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로 가나.
올해 프리에이전트(FA) 최고투수로 꼽히는 박찬호(28)가 갈 곳이 없다. 오라는 팀이 없다. 자유의 몸이 된지 1주일이 지났건만 하다못해 계약 의사타진이 왔다는 뉴스도 없다. 여기저기서 난무하는 그 흔한 소문조차 하나 안 들린다. 완전 FA가 된 첫 날인 지난 20일 텍사스 레인저스가 5년계약을 제시해 왔다는 보도가 터져 한때 기대를 모았으나 바로 다음날 레인저스 제너럴 매니저(GM) 잔 하트가 이를 강력 부인함으로써 단발성 해프닝으로 끝났다.
레인저스와 함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혔던 보스턴 레드삭스도 FA시장에서 비교적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박찬호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식으로도 이름 한번 거론하지 않고 있다. 원 소속팀 LA 다저스는 박찬호를 완전 소가 닭 보듯 하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여겨졌던 이들 3팀이 이 정도니 나머지 팀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모든 스포츠 웹사이트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박찬호 영입후보 1, 2위는 레인저스와 레드삭스다. 하필이면 이미 공식, 비공식으로 박찬호를 잡을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두 팀이 1, 2위로 꼽힌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으며 뒤집어 말하면 그 어느 팀도 박찬호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뉴욕 메츠,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애틀 매리너스 등 언론에서 언급됐던 소위 후보들도 따지고 보면 재정적으로 능력이 있다던가, 아니면 선발투수가 필요하다는 것 때문에 억지로(?) 후보리스트에 추대된 것으로 실제 박찬호에 관심을 보여 후보가 된 팀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렇다면 왜 일이 이렇게 됐을까. 박찬호가 올해 아무리 기대에 못 미쳤다고 해도 이런 푸대접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정이 이렇게 악화됐을까.
여러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크게 보면 결국 이유는 두 가지다. 예상되는 엄청난 몸값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박찬호의 기량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 각종 통계수치로 보면 지난 5년간 꾸준하게 리그 탑10 투수로 활약한 박찬호의 몸값은 탑 클래스가 되야 한다. 현 기준으로 평균연봉 1,500만달러가 투수로서 최상급의 기준.
하지만 통계적인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 실제 피부로 느끼는 박찬호의 실력은 아직 특급투수로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다저스가 페넌트 레이스에 있었던 올 시즌 후반기 박찬호의 부진과 월드시리즈에서 공동 MVP를 차지한 커트 쉴링과 랜디 잔슨의 눈부신 피칭이 공교롭게도 큰 대조를 이루며 이런 이미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쉴링과 잔슨보다 박찬호에게 더 많은 돈을 준다는 것이 심정적으로 힘들어진 것. 설상가상으로 허리부상에 대한 의혹도 남아있고 여러 팀들이 긴축재정을 외치는 경제적 상황도 이 같은 박찬호에 대한 수요부재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박찬호보다 싼값에 어느 정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투수들(제이슨 슈미트, 테리 아담스, 잔 스몰츠, 애런 실리, 히데오 노모, …)등이 마켓에 나와있다는 것이다.
