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의 연쇄서점인 반슨 노블(Barnes & Noble)의 아동부에는 뉴베리상(Newbery Medal) 수상작 코너가 따로 있다.
뉴베리상은 18세기 영국 서적상인 존 뉴베리를 기념해 1922년 미국 도서관협회가 제정한 상으로 세계아동문학상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이 상을 금년 2002년도에 수상한 작품은 한인 2세인 린다 수 박(Linda Sue Park.42)의 「도자기 한 조각」(A Single Shard). 지난 1월 수상 소식이 발표되자 이 책은 서점마다 동이 나 3월중 재판을 앞두고 예약 러시를 이루고 있다.
「도자기 한 조각」은 미국에서는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이 12세기 고려시대의 어린이 이야기이며 지게에 짐을 진 한국 시골 어린이의 모습을 표지에 그린 것도 이색적이다. 그 내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고려시대 철포라는 곳의 다리 밑에서 걸인과 살던 한 고아 어린이가 그 동네 도공 민씨의 도자기 솜씨에 반해 도공이 될 꿈을 꾼다.
그는 도공의 도자기 한 개를 깬 댓가로 시중을 드는 일을 하는데 일하는 기간이 끝난 후에도 도자기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계속 시중드는 일을 한다. 도공 밑에서 나무를 하며 불을 때는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고생했으나 도공은 어린이에게 도무지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왕궁에서 쓸 도자기를 제작하기 위해 온 나라의 도자기 견본을 심사하게 되었는데 민씨는 나이가 늙어 왕궁까지 갈 수 없는 처지였다. 어린이는 민씨가 만든 도자기를 가지고 송도로 향했다.
그러나 도중에 산적을 만나 온갖 고초를 겪었고 도자기는 깨져버리고 말았다. 어린이는 아름다운 도자기 파편 한 조각을 싸들고 왕궁에 도착하여 보여준 결과 선택을 받아 왕궁 도자기를 제작하게 된다. 그리하여 민씨는 어린이를 양자로 삼은 후 도자기 기술을 가르쳐 주어 어린이는 도공의 꿈을 이룬다는 해피 앤딩 스토리이다.
작가인 린다 박은 미국서 태어난 한인 2세이다. 그의 부모는 6.25 직후인 50년대 중반 미국에 유학한 유학생들로 미국서 결혼, 린다를 낳았다. 시카고 교외지역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초등학교 시절 잡지에 시를 기고하여 고료를 받았다.
유학생 출신의 부모는 자신들이 겪은 언어 불편 때문이었던지 자녀에게 지독한 영어교육을 시켰다. 집안에서든 밖에서든 영어만 하도록 했다. 그 덕분에 린다는 스탠포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후 시카고에 돌아온 린다는 아모코 석유회사의 PR부에서 PR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했다. 여기서 그는 후에 남편이 된 아일랜드 청년을 만났는데 2년 후 1983년 이 청년을 따라 아일랜드로 가서 결혼을 하고 더블린대학에서 영문학을 계속 공부했다.
린다는 그 후 영문학의 본고장인 런던으로 이주, 런던대학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런던에서는 광고회사에서 근무했는데 한 신문사에서 주최한 요리대회에 나가 한국음식을 만들어 1등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신문의 요리와 음식 칼럼을 쓰는 기자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남편의 직장을 따라 1990년 미국에 와서 현재 뉴욕주 로체스터에 거주하면서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12살 나이에 부모를 따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 명절을 지키면서 자랐지만 한국문화에 대해서는 정작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후부터 였다는 것이다. 아이가 반은 아이리쉬이고 반은 코리안인데 자신이 코리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나중에 아이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막막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할 줄 모르고 한글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한국책은 읽지 못했지만 영어로 쓴 한국역사, 여행기와 영어로 번역된 한국책을 구해 읽었다. 그런데 미국에는 어린이들이 읽을 책은 많은 편인데 아시아에 관한 책은 별로 없고 더구나 한국에 관한 책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에 관한 어린이 책을 써 보자” 반응이 좋으면 좋고 반응이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린다는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1997년 나온 첫 작품이 「널 뛰는 소녀」이고 이어 2000년에 「연 싸움」을 출판했다. 이 책이 모두 대대적인 호평을 받으면서 그는 본격적인 동화작가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는 평소에도 한국에 관한 책을 많이 읽은 편이지만 한국문화를 배경으로 한 두권의 책을 쓰기 위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을 더욱 심도있게 읽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만한 한국문화예술의 정수가 고려청자에 담겨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고려청자를 배경으로 「도자기 한 조각」을 썼고 이 작품이 그를 금년 최고의 동화작가로 만든 것이다.
그는 자기 어머니의 일제시대 이야기를 쓴 「내 이름이 게오꼬였을 때」를 3월에 출판하며 이어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이의 3세대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비빔밥」을 낼 계획이다.
뉴베리상을 받은 후 그는 이제 명사가 되어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곳곳에서 인터뷰와 강연, 세미나 요청이 들어와 스케줄이 밀려있는 상태이다. 미국 전역의 초등학교에서 초청이 쇄도하여 어린이들을 직접 만나 대화의 시간도 갖는다. 그래서 금년 한 해는 글을 쓸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문화를 바탕으로 문학적 영역을 넓히려는 그의 열정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한국인의 정서와 마음이 아름답게 표현된 시조에 흠뻑 빠져 있는데 앞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영어 시조집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이제 한국 고유의 문학 패턴인 시조를 영어로 읊게 될 날이 올 것인지, 린다 수 박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자못 크기만 하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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