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칼럼-세상사는 이야기
▶ 새라 최(피아니스트)
나에게 누가 한국말 표현중에 가장 마음에 안드는 표현을 골라라... 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피아노를 친다’는 표현을 고를 것이다. 아마도 많은 수의 한국 학생들이,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피아노를 칠 때 음색이 갖가지로 바뀌거나 하지 않고 같은 톤에서 강/약만을 조절하며 치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 ‘피아노를 친다’는 우리말 표현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마치 노래 부르는 사람이 한 가지의 목소리만으로, 단지 크고 작은 소리의 조절만으로 노래를 부르고 감정 표현을 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듣는 사람이 금방 흥미를 잃게되고 짜증이 나 버리게 한다. 아무리 곱고 예쁜 소리라도 계속 그 한가지만을 듣고 있다보면 지루함을 느끼는 게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피아노는 *쳐*서는 안된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모든 악기들 중 가장 기계적이고 덜 인간적인 악기 중의 하나이다. 다른 현악기, 관악기 등에 비해서 별로 민감하지도 섬세하지도 않다. 이사하다가 기둥에 한두번 쾅..쾅.. 부딪쳐서 다리에 상처가 나고 나무가 움푹 패인다 하더라도 조율만 잘 해주면 전혀 아무 이상 없이 좋은 소리를 계속 낼 수 있다. 뚜껑을 덮고서 밟고 올라서도 되고, 그 위에서 또는 밑에서 잠을 잘 수도 있으며, 깔고 앉아 있어도 괜찮은, 어찌 보면 아주 무딘 악기 중의 하나이다.
이 악기의 소리는 헝겁으로 감아놓은 나무 망치가 세개, 두개, 또는 한개의 쇠줄을 때리고 그 줄이 울림으로써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소리를 내는 것은 건반이 한 1.25cm 정도 깊이로 내려가는 동작이 얼마나 빠른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아노를 치는 테크닉이란 결국 건반을 1.25cm 정도 내려가게 할 때, 그 빠르기를 조절하는 컨트롤이라고도 바꿔 말 할 수 있다. 무게를 실어서 천천히 건반을 누를 수도 있으며, 아주 가볍게 그러나 아주 빠른 속도로 건반을 누를 수도 있고, 무게를 많이 실어서 빨리 건반을 누를 수도 있고.. 많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소리가 고르게 나도록 컨트롤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고, 고른 소리의 지속 또한 만만치 않게 연습을 필요로 한다.
피아노를 ‘치라’는 표현은, 초보자들로 하여금 여러가지의 피아노 건반을 내려가게 하는 방법을 생각지 못하게 하고, 단지 빠른 속도로 손에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건반을 내려가게 한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이리 내놔~’ 또는 ‘싫어~’하고 고함칠 때처럼 빠르고 힘이 들어간 소리를 뱉어내는 식이라 절대로 아름답다거나 음악적이라고 느끼기 힘든 소리가 돼 버린다. 가끔 그런 소리가 건강하다거나 힘차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금방 듣기 싫어져 버리고 짜증이 나게 된다.
건반에 내 손이 닿아서 그 건반이 바닥까지 내려갈 때까지, 그 동안의 컨트롤이 필요하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고 사람마다 가진 육체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르게 습득하게 된다. 나는 나의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애무* 하라고 말해줄 때가 있다. 영어로 caress 하라고 표현하는데, 이 표현을 아주 좋아한다. 나의 선생님에게서 이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난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곡을 치면서 마치 내가 많이 좋아하는 사람을 애무한다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갑자기 손을 꽉 잡거나 해서 상대의 놀란 그 커진 눈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털이 많은 그 팔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천천히 쓰다듬었을 때 상대의 털이 곤두서거나 소름이 돋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단단한 근육이 느껴지는 어깨나 팔을 손안에 꽉 차게 잡았을 때 그 근육에 더욱 더 힘이 들어가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넓은 등을 손바닥 전체로 누르듯 감싸 안았을 때 등 전체가 더욱 넓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피아노를 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 악기 자체는 별로 자연스럽거나 인간적이지 않지만, 손과 팔과 어깨와 등과 허리와 그 모든 것을 이용해서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이다. 그러한 모든 동작들을 조절해서 그 기운을 손가락 끝에 모아서 건반을 애무할 때,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로써 악기는 반응해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응에 더욱 힘입고 흥분해서 연주자는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더욱 부드럽게 또는 더욱 거칠게 건반을 애무하게 되고 그 때에 만들어지는 음들은 오색 찬란한 색깔로 시시각각 변하며 아름답게 내 귀에 그리고 청중들의 귀에 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를 좀 더 기술적으로 잘 애무하기 위해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땀을 흘리며 건반을 누르는 힘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을 연마하고 있다. 피아노를 결코 ‘치’지 않기 위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