다.
<여행의 하일라이트>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끝없는 이야기였다. 좋게 말하면 ‘대화’, 정확히 말하면 ‘수다’가 3박4일간 쉬지 않고 이어졌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 둘째 형부의 추억, 어린 시절 이야기, 과거의 특별했던 집안 사건들, 현재 서로 살아가는 모습들, 자녀들 이야기까지 끝을 모르고 쏟아져 나왔다. 둘째 언니는 우리가 어려서 몰랐던 가족의 역사와 비밀(?)들을 털어놓았고, 셋째 언니는 한국서 살고 있는 친지와 조카들의 사정을 소상히 전해주었다.
어린 시절 대가족에 섞여 치이며 자랐으나 어느덧 모두 중년의 여성이 되어있는 우리들은 삶의 갈피갈피에 접혀져 있던 이야기를 펼쳐보이며 웃고 울고 놀라워했다. 서로 떨어져 살면서 무심했던 지난날을 아파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변해갈 자매들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이야기는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식사와 쇼핑중에도, 온천을 하면서도, 호텔방에 앉아서도 끊임없이 계속됐다. 마치 이야기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였는데 그래도 다 한 것 같지 않다고, 헤어질 땐 모두 아쉬워했다.
<경비>
총 935달러가 소요됐다. 가장 많이 든 것이 숙박료. ‘시카모어 미네랄 스프링 스파 호텔’ 322.10달러, ‘그린 랜턴 인’ 178.15달러, ‘우크사치 라지’ 106.34달러로 숙박에만 총 606.59달러가 들었다. 각 방마다 2인1실 기준이므로 1명 추가에 10~20달러가 부과됐다. 시카모어 호텔과 그린 랜턴 인의 경우 예약시 비싼 스위트룸만 남아있어 할 수 없이 들었는데 가격만큼이나 후회 없이 좋았다. 또 이 두 곳은 다음날 아침식사를 제공했다.
나머지 경비는 개스 84달러, 3회의 레스토랑 식사 163달러, 국립공원등 입장료 21달러, 호텔방 팁 15달러, 와인등 그로서리 37.69달러, 기타 팁과 잡비 18달러등이 소요됐고 내가 따로 준비한 쌀과 반찬들, 음료수, 과자, 과일, 비프저키는 여기에 포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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