◎영입후보 점검
1. 보스턴 레드삭스- 선발투수가 필요하고 돈도 있지만 현재 언급되는 이름 가운데 박찬호는 없다. 노모와 재계약을 원하고 있으며 여의치 않으면 실리, 슈미트, 아담스 등을 영입후보로 올려놓고 있다. 현재 원하고 있는 FA 선발투수들을 모두 놓치기 전에는 박찬호 영입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능성- 30%)
2. 텍사스 레인저스- 역시 선발투수가 절실하나 GM 하트는 데이빗 웰스나 피트 하니시처럼 과거 에이스급 투수로 커리어 말기에 있는 선수들을 저렴한 가격에 확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트는 이미 박찬호에 5년 계약을 오퍼했다는 ESPN보도에 대해 "너무 터무니없어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강하게 부정, 일말의 가능성마저 차단시켜 버렸다. 돈 쓰기를 두려워않는 억만장자 구단주 탐 힉스가 직접 나서면 박찬호와 인연을 맺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무리 구단주라도 새로 모셔온 베테런 GM 하트의 뜻을 누르면서까지 박찬호 영입을 고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30%)
3. 볼티모어 오리올스- 재정적으로 블락버스터 계약을 내 줄 수 있는 몇 안되는 팀중 하나. 예측하기 어려운 구단주 피터 앤젤로스가 있기에 절대 무시할 수 없지만 일단은 슈미트와 스털링 히치칵, 스몰츠 등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아직까지 박찬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20%)
4. LA 다저스- 원 소속팀이라는 프리미엄 때문에 후보대열에 남았으나 FA신청을 한 뒤 보름간의 우선협상기간동안 심각하게 접촉시도조차 없었던 것에서 재계약 의사가 없다는 힌트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박찬호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요구액을 대폭 낮추면 가능성이 생기지만 과연 박찬호가 그렇게까지 할 지는 의문. 27일자 LA타임스는 다저스가 스몰츠 영입에 나섰다고 보도했는데 만약 스몰츠를 데려온다면 그 때는 홈팀 디스카운트 효과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20%)
5. 뉴욕 메츠- 대도시 뉴욕을 본거지로 하기에 후보가 됐으나 시즌 중반 트레이드됐던 릭 리드를 돌려받는 것을 2년간 1,500만달러라는 연봉부담이 싫어 꺼릴 정도니 박찬호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 타선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10%)
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스몰츠를 붙잡기 원하나 선발이 아닌 마무리로 쓸 계획이어서 선발을 원하는 스몰츠가 떠나갈 것이 예상된다. 선발투수중 한명이 트레이드로 떠나갈 경우 박찬호쪽에 시선을 돌릴 수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5%)
7. 시애틀 매리너스- FA인 실리가 떠나면 선발진에 공백이 생기나 일단 이들도 슈미트와 아담스쪽을 먼저 노크하고 있다. 아직까진 박찬호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5%)
8. 뉴욕 양키스- 예상대로 제이슨 지암비를 붙잡는다면 아무리 양키스라도 박찬호까지 잡을 여력이 없다. 양키스 역시 스몰츠와 아담스, 슈미트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들중 한명을 잡으면 부상이 잦은 올랜도 허난데스를 트레이드할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박찬호의 이름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5%)
◎그렇다면…
현재로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단 박찬호로선 시장변동을 지켜보면 일급투수에 대한 수요가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길 밖에 없다. 일단 주목하던 선수들을 하나 둘씩 놓치기 시작하면 당황한 나머지 박찬호쪽으로 돌아서는 팀이 생길 수 있기 때문. 하지만 현재로선 희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 대부분 팀들이 긴축재정을 외치고 있어 큰 이변이 없는 한 평균 1,500만달러는커녕 1,300만달러선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박찬호는 1년계약을 하고 내년 시즌후 다시 FA로 나서는 방법도 고려할 것이다. 내년 시즌에 호성적을 올린 뒤 그것을 무기로 더 큰 대박을 노리는 것. 하지만 내년 성적이 나쁠 경우 빅딜의 기회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기에 박찬호에게 상당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또 1년계약할 경우 다저스에 남을 것이냐, 아니면 다른 팀으로 떠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지금 많은 팀들이 박찬호 붙잡기에 적극적이지 않는 주요 이유중 하나가 그가 LA를 떠나면 2급투수로 전락한다는 인식 때문인데 다저스에 남으면 성적을 좋게 올리는데는 유리하나 그 의혹을 내년에도 씻을 수가 없다. 반면 다른 팀과 계약한다면 낯선 곳에서 홀로 용병처럼 자기를 입증해야 하는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게 된다.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 박찬호는 지금 커리어의 중대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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